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 덩어리

어긋난 존재로 살아가는 삶에 대하여

by 정원


‘살아 있음’은
누군가에겐 축복일지 몰라도,
어떤 이들에겐
끝없이 증명해야 하는 일이다.

괜찮아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무너짐은 지워지고,
다정하게 웃었다는 이유만으로
고통은 자격을 의심받는다.

나는 그런 날들을 지나왔다.

이 글은
모순 속에서 살아남은 한 존재가
자신의 언어로
자신을 복원해 가는 기록이다.






나는 평생 관리하며 살아야 하는 정신질환자다.

그 말은 내 삶을 설명하는 하나의 언어일 뿐이지만,

분명 내 일상에는 ‘관리’라는 단어가 덧붙는다.


문제는,

이 삶조차 내가 선택한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원한 적도, 의도한 적도 없다.

그저 견디고 있었을 뿐인데

정신질환이라는 이름이

어느 날 낙인처럼 붙어버렸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내게 말한다.

포기하지 말라고.

그 시간을 견딘 너는

누구보다 강하다고.

그러니 곧,

또다시 괜찮아질 거라고.


정원의 이름으로

글을 쓴다는 이유로,

잘 버티고 있다는 인상 하나만으로—


점점 더 ‘괜찮음’이라는 포장 속에

스스로를 가둬야만 했다.


도움을 청하는 말은

입 안에서 수없이 맴돌다가도

결국 삼켜져 버렸다.


“이 정도면 된 거 아니냐”는

말 없는 시선들 속에서

조용히 앓는 밤이 늘어갔다.



나는 모순 덩어리다.


살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죽음을 상상하고,

사람이 그립다 생각하면서도 거리를 두고,

도움을 원하면서도

막상 손 내민 이 앞에서는 웃으며 괜찮다고 말한다.


매일,

상반된 마음들 사이를 건너며 살아간다.



어쩌면 인간이란 존재는

세상과 본질적으로 상극이라,

태어나는 순간부터

모순의 길을 걷게 되는 건 아닐까.


정해진 궤도에서 자꾸만 어긋나는 삶.

그 위에다 나는

삶을, 호흡을—

구겨 넣고, 욱여넣으며 버텨 왔다.


존재 하나가 겨우 버티는 이 길 위에서

누구는 말한다.


“그래도 살아야지.”

“다 지나갈 거야.”


그러나 정작,

지나가지 않는 것들만이

날마다 쌓여갔다.



울어야 할 순간에도

눈물을 삼켜야 했고,

슬퍼야 할 자리에서도

감정을 감춰야 했다.


세상을 먼저 등진 친구의 빈자리를

여전히 마음속에 품고 있으면서도

울지 못했다.


그리움조차

사치가 되어버린 인생.

애도조차 허락되지 않는 삶이

모순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 모순이란 말인가.


게다가,

피해 사실조차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현실.


합당한 처벌을 요구하려면

얼마나 고통받았는지를

끝없이 증명해 보여야 한다.

날짜, 장소, 옷차림,

가해자의 손길이 닿은 부위까지—

하나하나 정확하게, 구체적으로, 선명하게.


다시 떠올리고, 다시 묘사하고, 다시 써내며

또 한 번 그 더러움 속에

몸을 던져야만 한다.


상대의 죄로 인해 생긴 상처인데도

왜 이 생존을 위해

진흙탕을 뒹굴 듯

다시 나를 더럽혀야 하는가.


모순 덩어리로 살아가며

모순 투성이의 세상 속에서

무너지지 않고 버텨낸 이 시간이

기이할 정도의 용기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가능했겠는가.



나는 오늘도

단단한 확신보다

흔들리는 감정들을 데리고

하루를 건넌다.


죽고 싶다는 마음을 안고서 밥을 먹고,

사라지고 싶다는 울음을 삼킨 채 출근하며

무너지는 틈 사이로

다시 아무 일 없는 듯 하루를 써 내려간다.


그 모든 모순 속에서

여전히 살아 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충분히 기적처럼 용감했다.



그렇게

모순 덩어리인 채로—


어긋남 속에서도

한 줄의 호흡으로,

조용한 절규 하나로—


오늘을,

또 견뎌낸다.






누구도 허락해주지 않았던 길.
늘 어긋났고, 비껴 났고,
틀렸다고 불렸던 생존의 방식.

하지만 이제야 안다.
그 모든 걸음이,
사실은
나만의 고유한 필체였음을.

그렇게 써 내려간 하루하루가,
결국은 나라는 사람의 문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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