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살과 불안 사이, 그럼에도 살아낸 10개의 순간
너의 밝은 눈빛 속에
숨겨진 눈물을 보며
나 깊어진 슬픔이 느껴졌어
…
아프지만 이대로
봄이 머무는 곳으로
그 꿈들을 안고서 그곳으로
– 김뭉먕, 「끝없는 밤을 가르며」
하루가 끝나갈 무렵,
나는 이 노래를 틀어놓은 채
나직하게 지난 시간을 되짚는다.
고단한 몸, 흔들린 마음,
그리고 그 속에서 간신히 피어난 온기들.
봄이 머무는 곳을 찾아
오늘도 나는
숨을 고르고, 마음을 붙잡는다.
이 글은—
그렇게 하루를 통과한
작고도 묵직한 기록이다.
긴 글을 써내지 못한 날이면,
나는 대개 하루를 조금 일찍 마무리하려 애쓴다.
어제가 그랬다.
02시 이전에 자리에 눕는 일은
내겐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인데,
몸이 너무 아파 견딜 수가 없었다.
답답해서 창문을 살짝 열었다가
밀려든 한기에 놀라 문을 다 닫고,
이불을 꼭꼭 싸맸다.
몸이 떨려왔고,
코가 너무 시큰해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미간을 찌푸린 채 잠들었고,
깨어보니 04시.
몸살 기운이 예사롭지 않았다.
비상약통을 뒤적여 약 하나를 꺼내 먹고,
불도 켜지 않은 집 안에서 벽을 더듬어
침대로 기어들어갔다.
그러기를 세 번쯤 반복했나.
총 수면 시간은 평소보다 많았지만,
짙은 피로가 온몸을 덮었다.
그렇게, 또 하루가 시작되었다.
깨어나자마자,
상온에 두었던 물 한 잔을 마셨다.
창문을 활짝 열고, 청소기를 돌리고,
오랜만에 세탁기도 돌렸다.
그리고 냉장고를 열었다.
며칠 전, 콩나물밥을 만들어보고 싶어
사둔 재료들이 눈에 띄었다.
콩나물을 꺼내 씻고,
미역도 불려두고,
다진 고기 조금을 데쳤다.
큰 소쿠리에 쌀을 씻어 불려두고,
미역국을 호다닥— 끓였다.
이쯤이면 충분히 불었겠지?
밥과 콩나물을 잘 섞어
그 위로 다진 고기를 얹고,
물을 부어 밥솥에 넣었다.
이제, 밥솥이 열일할 차례.
나는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책상으로 가서
써둔 글을 몇 번이고 다듬고,
음악도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밥이 생각보다 잘되었다.
기분이 괜히 좋았다.
“짜식, 열일하네?”
슴슴한 콩나물밥과
제법 간이 잘된 미역국.
완벽한 조화였다.
몸살 기운 가득한 나에게
작게, 따뜻하게 건네는 위로.
오늘의 결과는,
성공적!
앞자리가 2였을 땐 잘 몰랐다.
왜 그렇게 피부 관리를 하라고 말하는지.
왜 매장에서 아이크림 샘플을 주는지.
그런데, 앞자리가 바뀌자
원래도 예민하던 피부에
변화가 빠르게 찾아왔다.
평소 쓰던 화장품들이
유난히 자극적으로 느껴졌다.
여름이라 더 또렷하게 다가온 듯했다.
나는 항상 쓰던 것만 쓰는 편이고,
기초 화장품에 큰돈을 들이는 일이 드물었다.
그런 내가 이번엔, 큰맘 먹고 앰플을 질렀다.
어젯밤 처음 사용해 봤는데
생각보다 쫀쫀해서 좀 놀랐다.
아침에도 세안을 하고
스포이드로 앰플을 짜내다 문득,
스스로를 챙기고 있다는 사실이
낯설고도, 신기하게 느껴졌다.
‘나, 나를 돌보고 있구나? ’
20대엔 관리하지 않아도
어찌저찌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은데,
30대엔 관리하지 않으면
그냥 지나갈 수 없는 시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부라는 가장 겉의 신호는,
어쩌면 몸이 나에게
“조금만 나를 더 챙겨줘.”
그렇게 말해주는
고마운 신호였는지도 모른다.
조금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던 순간이었다.
미지근한 물을 마시고,
콩나물밥을 해 먹고,
앰플을 바르며 스스로를 챙긴 하루.
몸도, 마음도
겨우 균형을 찾아가던 중이었다.
출근해 근무에 집중하고 있었던 그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사건과 관련된 전화였다.
나는 생각보다 차분하게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전화를 끊고 나니,
마음이 서서히 뒤틀리기 시작했다.
머릿속은 순식간에
예전의 장면으로 빨려 들어갔다.
