트라우마 생존자의 하루 기록
“살아야지
나는 살아 너에게
네가 살고 싶은 세상이 되어줘야지”
– 위수, 「교토」 中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어,
그저 안아주는 마음밖에 내게 없지만,
그 마음으로 오늘도 살아내려 한다.
그저 조용히 곁에 있기를 바라는,
내 마음의 영원한 교토 같은 너를 생각하며.
요즘의 매일은, 눈을 뜨는 순간부터 위태롭다.
꿈에서조차 끝없이 기억의 파편들이 떠다니고,
그 뒷파편들이 큰 파동을 일으킨다.
그 파동을 멈추는 방법은 아직 알지 못한다.
다만, 이 시간이 언젠가는 지나간다는 사실을
조용히 되새기며, 하루를 견딘다.
상담선생님은 종종 말해주셨다.
“저는 지금 정원님이 아닌, 정원님의 무의식에 말하고 있어요.
그러니 지금은 이해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 말이 자주 떠오른다.
이제 나도 스며든 걸까.
“나보다 내 무의식이 강하대.”
그런 혼잣말을 중얼이며,
또 하나의 아침을 열어본다.
기억이 파도라면,
무의식은 그 바다의 심연일 것이다.
그곳은 깊고, 어둡고,
때때로 스스로도 닿을 수 없는 세계.
하지만 아주 가끔—
심해 끝에서 반짝 떠오르는 무언가가 있다.
잊은 줄 알았던 감정,
말이 되지 못한 진실,
혹은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상처.
그건 마치,
빛을 알지 못한 생명들이
자신만의 발광으로 길을 찾듯—
무의식 또한 나만의 방식으로
기억을 끌어올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최근, 사건 기록을 들여다보며
심해 깊은 곳에서
기억의 조각들이 수도 없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것들은
반짝이지 않는다.
빛을 잃은 채,
떠오른 순간조차 감지되지 않을 만큼 희미하다.
다듬어지지 않았고,
이름조차 붙지 않은 그 파편들은
한순간에 파도를 뒤집어 놓는다.
기억이 아니라—
파국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그럼에도 나는,
조금 물러서 바라본다.
“그들도 빛나고 싶어 발악 중이구나.”
“너도, 정말 빛이 고팠구나.”
그렇게 안쓰러이 여겨주다 보면,
격렬했던 파도도
이내, 조금씩 잠잠해진다.
“괜찮아, 괜찮아.”
“나는 너도 보고 있어.”
“아프지만, 너를 버리지 않을게.”
그 말을
무의식 너머 어딘가에 닿게 하기 위해—
오늘도, 나는
기억에게서 도망치지 않는다.
“선생님은… 신기한 것 같아요.”
그 말에 쌤은 웃으며 되물으셨다.
“어떤 점이요?”
나는 말없이 머뭇거렸고,
쌤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덧붙이셨다.
“제 얼굴이요?
정원님, 신기하다고만 해놓고,
말 안 하면 그거 욕인 거 아시죠?”
결국, 나는 조심스레 꺼내놓았다.
“다들 제 침묵을 재촉하고,
돌아서고, 다그쳤거든요.
그런데 선생님은… 그러지 않으셔서요.
그게, 늘 신기했어요.”
쌤은 조용히 미소 지으며 말씀하셨다.
“정원님, 침묵도 많은 걸 품고 있어요.
저는 정원님의 침묵하는 시간도
상담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나는 처음 알게 되었다.
침묵이 기다려질 수 있는 시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 기다림 속에서
비로소, 천천히 말을 품어낼 수 있었고—
이해받지 못했던 문장들 대신,
고요를 견뎌주는 시선에
조심스레 몸을 기대었다.
말은 언젠가 터뜨려내는 것이 아니라,
안전하게 기다려질 때
스스로 피어오르는 것이었다.
쌤과의 상담은,
말하지 않아도 ‘있다’고 여겨지는
신기한 경험, 그 자체였다.
침묵조차 말이 되는 시간.
그 무언의 시간을
쌤과 함께 천천히 통과하며,
오늘도 나는
안전함을 확인받는다.
그렇게—
과거에서 아주 천천히,
현재로 돌아오고야 만다.
출근길, 사건과 관련된 전화를 받았다.
예정된 통화였고, 마음의 준비도 했다고 생각했다.
씩씩하게 집을 나섰지만,
단단한 척했던 마음은, 몇 마디 질문에 무너졌다.
“정원님, 이 사진 속의 기억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말해줄 수 있어요?”
“이 날짜는, 그때가 맞을까요?”
