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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이 아빠
Aug 31. 2021
#23 아빠의 욕심일 뿐
우리 콩이는 느리다.
다른 부분과 마찬가지로 소근육 발달도 느려 손으로 뭔가를 조작하는 것이 참 힘들다.
누구나 쉽게 하는 것도 참 어렵다.
일곱살이 되면서 콩이는 혼자서 마스크를 양쪽 귀에 거는것이 가능했다.
처음으로 스스로 마스크를 거는 모습을 봤을 때 느낀 대견함이라니..
분명 잊을 수가 없다.
엄마 아빠가 가르쳐준 적이 없는데 어느새 어린이집에서 마스크 쓰는 방법을 배워온 것이다.
물론 더 어린 꼬마들도 다 하는 쉬운 일이지만
마스크 끈 양쪽을 양손으로 붙잡고 쭉 잡아당겨 양쪽 귀에 쏙 거는 모습이 정말 기특했다.
그 때는 분명 그랬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녀석이 자꾸 마스크를 제대로 걸지 못하고 땅에 떨어뜨린다.
유심히 보니 마스크 끈을 엄지와 검지에 걸어 간격을 약간 벌린 후 귀에 제대로 거는 것이 아니라
그냥 쭉 당겨 귀 근처에서 툭 놓고 있었다.
전에는 엄지와 검지를 사용하여 끈을 벌리지 않더라도 양쪽 귀 뒷부분까지 끈을 가져가 머리쪽으로 가깝게 댄 상태에서 놨던 것 같다.
그래서 끈이 알아서 귀에 걸려줬던거 같은데
며칠전부터는 제대로 귀 뒷부분으로 당기지 않은 상태에서 놔 버린다.
거의 매일 일찍 일어나는 콩이는 아침에 비가 와서 그런지 오늘은 늦잠을 잔다.
곤히 자는 걸 깨우고 싶지 않아 그냥 뒀더니 아침이 바빠졌다.
이미 평소보다 출발이 늦어졌는데 이 녀석이 현관에 서서 계속해서 마스크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제대로 귀에 걸어보라고 하자 지적을 당해 화가 나는 모양이다.
지적을 받으면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부쩍 심해졌다.
더 대충한다.
못참고 마스크를 빼앗아 쓰레기통에 버리고 버럭버럭 화를 내었다.
어린이집을 가야하고 출근을 해야하니 새 마스크를 꺼내어 주었다.
또 실수하고, 또 아빠의 고성이 시작되고, 콩이는 더 이상하게 행동하고 울먹이고..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출근을 하면서 심한 자책이 몰려온다.
그깟 마스크가 뭐라고..
안되면 귀에 걸어주고 다음에 차근차근알려주면 되지 아침에 어린이집 가는 아이한테 그렇게 화낼 일인가.
분명
몇달전 콩이 혼자서 마스크를 쓸 수 있게 된 것을 보고 그렇게 뿌듯했는데,
어느새 욕심이 생겨 더 많은 걸 기대하고 있구나..
욕심은 필요하다.
세상사 욕심이 있어야 발전이 있다.
그런데 아빠 혼자서 기대치를 높여놓고 그걸 느림보 우리딸한테 강요하고 있으니 문제가 생긴다.
이해가 느린 콩이는 왜 혼나는지 왜 아빠가 화내는지 황당해할 수도 있다.
제멋대로 기대하고 제멋대로 실망하고 제멋대로 분노하는 걸 어찌 이해 한단 말인가.
새삼 생각해보면
난 뭐 남들보다 잘하는게 있나.. 남들만큼 잘하는게 뭐가 있나..
느린 아이 잘 보듬어 주고 잘 다독여 주지는 못할 망정
못한다고 화내고, 그 못하는 아이는 반발해서 화내고..
문제는 또 있다.
콩이 같은 자폐스펙트럼 아동들은 퇴행과 발달을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그걸 잘 안다.
이제 잘 하는구나 싶다가도 이전보다 못해지는 퇴행이 오기도 한다.
차례를 지켜 줄을 서거나 선생님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할 때 자리에 착석하는 것이 어느정도 되다가도
또 한동안 언제 가능했냐는 듯 번잡하고 부산스러워지기도 한다.
예전에 둔하던 감각이 발달해서 전에는 보거나 느끼지 못하던 것을 인지하게 되면서
역으로 퇴행이 오는 경우도 있다.
내내 문제없던 계단 내려가는 것을 못한다거나 미끄럼틀에서 무서워서 내려오지 못하거나 하는 식이다.
왜 그런일이 일어나는지가 크게 중요한게 아니다.
그냥 그럴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화를 낼 게 아니다.
퇴행과 발달이 반복되면서 점점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막상 퇴행하는 모습을 보면 참기가 힘들다.
그렇지 않아도 느린데 전에 하던 행동들을 못하는 모습을 보면 울화통이 치민다.
그래서는 안되는거지만 순간을 참지 못하고 콩이에게 함부로 하곤 한다.
이미 나 혼자 기대치를 높여 놓은 것이다.
혼자서 기대를 높이 가져놓고선 그걸 충족못해서 발생하는 화를 애한테 투하한다.
다
잘못된
욕심이다.
아이가 스스로 욕심을 가지고 발전하도록 해야 하는데
아빠가 욕심을 부리고, 발달하지 못함을 지적하고, 어서 빨리 발달하기를 강요한다.
콩이는 남들보다 아빠의 배려가 더욱 많이 필요한 아이이다.
콩이는 아빠한테 안겨 사과를 받고 화해할 때면 아빠가 했던 말을 나직이 읊조린다.
"아빠가 우리 딸한테 잘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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