착실히 현재를 살아가던 내가 아니라,
그날, 그 자리,
그 고통 속의 내가 되어 있었다.
몸은 분명 여기 있었는데,
마음은…
어느새 다시 무너진 과거 속에 앉아 있었다.
사건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진실은 지지부진하게 굴러가고,
나는 그 사이에서 ‘진정성’이라는 이름으로
끊임없이 증명해야만 한다.
그저 살아낸 것뿐인데—
왜 나는 아직도,
이렇게 숨을 고르고
심호흡을 해야 하는 걸까.
그 순간, 오늘의 고요는
파문처럼 일렁였다.
나는 그 속에서도,
아주 작게,
다시 숨을 고르며
하루를 이어갔다.
센터로 복귀한 뒤 얼마 안 되어,
도시락으로 싸 온 저녁을 꺼내 먹었다.
메뉴는 콩나물밥과 김치, 명란젓, 가지볶음.
도시락을 먹으며
스스로가 대견하게 느껴졌다.
콩나물밥을 도시락으로 싸 다닐 수 있는
자취 10년 차라며,
작게 기뻐했다.
몸살 기운에 몸은 여전히 처졌고,
조금 전 사건 전화로
마음도 좋진 않았지만—
아주 조금은,
힘이 났다.
그리고 문득,
자취 10년 차도 이런데,
향후 10년, 20년 후엔 어떨까?
하는 기대감이 피어올랐다.
따스한 밥 위에 아삭한 콩나물,
고소한 참기름 향과
살짝 매콤한 김치,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가지볶음까지.
한동안 식욕이 거의 없었는데,
오늘은 조금은 수월하게
끼니를 챙길 수 있었다.
‘한국인은 밥심’이라던
어른들의 옛말이 떠오른다.
그리고 상담쌤도 요즘 자주 하시는 말.
“정원님, 이렇게 잠을 못 자는 요즘엔,
영양보충이라도 잘해줘야 해요.
그래야 면역력이 안 무너져요.”
이 순간— 그 말이 떠오르니,
뭉클하고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한참 근무를 이어가던 중,
단체 문자를 발송할 일이 있었다.
대형 센터인 만큼,
웹사이트를 통해 단체 문자를 사용할 일이 잦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메시지 문구를
최대한 덜 광고같이,
거슬리지 않게 다듬었다.
그리고 전체 회원 몇천 명 중
대상자를 추려
마지막 클릭 한 번—
문자가 발송되었다.
그런데, 발송되고 나서야 깨달았다.
발송지가 빠졌다.
“어디서 보낸 건지 안 썼네…”
실수였다.
웃으며 넘겼지만,
처음 한 실수 앞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요즘 잦아진
이런 ‘작은 실수들’이
마음에 계속 남는다.
며칠 전엔
샤워 후 스킨을 머리카락에 발라
다시 머리를 감기도 했고,
버스에 올라 민증을 찍었다가
아무 반응이 없어 머쓱했던 적도 있다.
아무것도 아닌 실수들이
요즘의 나를,
조금 엉뚱하게,
조금 불안하게 만든다.
요즘은 근무에 조금씩 자신감이 붙었다.
6개월의 고비를 지나,
어느덧 내게도 ‘미담’ 같은 순간들이 찾아온다.
쑥스럽지만 고백하자면,
나는 요즘 근무지에서 매일 칭찬을 듣는다.
오래 봐 온 회원님들로부터,
새로 오신 분들로부터.
나의 작은 성의와 성실을
알아봐 주는 고마운 분들 덕분에,
근무는 여전히 힘들지만
분명 재미난 순간이 늘었다.
어제는 명란젓을,
오늘은 멜론을 받았다.
심지어 오늘 멜론을 주신 분은
어제 등록하셨고,
오늘 처음 운동하러 오신 분이었다.
회원님 : 여기로 와보세요, 선생님.
혹시 차 가져오셨어요?”
나 : 아니요, 저는 차 안 가져 다녀요.
회원님 : 아… 그럼 이걸 어떻게 드리죠…?
제게 5분만 시간 내주실 수 있을까요?
진짜 정신없이 바쁜 시간대였다.
그래도 뛰어가보니,
내게 무려 멜론 한 박스를 꺼내주셨다.
무게는 6.5kg.
나는 태어나서
이만큼의 멜론, 아니—
이만큼의 과일을 선물로 받아본 적이 없었다.
마음이 뭉클하니, 참 좋았다.
그런데 한 편으론… 불안했다.
나는 늘,
행복한 순간이 불안하다.
그게 무너질까 봐.
그 따뜻함이 오래 머물지 못하고
사라질까 봐.
그래서 나는 그 마음조차
조심스럽게 꺼내어 바라본다.