“쉬는 날인데, 너무 고생 많으셨어요…”
‘고생 많았다’는 말은 들리지 않았다.
내가 파일 끝에 남긴 “못 하겠어요”라는 문장은,
그저 하나의 정보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 순간, 마음속 깊은 데서
무력감과 억울함, 서러움이 솟구쳤다.
‘왜 나는 여전히 아픔에 머물러야 하지?’
‘과거에 아팠으면 된 거 아니었나.’
‘왜 피해를 내가 증명해야 하지?’
그런 생각들 속에서,
나는 또 한 번 침묵 속으로 가라앉았다.
살아 있다는 사실이
끔찍이도 싫었지만,
출근을 해야 했기에…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출근은 마치 연극의 입장과 같았다.
내면은 여전히 무너져 있었고,
목소리는 간신히 붙들어놓은 평정을 흉내 냈다.
“안녕하세요.”
그 한마디에도 많은 감정이 덧칠되어 있었다.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출근 직전의 사건 전화,
밤새 이어진 불면과 악몽,
그리고 아침까지 반복된 구토와의 사투.
그 모든 것들을 꾹 삼킨 채,
나는 사람들과 웃고, 말하고, 일했다.
‘여기에 있는 척’,
‘살아가는 척’—
그 연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스스로도 버거웠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연기가 나를 살렸다.
업무라는 가면을 쓴 채
감정을 잠시 미뤄두는 것만으로도
나는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다.
게다가 오늘은,
마치 월말 마감처럼
정신없이 바빴다.
예약되지 않은 상담이 밀려들었고,
업무 중 말을 가장 많이 한 날일 정도로
숨 돌릴 틈 없이 설명하고 뛰어다녔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나쁘진 않았다.
‘연기’에 불과했던 나의 하루가,
실제 하는 삶의 모습으로
어딘가에서 인정받은 느낌이었다.
누구도 모를 나의 진짜 속마음이지만,
사람들이 왜 우울해도
일상을 놓지 말라고 말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오늘 하루는,
치열한 생존 끝에 간신히 완성된,
나만의 연극이었다.
센터에 올 때마다
나의 안부를 먼저 물어주시고,
먹을 것을 잔뜩 챙겨주시는 회원님이 계신다.
“이건 어제 집에서 만든 건데, 따뜻할 때 먹어.”
“이건 네가 좋아할 것 같아서 챙겼어.”
그 말들 사이에는
단순한 호의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오랜 정성과 따스한 마음이 묻어 있었다.
나는 그저 일터로 향하는 사람일 뿐인데,
그분의 손에는
매번 ‘살펴주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 다정함은 마치,
말없이 등 뒤에 조용히 걸쳐주는 담요 같았다.
그래서 더 깊고 오래도록 스며들었다.
나에게는 그렇게,
누군가의 다정이 예고 없이 도착하는 날들이 있다.
작은 용기처럼, 작은 위로처럼.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나는 여전히 누군가에게
챙김 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바쁘고 지친 하루 속에서도
그런 한 사람의 다정함이
오늘의 마음을 조금 덜 흔들리게 해 준다.
오늘의 위로는—
작은 미니 아이스크림.
어쩌면 실례가 될지도 모르지만,
세상에서 가장 귀여우신 어른이
“이거, 네 생각나서…”라며
건네주신 그 아이스크림은
내게 너무도 선명한 위로의 형상으로 다가왔다.
차갑지만 따뜻했고,
작지만 깊었으며,
짧지만 오래 남을 순간이었다.
아마, 세상을 구할 가장 큰 위인은—
다른 누구도 아닌,
다정한 어른들이지 싶다.
고요한 연극이 막을 내릴 때서야,
나는 겨우 막차에 몸을 싣는다.
9시간을 꼬박
사람들을 상대하며 보내야 하는 직장은,
간신히 버티는 나의 하루 에너지를
모조리 쥐어짜는 곳이다.
마지막 고객이 떠난 뒤,
형광등 아래 텅 빈 센터에
혼자 남겨진 시간은
왠지 모르게 쓸쓸하고, 씁쓸하다.
오늘도 사람들을 웃게 하고,
그들의 리듬에 맞춰
내 마음을 조율했다.
그러나 정작 나의 리듬은
한참 전부터 어긋나 있었다.
퇴근길,
벗어놓은 가면처럼
무너진 표정이 버스 창가에 비친다.
그렇게 말없이 앉아,
하루 동안 삼킨 말들을 다시 되새긴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기 위해
웃으며 덮어버렸던 마음들을.
‘오늘 하루도 잘 견뎠다’기보다는,
‘오늘도 겨우 버텼다’는 문장이
더 진실에 가깝다.
