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콩이 아빠 Aug 09. 2022

# 자폐스펙트럼 소녀의 초등생활 3

하루일과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콩이의 생활에는

언어치료, 놀이치료, 감각통합치료 같은 여러가지 '치료'들이 최소 하루 하나는 차지하고 있었다.

발달센터에 가서 하는 수업도 있고, 치료사 선생님이 집으로 방문하는 수업도 있었다.


그런데 발달센터 수업은 초등학교 입학에 임박해서 다 그만두게 되었다.

이유는 두가지다.

첫째는 실비보험의 문제다.

발달센터 치료비는 본인부담이 25%이고 나머지는 실비보험으로 처리할 수 있어서 그나마 경제적 부담이 덜했는데

2022년 2월 무렵 부터 대부분의 실비보험사에서 발달센터 치료비를 사실상 실비보험의 보상 대상에서

제외하게 된 것이다.

발달센터를 운영하는 병원에서는 언어지연을 사유로 R코드가 표시된 진단서를 발급해 주었고,

그것을 근거로 보험금이 지급되었었는데, 최근 보험사들의 실손보험 손해율이 커지자 이 부분부터

재빨리 정리하게 된 것 같다.

학령기 아이들의 경우 R코드가 적합하지 않다며, 보험사에서 지정한 자문의에게 새로이 진단을 의뢰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대부분 실비보험 대상에서 제외되는 결과가 나온다.

이에 대하여 부당함을 주장하며 대항하는 부모님들 계시지만 결과는 보험금 지급 보류.

보류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수없기에 지급 거절과 다름이 없다.

병원 부설 발달센터가 필수는 아니라고 생각했고, 콩이는 R코드가 아닌 F코드로 분류될 것이 자명하였던터라

향후로는 발달치료로 보험금을 신청하지 않기로 보험사와 합의하고 마지막 치료까지의 보험금은 지급받는것으로 마무리 하였다.

둘째는 그동안 콩이를 돌봐주셨던 활동보조 선생님이 그만둔 탓이다.

사실 이게 더 큰 원인이 되었다.

발달센터를 오가는 과정에서 차에서 내리지 않겠다, 센터에 가지 않겠다, 센터에서 나가지 않겠다 등등

이유로 발생하는 콩이의 난동이 활동보조 선생님이 감당할수 없을 지경이 된 것이다.

1년반 넘게 콩이를 이해하며 돌봐주신 따뜻한 분이 마음이 힘들에서 그만두는 상황에서

다른 활동보조인이나 돌봄 이모님이 콩이를 발달센터에 데리고 다닐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었다.

 



토요일 한번을 제외하고는 발달센터 수업을 다 중단했다.

빈자리는 방문수업으로 모두 채워넣었다.

활동보조 선생님의 부담을 최대한 줄이는 것도 중요했다.

고민이 있었고 부모의 직관을 가미한 선택을 하였다.

초등학생이 된 콩이에게 언제까지 발달치료만 시켜줄수는 없었다.

발달치료 효과도 있으면서 다른 아이들이 하는 활동도 할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였다.


방문수업으로 하는 발달치료의 목적과 효과는 결국 소근육 발달과 자조능력 강화이다.

그래서 기존의 각종 치료를 대체할 수업으로 선택한 것은 피아노 미술 수업이다.

피아노는 열손가락을 고루 사용하니 소근육 발달에 도움이 될 것이고,

초등학생이라면 대부분 다 배우는 것이니 나중에 콩이의 학교생활에 도움이 될 것이었다.

미술은 그리고 오리고 칠하고 만들면서 오감을 자극하니 역시 소근육 발달에 도움이 될 것이고,

초등학교 활동에 미술이 빠지지 않으니 이 역시 학교생활에 도움이 될 것이었다.

경제적인 고려도 포함되었다.

수업료가 기존 치료에 비하면 1/3 수준이다.




선생님 구하는데 시행착오가 좀 있었다.

콩이가 더 어릴때 했던 언어치료, 작업치료 같은 특수치료 선생님을

무슨무슨기관에 소속된 분들로 구했던 터라

피아노나 미술 선생님도 그런 전문업체 소속 선생님으로 구했었다.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기본적으로 정해진 표준틀에서 어떻게든 진도를 나가려하니

콩이는 흥미를 못 가졌고

조금이라도 자주 만나는게 콩이에게 좋을 것 같아 주 2회 수업을 요청하니

콩이가 수업을 못 따라오니 주 1회 밖에 못하겠다고 한다.

자주 만나고 자주 배우는 것이 좋은데 오히려 수업을 최소화 하겠다고 한다.

말로는 공감해주는 듯 했지만 결국 생각의 방향이 달랐다.