분명한 건,
내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는 것.
그 불안한 날들을 살아낸 오늘의 내가,
이제는
조금은 기뻐해도 괜찮다는 것.
불안이 서서히 차올랐다.
사건과 관련된 전화를 받은 지
5시간쯤 지났을까—
그 시간 동안 불안은 점점 과중되었고,
숨이 막혀왔다.
심장은 터질 듯이 두근거렸다.
남은 근무를 무사히 마쳐야 했기에,
상담쌤께 S.O.S를 보냈다.
“선생님, 너무 불안해요…”
쌤은 언제나
내 쏟아낼 곳 없는 많은 마음들을
말없이 받아주신다.
단 하나,
건강에 대해서만은 단호하게.
오늘도 그러셨다.
정원님, 괜찮아요.
더 괜찮아질 거예요.
불안은
우리를 혼란으로 밀어 넣지만,
휘발되고 사라질 거예요.
곧 본래의 상태인
‘괜찮음’으로 돌아올 겁니다.
나는 마스크 뒤로
조용히 심호흡을 이어갔다.
몸살 기운이 가시지 않았지만,
해야 할 일들이 많았기에
일처리에 집중했다.
그러다 현기증을 느껴
사탕 하나를 입에 물었다.
쌤께 감사하면서도
어쩐지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조금만 더
덜 흔들리고,
덜 불안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직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오늘, 나는 불안에서 곧장 죽음으로 향하던
익숙한 사고의 회로를 끊어낸 역사적인 날이었다.
그리고 그 직후,
쌤이 내게 해주신 말은
누군가에게도 울림이 될 것 같아,
이렇게 남겨둔다.
정원님, 훌륭합니다.
새로운 물결이 꾸준히 일면
결국에는 큰 물길이 바뀌는 법이죠.
정원님 마음의 물결이
삶과 생명의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마음은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자라나고 있어요.
강물이 멈추지 않고
밤낮으로
새로운 물길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처럼요.
오늘은 목요일,
브런치북 연재 약속이 있는 날이다.
목요일을 연재일로 정한 이유는 단순하다.
주말 동안 써둔 글을 충분히 다듬을 수 있고,
혹여 글이 미완이라 해도
월·화·수, 사흘이면
어떻게든 다듬어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오늘도 예정대로,
미리 보관해 둔 글을 마지막으로 다듬고,
클릭 한 번으로 발행했다.
블로그에서 한 차례 공개된 적이 있는
과거의 아픔에 관한 글이었기에—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글을 올린 직후부터
다시 내리고 싶어졌다.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이런 이야기를 세상에 내보여도 될까?’
‘누가 봐주긴 할까?’
‘너무 아픈 이야기 앞에,
누군가 다치게 되진 않을까?’
결국은,
거절당하거나 외면받을까 두려운 마음이었다.
그러다 문득,
틈틈이 브런치에 접속해
내 글을 확인하러 들어갔을 때—
‘좋아요’ 수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걸 발견했다.
신기했다.
‘이런 이야기에도 시선을 머물러 주는구나.’
‘이런 삶에도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있구나.’
‘이런 나도,
이 세상에 살아 있다는 걸
누군가는 알아주는구나.’
그 사실 하나만으로,
마음이 숨죽여 흔들렸다.
온갖 감정이 교차했다.
부끄러움과 뭉클함,
두려움과 고마움,
외로움과 연결감까지—
오늘의 발행은
그 모든 감정과 함께
세상에 ‘살아낸 나’를 꺼내 보인 일이었다.
하루를 마무리할 시간이 오면,
어쩐 일인지 공허한 마음이 든다.
몸은 분명 지쳤고, 해야 할 일들도 마쳤지만,
마음 한구석은 자꾸만 비어 있는 기분.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아낸 나에게
“수고했어” 한마디를 건네고 싶은데,
그 말조차 공중에서 흩어지는 듯하다.
밥도 해 먹고, 약도 챙기고,
사건 전화도 견디고,
글도 쓰고, 근무도 해낸 나인데—
왜 마음은 늘
더 열심히 산 하루 끝에서
허전하다고 말하는 걸까.
사람이든, 위로든,
어디론가 흘러가버린 감정들이
텅 빈 막차 안에서
다시 나를 찾아오려는 듯,
조용히 속삭인다.
그래도, 이런 공허함마저도
살아 있는 나의 일부이기에—
오늘도 그 공허함을 끌어안고
아무 일 없던 얼굴로
하루의 문을 천천히 닫는다.
살아 있는 마음에는,
공허조차 머물 수 있다는 사실이—
어쩌면 가장 잔잔한 위로인지도 모른다.
무탈하게, 그러나 근사하게 살아낸 하루.
그것이면 오늘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