그럼에도 그마저도 다행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여본다.
누군가에겐 평범한 하루였겠지만,
내게는 생존의 무대 위에서
또 한 번
온몸으로 살아낸 하루였다.
그리고 아직은—
이런 하루를 견딜 힘이 남아 있는 스스로가,
어쩐지 조금은 기특한,
오늘의 끝자락이다.
눅눅하고 습한 여름날을,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여름엔 아픈 기억이
유난히 더 많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상처를 가리지 못하는 계절,
피비린내가 더 짙어지는 계절,
맨살을 숨길 수 없는 계절…
나는, 그런 여름이 싫다.
계절이 덮어두었던 상처를
여름은 태연히 끄집어낸다.
따가운 햇볕과 후끈한 공기가
언젠가의 고통을 되살리고,
내 몸은 여름이 오기 전부터
이미 경계하고, 긴장한다.
어린 날의 기억 속 여름은
늘 너무 밝거나,
너무 어두웠다.
숨이 막히도록 맑은 하늘 아래,
나는 늘 울고 있었던 것 같다.
누구도 보지 않는 한구석에서,
터질 듯 무거운 여름을
혼자 삼키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지금의 나는,
여름이 오는 소리만으로도
조금씩 굳어진다.
그리고 그 속에서도
매년 살아내고 있는 나를
조금은 안쓰럽게, 조금은 다정하게
바라본다.
그래도 올해의 여름은,
조금 덜 아플 수 있을까,
아니, 덜 아프진 못하더라도,
시원한 기억 몇 조각
품고 지나갈 여름이 되어주기를.
집으로 돌아와, 또다시 구토를 했다.
긴 이동 시간에 남은 멀미의 흔적이라기엔,
이젠 이동과는 상관없이 잦아진 구토가 수상하다.
몸이 먼저 기억을 토해낸다.
말보다 빠르게, 감정보다 솔직하게.
“왜 자꾸 토하지?”
그 질문을 되뇌이며
화장실 앞에 쪼그려 앉아 있을 때면,
문득 깨닫는다.
몸은 나보다 먼저
무언가를 견디고 있었고,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대신 내보내고 있었다는 걸.
어디가 아픈 걸까.
위장일까, 마음일까,
아니면 둘 다일까.
구토는 점점 하나의 습관처럼,
생존의 언어가 되어버렸다.
억지로 참았던 것들이 무너져 나오는 순간,
나는 비로소 내 상태를 ‘직면’한다.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고통의 신호가,
몸을 타고 흘러나온다.
때로는
“괜찮다”고 했던 말들이
속에서 썩어 문드러지는 느낌마저 든다.
삼켜온 말들, 울지 못한 감정들,
참고 또 참은 자기 비하와 죄책감이,
이제는 ‘소화불량’이라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파동으로 터져 나온다.
몸은 더는 나를 속이지 않는다.
그것이 나의 진실이다.
하지만 그렇게 몸이 울부짖는 순간에도
이 세상은 여전히 너무 조용하다.
누군가 다정하게 등을 토닥여줄 수도 있겠지만,
구토 앞에서는 위로도 멈춰 선다.
말도, 손길도, 침묵도,
이토록 무력해질 수 있다는 걸
이 밤에 또 배운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몸이 먼저 알려주는 신호들을 따라
늦은 밤,
아픈 몸을 끌어안고,
혼자 웅크린 채
이 낯선 몸의 외침을 견디며
이 밤을 지난다.
쓰다 보니 피곤했는지,
식탁에 엎드린 채로 잠이 들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서서히 스며드는 한기에 눈이 떠졌다.
깊은 잠은 아니었다.
애초에, 깊을 수 없었다.
몸이 식었다는 걸 느끼고서야
나는 천천히 일어나 방으로 향했다.
여전히 낯선 집,
여전히 낯선 공기.
익숙해지려 애쓰고 있다는 걸
몸은 아는지 모르는지,
심장은 작은 소리에도 요동쳤고,
창밖의 바람 소리는
밤의 적막을 깨지 못한 채
그저 내 불안을 따라 흘렀다.
침대에 누워서도
한동안 눈을 감지 못했다.
하루를 견뎌낸 기억들이
몸 구석구석에 남아
계속 나를 뒤흔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자리를 펴고 누웠다.
밤의 끝자락에서라도
조금은 쉬어야 한다고,
이런 나에게도 쉼은
허락되어야 한다고 믿고 싶었으니까.
그렇게,
조금은 낯선 집의—
지겹도록 낯익은 고단함 속에서,
오늘 하루의 끝을
가만히 받아들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