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하루
자폐성향 아이들이 보이는 증상 중에 '분노발작'이라는 것이 있다.
영어로는 Tantrum인데 자폐와 관련한 이론서나 치료서들에서는 번역을 보통 그렇게 하는 것 같다.
영어사전에 Tantrum을 찾아보면 아이들이 발끈하여 성질이나 짜증을 부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나온다.
반드시 자폐성향 아이들만 Tantrum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이 떼쓰고 울고 길바닥에 드러눕고 하는것은 특이하지 않다.
일반 아동들도 자기가 원하는 걸 얻지 못할 경우 분노에 차 그러한 행동을 하곤 한다.
자폐성향 아이들의 분노발작이 일반 아이들과 다른 점이라면
일반인에게는 별것 아닌 자극에 아주 과민하게 반응하여 나타나는 증상이라는 점,
훨씬 더 빈번하게 발생하는 점,
특정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청각이 예민한 아이의 경우 일반인에게는 별로 특이하지 않은 소리에 지나치게 울어제끼고,
하루에도 몇 번씩 통제불능의 상황으로 분노를 표출하기도 하며,
자극추구를 못하게 막을 경우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하고 바닥에 드러누워 울기도 한다.
콩이도 여러 상황에서 분노발작을 보이는데 특히, 누군가 자기가 하는 말을 수정해 주는 것을 잘 참지 못한다.
"이제 집에 올거야."
"이럴 때는 '집에 갈거야' 라고 말해야 해."
갑자기 분위이기가 바뀐다.
콩이는 울음기 있는 작은 목소리로 "집에 올거야 라고 해야지.."라고 중얼거리고,
"이 때는 '갈거야'가 맞아."라고 말하기라도 하면
그 때부터 걷잡을 수 없는 울음을 터뜨린다.
우는 걸 탓하기라도 하면 제 녀석이 할 수 있는 최대의 목소리와 최대의 몸짓으로 반항을 한다.
콩이는 또 유선청소기 소리에 대하여 과민하게 반응한다.
예고없는 무선청소기 소리에는 "왜 청소해!!"라고 크게 외치는 정도에서 끝나는데
유선청소기 소리는 예고를 해도 잘 견디지 못한다.
울면서 도망가고, 다시 쫓아와서 울면서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고, 또 도망간다.
청각이 예민한 녀석에게는 뭔가 엄청나게 거슬리는 소리인 것 같다.
자폐성향의 아이를 치료하는 분들은 이러한 분노발작을 일으키는 원인을 피하라고 조언한다.
아이를 관심있게 보면 어떤 상황에서 분노발작이 발생하는 가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인을 피할 수 없을 때는 미리 아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고해 줘야 한다.
아이가 감각적으로 정신적으로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하는 것이다.
콩이에게 분노발작이 생긴 원인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선천적이고 기질적이기만 할까..
아닌 것 같다..
결론은..
아빠의 신경질적인 성격탓인듯 하다.
아이의 미숙한 행동에 발작하듯이 화를 낼 때가 있다.
지나고 보면 화를 낼 상황이 아닌데도 참지 못하게 화를 낼 때가 있다.
그게 일관적이지가 않다.
어쩔 때는 웃으며 넘어가고 어쩔 때는 황당하게 화를 낸다.
바닥에 반찬을 잔뜩 흘려도 뭐라 않다가 옷에 물을 조금 흘리면 화를 낸다.
놀이방을 온통 어지럽혀도 뭐라 않다가 낱말카드를 조금 흐뜨려놨다고 화를 낸다.
콩이 어린이집 여름방학 마지막 날.
콩이와 색칠놀이를 하던 중이다.
왼쪽의 채색된 그림을 보고 오른쪽의 채색되지 않은 그림에 색칠을 하는 놀이이다.
녀석은 그 간단한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왼쪽 그림의 빨간원 위에 다시 빨간색을 칠하라는 것 쯤으로 이해한다.
오른쪽 그림에 색칠하는 것이라고 하자 짜증이 난 기색이 역력하다.
몇번 더 지적을 하자 책이고 책상이고 온통 아무렇게나 크레파스를 칠한다.
꾹 참고 같이 색칠을 해 준다.
녀석은 몇번 따라하는 듯 하더니 또 난장판을 만든다.
결국 못난 아빠는 참지 못하고 미친 듯이 화를 냈다.
책을 찢어버리고, 크레파스를 날려버리고, 책상을 뒤집었다.
콩이가 아니라 아빠가 분노발작이다.
아빠의 행태가 콩이에게 누적되어 온 것 같다.
녀석은 요즘 신경질과 분노발작이 더 늘은 것 같다.
발달센터 수업시간에도 짜증이 많이 늘었다고 한다.
선천적/기질적인 것을 떠나 아빠가 이 녀석의 발달을 가로막고 있는 것 같다.
나쁜 습관을 들여주고 있는 것 같다.
힘들다.
콩이가 겁먹은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뒤돌아서 가슴을 치면서 울었다.
참 힘든 날이다.
아빠한테 다 혼났을 무렵
때마침 집에 돌아온 엄마에게 달려가 아빠한테 혼난 사실을 말한다.
녀석의 말만 들으면 별일 없었던 것 같다.
그만큼 상황을 전달을 못한다.
걱정이다.
잘 시간이 되자 아무일 없었던 듯 아빠한테 온다.
"아빠! 엄마가 나 안아주면서 '엄마가 우리 콩이를 좀 더 예쁘게 낳았어야 하는데...' 그러네"
뭔가 좀 슬픈 걸 아는 듯이 말한다.
"아빠가 널 좀 더 튼튼하게 낳았어야 하는데..."
좀 더 예쁘게.. 좀 더 튼튼하게... 이렇게 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힘든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