지역 카페를 통하여 같은 동네에 사는 선생님으로 구했다.

표준화된 수업틀에서 벗어나

콩이의 발달상태와 마음상태에 맞게 천천히 느리게 여러가지 활동을 해 주실 분이 필요했다.

가까운 곳에 거주해야 조금이라도 맘 편히 오실 것 같았다.


예술융합수업.

콩이와 같은 아이들이 받게 되는 피아노 수업의 거창한 다른 명칭이다.

피아노를 가르치기는 하는데 음악과 미술을 활용한 놀이 없이는 40분 수업 진행이 어렵다.

운주법은 조금만 복잡한 듯 해지면 이내 거부한다.

음감이 좋은 편이라 제멋대로 계이름을 찾아가는 것은 곧잘 하는 것 같은데

소근육 발달이 느리니 다섯손가락을 모두 활용해서 건반을 치기는 참 힘들어 보인다.

의자에 얌전히 앉아 있는 시간 자체가 길지 않다.

집중력이 길지 않으니 어쩔수 없다.


그래서 선생님은 역사적인 음악가의 그림을 보여주고 동화처럼 들려주기도 하고

5선지에 음표그리기와 색칠하기를 미술수업처럼 진행하기도 한다.

음악에 맞게 쉬운 춤동작을 알려주기도 하고

반주에 맞게 몸놀이를 하기도 한다.


주2회 수업에서 거의 한달은 40분 수업중 겨우 10분 정도 방에 붙어있었다.

거실로 뛰어나가 책을 보다가 들어가기도 하고

애착이불을 뒤집어 쓰고 잠자는 척 하다가 다시 들어가기도 했다.

방에 머무는 그 10분도 딱히 수업이 진행된건 아니었다.

거부감도 심하고 저항도 심해서 선생님한테 미안할 정도였다.


선생님이 잘 참아주셨다.

피아노를 방에서 거실로 옮겨놓고 수업을 거실에서 하면서 3개월 정도 되니 오히려 재미를 붙인 것 같다.

40분 수업 중 주제는 이탈해도

자리는 이탈하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피아노 자체를 좋아하게 된 것 같다.

평소에도 1분씩, 2분씩 수시로 피아노 앞에 서서 동요 계이름에 맞게 건반을 눌러댔다.


유아미술수업.

콩이 같은 아이에게 미술 수업 어려운 경우가 많다.

우선 물감이나 크레파스 같은 재료들이 손에 묻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소근육이 약하고 눈손 협응이 어려우니 오리기 붙이기 같은 것도 잘 안된다.

초반에 미술선생님과 상담을 많이 하였다.

나이보다 2살 정도 어린 아이라고 생각하시라..

진도에 연연해 하실 필요 없다..

반항이 많고 칭얼거림이 심해지면 당장은수업을 안해도 좋으니 힘들지만 참고 지켜보시기만 해달라..

못하고 부족해도 콩이가 직접 시도하게 해달라..

미술이라기 보다 미술 심리치료 비슷한 과정으로 생각해 주시라...


역시 이탈이 심했다.

방에 붙어있지를 못했다.

변화가 있었다.

역시 선생님이 잘 참아주셨다.

피아노와 마찬가지로 책상을 거실로 옮기고 수업이 거실에서 진행되었다.

공간이 넓어져서인지 딱히 멀리 도망가지 않아도 되어서인지

책상과 소파를 오가며 수업이 제법 잘 되기 시작하였다.


남들이 보면 별것도 아니겠지만

엄마 아빠가 봐도 참 별것 아니지만

김방구책, 개구리자세를 한 콩이, 꽃꽃이 화분 등

그리기, 찢기, 칠하기, 오리기, 붙이기 등등 기법을 활용한

콩이만의 작품들이 하나 둘 늘어갔다.




발달치료를 완전 배제하기는 마음이 불안했다.

그래서 주2회는 방문치료사 선생님과 작업치료를 한다.

손으로 이것저것 만지고 단순하지만 콩이에게는 어려운 뭔가를 만들고 눈과 손의 협응을 익히는

콩이가 좋아하는 수업이다.

 

이렇게 해서 초등학생 콩이의 일과가 정착이 되었다.

아침에 학교, 오후에 지역아동센터에서 지내면서 평범한 아이들의 일상을 함께 하고

저녁에는 집에서 자신만의 교육을 받는 식의 일과에 콩이는 어느정도 익숙해졌다.


콩이는 익숙해졌다...

그렇지만 깨어져야할 익숙함이다.

오롯이 평범한 아이들의 일상으로 들어갈 날이 다가올른지...

큰 기대는 안하는게 좋다..

 



 

이전 02화 # 자폐스펙트럼 소녀의 초등생활 2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