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 생존자의 하루 일기
어젯밤, 한참을 울다가 겨우 잠이 들었다.
가끔씩 폭발하듯 울음이 터지는 시기가 있는 걸까, 아니면 요즘의 내가 그만큼 예민한 걸까. 마음은 알다가도 모르겠고, 너무 어려워서 자주 슬퍼진다.
상담 내내 말 한마디 못하고 울기만 해서 선생님께 죄송했다. 신경 쓸 일이 많아지면서 깊은 심연 어딘가가 건드려진 것 같은데, 그게 무엇인지 아직 알지 못한다.
슬픈 생각을 밀어내려 애써 밝은 척해도, 하루 종일 심기가 불편하고 답답하다. 자꾸만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심연에서 번져온다.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집 근처 센터에서 코칭을 받아야 했지만, 정말 가기 싫었다. 그러나 약속을 취소한 뒤 몰려올 자괴감이 더 괴로울 것 같아 예정대로 나섰다. 정신을 깨우려 커피를 들고, 불어오는 바람을 애써 느껴보았다.
무너진 아치와 고관절 기능을 되살리고 균형을 찾아가기 위한 운동들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오늘은 특히 앞벅지를 채우는 훈련이 이어졌고, 런지 스윙을 할 때마다 심장은 미친 듯 뛰고 숨은 턱끝까지 차올랐다. 잡생각을 밀어내기에는 최고였다.
‘트레이너들의 트레이너’라 불리는 선생님들과 함께 운동하다 보니 한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건강해지고 있다는 감각과 동시에, 내 안에서 다시 충전되는 무언가가 분명 있었다. 언젠가 나 역시 운동을 통해 누군가에게 그런 힘과 영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집으로 돌아와 도시락을 싸고, 쌤들에게 드릴 것들을 챙기느라 분주했다. 잔뜩 선물 받은 카이막 모찌를 나누고 싶었지만, 성의 없이 모찌만 건네고 싶진 않았다. 금요일, 가장 피곤할 직장인들을 위해 응원의 메시지와 함께 작은 간식 꾸러미를 만들었다.
한때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내 모습이 싫어, 나누지 않는 삶을 지향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나는 결국 받는 것보다 주는 걸 더 좋아하는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나누며 더 큰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 또한 내게는 소중하다.
쌤들을 서포트하는 자리에서 ‘내가 정말 도움이 되고 있을까?’ 하는 의심이 늘 따라왔는데, 누군가의 하루에 좋은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이 기쁘게 다가왔다.
출근길, 차갑고 굵은 빗줄기가 쏟아졌다. 추위 때문인지, 아니면 몸이 기억하는 두려움 때문인지 전신이 떨려왔지만, 씩씩하게 집 밖을 나섰다. 그리고 매니저님께 메시지를 보냈다.
결국 올해 첫 우중런을 매니저님과 함께하게 되었다. 요란하던 빗줄기는 어느새 보슬비가 되어 있었고, 하천을 따라 난 길은 시원하게 트여 있었다. 하지만 너무 오랜만에 달리다 보니 내 페이스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 나를 보며 매니저님은 앞장서서, 다른 건 신경 쓰지 말고 발만 맞추라고 하셨다.
1km를 지나 1.5km까지는 케이던스에만 집중하느라 풍경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고, 반환 지점에 가까워지자 우측 갈비뼈가 결려 한 걸음도 떼기 어려웠다. 멈추고 싶었다. 그때 매니저님이 말했다.
“쌤, 숨 깊이 들이마시고 내쉬어보세요. 세 번만.”
페이스를 한껏 늦추자 온몸의 힘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호흡이 안정되면서 그제야 하천이 눈에 들어왔다. 물을 머금은 나무들, 한 마리 왜가리, 흐르는 물줄기가 시원했고, 빗방울이 열을 식혀주는 감각이 온몸을 감쌌다.
나는 아직 매니저님의 수업 장면을 직접 본 적이 없어, 어떤 티칭을 하고 있을지 늘 궁금했다. 그러나 오늘 러닝을 함께하며 페이스 메이커가 되어주는 모습을 통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건 타고난 티칭 감각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정말 잘 알려주신다.’
꾸짖음도 나무람도 없이, 지적조차 거부감이 들지 않게 전하는 태도. 나란히 센터로 돌아오는 길, 센터 로고가 새겨진 매니저님의 등 뒤가 왠지 모르게 든든하게 느껴졌다.
센터로 돌아와 씻고, 업무를 잠시 보다가 드디어 오늘의 첫끼를 먹었다. 기다리던 한 끼였는지 허기와 함께 마음도 조금 풀어졌다. 하지만 곧 두통이 몰려와, 영양 섭취도 없이 무리했던 탓이었구나 싶었다. 그때 회원님이 건네주신 초콜릿과, 늦은 저녁으로 챙겨 온 그릭요거트가 작은 위로처럼 다가왔다.
블로그도 쓰고, 기획 회의도 하고, 그렇게 하루는 느긋하게 흘러갔다. 월말이 다가오면 또 정신없이 바빠지겠지만, 그때의 나는 또 어떻게든 해내줄 거라 믿는다. 오늘의 나는 여기까지. 내일의 나는 또 내 몫을 해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