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잘못이 아니야

살고 싶었을 뿐이야, 그 모든 날에도

by 정원



행복한 하루의 한가운데서도,

문득 이유 없이 마음이 가라앉을 때가 있다.

웃고 있었지만, 속은 무겁고 불편했다.

나는 자주 물었다.


“왜 나는 행복한 순간에도 우울할까.”


주말 일상 中 일부—



오늘, 상담에서 그 이유를 마주했다.

자립에 관한 글을 쓰며

과거를 하나하나 들추던 중,

아주 오래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중학생 시절,

성폭력 피해자 보호시설에서 생활한 적이 있다.

그곳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지내는

공동생활 시설이었고,

나는 그 안에서 수없이 부당한 일을 겪어야 했다.


장애가 있는 친구가 나를 꼬집고, 물어뜯어도

“그 친구는

장애가 있으니까 이해해줘야 해”라는 말이

당연하게 되돌아왔다.

누구도 내 아픔을 묻지 않았고,

항의할 수도, 기대할 수도 없었다.


모든 것이 내 탓이 되는 구조였다.

그래서 나는 점점 말이 없어졌다.

울지 않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그 시설에서의 어느 날,

나는 그곳에 있는 과자들을 몰래 먹었다.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었다.

과자를 아예 주지 않는 곳도 아니었고,

내 돈으로 사지 못하던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 한 번의 행동으로

나는 ‘손버릇 나쁜 아이’가 되었고,

사람들은 나를 비난했다.


나는 그저…

너무 외로워서, 너무 무서워서,

너무 말할 곳이 없어서

과자를 몰래 먹었던 건데.


그때 필요한 말은

“왜 그랬니?”가 아니라

“그랬구나,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였다는 걸

나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그리고 지금에서야

비로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네 잘못이 아니야, 정원아.”


이 말은 단지

범죄 피해의 순간에만

국한된 말이 아니다.


삶을 살아오며 겪은

모든 부당한 순간들에

필요했던 말이었다.


너무 억울했던 날들,

억지로 덮어쓴 오해,

누군가와 친하다는 이유로 욕을 들었던 날,

비행소녀, 가출청소년이라는 낙인을 맞았던 순간들.


하지만 나는 도망쳤을 뿐이었다.

어른들의 무관심과, 구조 없는 제도,

그 안에서 멍든 채 버텨야 했던 어린 나 자신에게서.


‘가출’이라기엔

너무 절박했고, 필사적이었다.

그건 단지 살기 위한 ‘도망’이었다.


나는 그 모든 시간 속에서

단 한 번이라도,

그 말을 간절히 기다려왔던 것 같다.


이 글을 보신다면

“네 잘못이 아니야.”

그 한 문장만 남기고 가주실래요?

오늘의 제겐, 위로가 너무도 필요한 밤이니까요.


그리고 이제는,

스스로에게도 그 말을 남겨보려 한다.


“정말로, 네 잘못이 아니었어.”

“너는 그저, 살고 싶었을 뿐이야.”


지금도 어디선가

비슷한 고통을 통과하고 있을

누군가에게도 전하고 싶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에요.

그 모든 시간은,

당신이 감당해야 할 몫이 아니었어요.


이 노래로, 글을 마무리합니다.

차노을 _ 「 잘 될 거야 」



대책 없는 위로, 대체 뭔 의미로
그런 근거 없는 위로들을 비웃었었지
그냥 말뿐인 걸 해결되는 거는 없어
답 없는 걸 이미 나도 알고 있어

그런데, 있잖아
너무 어둠 깊은 좌절 속에선
손으로 그려낸 작은 촛불이라도
빛이 보이는 것 같아 다시 걷게 되더라

꿈은 많은데, 나는 너무 게으른데,
이런 내가 싫은데, 자존감은 없는데
이런 내가 마이크를 쥐고 말하고 있네
완벽하지 않아도 돼 그러니까 분명 너도

Everything’s alright
Everything’s alright
모두가 잘 될 거야

Everything’s alright
Everything’s alright
괜찮을 거야

숨이 가쁠 때 더 이상 힘이 없을 때
나만 바보 같아 견디기 어려울 때
내가 손을 잡아줄게 그러니까 잘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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