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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장인 김세평 Jun 30. 2024

화룡점정 삼각김밥

화룡점정(畵龍點睛) - 가장 중요한 부분을 끝내고 일을 완성한다는 말

<야채를 못 먹어요> #03 화룡점정 삼각김밥



어느 날이었다. 회사 휴게실에서 직장선배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다 뜬금 편의점이 대화주제로 나왔다.

  

“초등학교 다니는 우리 애는 글쎄 친구들이랑 편의점에 한번 들어가면 나오질 않아요.”     


“에? 편의점에 왜 그렇게나 오래 있는데요??”


그러고 보니 어른들이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어린 친구들은 편의점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적이 있다. 내가 어릴 때 친구들하고는 고민 없이 무조건 오락실 아니면 PC방이었는데 후후.     


내 기억에 편의점은 요즘 친구들처럼 아지트삼아 하루 종일 있고 그런 곳은 아니었고 주로 배고플 때 잠깐 컵라면과 같은 간식 사먹으러 잠깐 들르던 그런 곳이었다. 한창 성장기에는 하루에도 몇 끼를 먹 정도로 늘 배가 고팠으니 편의점은 일종의 주유소(?)같은 느낌이기도 했다.


학창시절 나는 학교 시험기간만 되면 친구들과 독서실을 다녔는데, 그때 독서실이 있던 건물 1층에 있던 편의점을 자주 갔던 게 기난다. 독서실에서 공부하다가 배고파지면 다 같이 우르르 나가 편의점을 습격하고 그랬.


편의점에서는 친구들과 주로 컵라면을 끓여먹데, 친구들은 컵라면으로는 양이 부족했던지 볶음김치라던가 김밥도 곁들어서 먹었다. 반면 야채를 먹지 못하는 나는 볶음김치나 김밥은 당연 먹질 못하고 그저 컵라면 하나만 먹었다(심지어 컵라면 안에 있는 야채 건더기도 빼고 먹었고).


그렇다보니 편의점에서 나올 때 친구들은 배부르게 잘 먹었다며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나오는데, 달랑 컵라면 하나 먹은 나는 여전히 배가 고파 불만족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편의점에는 라면 말고도 빵이나 과자도 있었지만 뭐랄까, 라면과의 궁합을 생각하면 빵과 과자는 별로 같이 먹고 싶진 않았다. 아무튼 편의점 습격을 마치고 독서실돌아와 다시 공부를 하는데, 전히 배가 고픈 나는 친구들처럼 공부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다.


사실 뭐 내가 공부를 워낙 싫어해 집중하지 못한 것도 있었지만 그때는 괜히 뭔가 억울하고 그랬다. 나도 친구들처럼 편의점에서 배부르게 식사했더라면 분명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을 거라며 공부 못하는 학생의 전형적인 핑계를 대면서.


아무튼 나의 이 억울함을 달래기 위해서는 내게도 컵라면과 함께 먹을 무언가가 필요했다(물론 그 무언가에는 야채가 없어야만 했). 그래서 나는 편의점에 갈 때마다 내가 라면과 함께 먹을 수 있는 그 무언가를 샅샅이 찾아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어김없이 친구들과 독서실 밑 편의점을 갔다가 못 보던 음식을 봤는데 바로 ‘삼각김밥’이었다. 삼각형으로 된 김밥이라고 하니 다들 신기했던지 그 자리에서 바로 삼각김밥을 사먹다. 그러나 나는 그게 삼각형이든 사각형이든 당연 야채가 들어간 김밥일 거란 생각에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런데 친구 하나가 먹고 있는 삼각김밥을 보는데 이상하게 야채로 추정되는 재료가 보이지 않았다. 어라? 야채가 들어가지 않는 김밥도 있나?? 혹시나 해서 나는 친구가 먹고 있던 삼각김밥을 뺏어 이리저리 살펴봤다.


“야 임마! 왜 남이 먹고 있는 김밥을 뺏고 난리야?”     


이상하다, 분명 야채없는 거 같은데… 네가 지금 먹고 있는 삼각김밥에 야채 같은 건 안 들어갔어?”     


“야채? 고추장 제육볶음 맛은 야채 없어. 다른 맛은 모르겠는데.”     


지, 진짜?”     


친구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는 바로 고추장 제육볶음 삼각김밥을 사서 한입 베어 물었다. 친구의 말대로 정말 고추장 제육볶음 삼각김밥에는 야채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삼각김밥과 끓여놓은 컵라면을 곁들여 본격적인 식사에 들어갔는데, 세상에나! 삼각김밥과 컵라면은 정말 환상의 조화였다.


그동안 컵라면과 함께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고 있었는데, 삼각김밥 등장은 화룡점정 그 자체였다. 그날 나는 그 누구보다 포만감에 쩐 표정(?)을 지으며 편의점을 나와 독서실로 돌아갔다(덕분에 식곤증이 몰려와 책상에 엎드려 잠만 잔 건 안 비밀).


편의점 이야기를 하다가 뜬금 삼각김밥 이야기까지 하게 됐는데,  아무튼 삼각김밥이 내 인생의 화룡점정이던 시절이 있었다(그러고 보면 어른이 된 지금은 좋은 집에, 비싼 차가 있어야만 인생이 화룡점정 찍었다고 생각는지 모르겠다).


아까부터 계속 먹는 이야기를 했더니 가 고파졌다. 후후. 그럼 오랜만에 컵라면과 삼각김밥 하나 사서 예전처럼 화룡점정이나 한번 찍어볼까? 아, 물론 삼각김밥은 야채 없는 제육볶음 맛으로 먹어야지!


나저나 삼각김밥에 관련한 에피소드가 은근 긴 있는데 그럼 다음 이야기도 삼각김밥으로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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