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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장인 김세평 Jun 23. 2024

각골난망 라볶이

각골난망(刻骨難忘) - 남의 은혜가 뼈에 깊이 새겨져 잊혀지지 않음

<야채를 못 먹어요> #02 각골난망 라볶이



큰일이네. 주문한 음식에 야채라도 있으면 어떡하지?’     


남들은 식당에서 주문할 때 음식이 맛없을까봐 걱정을 하는데, 나는 음식에 야채가 들어있을까 봐 걱정을 한다. 만약 야채가 있는지도 모르고 무심코 먹기라도 했다간 어휴 먹은 양보다 뱉는 양이 많은 기적(?)을 보일 수도 있기에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래도 릴 때에 비해서 지금은 어느 정도 야채를 먹을 수 있어서 예전보다 그런 걱정은 덜해서 다행이긴 하다. 어릴 때는 진짜 야채 쪼가리 하나 먹질 못할 정도로 몸이 예민했다. 그렇다 보니 집 밖에서 음식 먹는 걸 굉장히 힘들어해 외식은 꿈도 못 꿨다.


그런데 내가 중학생이 되면서 늦은 시간까지 학원을 다녀야만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저녁  밖에서 해결해야만 했다. 집 밖에서 밥이란 걸 사먹어 본 적이 없는 나는 저녁으로 뭘 먹어야할지 몰랐고 그래서 그냥 굶었는데, 수업 듣는 내내 꼬르륵 소리가 나고 가 너무 고파서 아주 혼났다.


다행히 학원에서 친구들을 사귀게  나는 그들에게 내가 야채를 먹지 못하는 걸 이야기하며 내가 저녁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을 알려달라고 도움을 요청했다. 내 이야기를 듣 친구들은 고민하더니, 음식점에 고를 음식이 많수록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적어도 몇 개는 있지 않겠냐 나를 김밥천국과 같이 음식메뉴가 많은 음식점으로 데려갔다.


친구들을 따라간 음식점에는 정말 음식 메뉴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나는 메뉴판을 아무리 봐도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없어보다. 나는 친구들에게 뭘 골라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니 친구들은 직접 내가 먹을 수 있을 거 같은 음식을 골라주었다.


 혹시 김밥 좋아하냐? 여기 김밥 맛있다던데 김밥 한번 시켜 먹어봐.”


마! 김밥이야말로 온갖 야채로 가득한 음식인데 누굴 죽일 셈이냐!!”


“어? 세평아. 옆 테이블에서 먹고 있는 음식 좀 봐봐. 저건 네가 먹을 수 있을 거 같은데?”


“옆 테이블에?”


친구 하나가 옆 테이블에서 주문한 음식 하나를 가리켜서 봤는데 뭔가 떡볶이처럼 생긴 음식이었다. 그런데 떡볶이뿐만 아니라 라면 같이 생긴 것도 위에 얹있었는데 뭔가 푸짐해 보였다. 러고 보니 메뉴판에 라볶이란 걸 본 것 같은데 아마도 저걸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대충 눈짓으로 옆 테이블 있는 라볶이를 이리저리 살펴봤다. 떡과 어묵 그리고 라면 외에 야채로 추정되는 재료는 보이지 않았다. 보기에는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 같았다. 친구도 내가 먹을 수 있을 거라 생각이 들었던지 한번 먹어보라고 적극 권했다.


저건 네가 먹을 수 있을 거 같아. 한번 먹어봐!


그, 그럴까? 여 여기 주문이요!”


주문한 라볶이가 나오 나는 젓가락을 들어 검열에 들어갔다. 이리저리 라볶이를 휘젓는데 파와 양파 몇 덩어리가 있어 당황했다. 그래도 큼지막 했기에 쉽게 덜어낼 수 있어서 다이었다.


정말 우여곡절 끝에 만난 라볶이었다. 드디어 집 밖에서 처음 스스로 주문한 음식을 먹어보는 순간! 나는 먼저 면발을 집어 한입 먹었다. 정말 맛있었다. 떡볶이와 라면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음식인 줄은 몰랐었다.


이번에는 숟가락을 들어 라볶이 소스를 한번 떠 먹었다. 세상에나! 야채로만 가득할 줄 알았던 이 험난한 세상(?)에 한줄기 빛이 바로 여기에 있었구나!!바로 나는 라볶이를 맛있게 해치워버렸고, 그렇게 내 인생 처음으로 집에서만 누리던 안도감을 집 밖에서도 누리게 되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눈이 오든 비가 오든 라볶이만 먹었던 거 같다. 오죽했으면 친구들이 너는 라볶이랑 결혼했냐며 놀려댔다. 친구들의 놀림에도 나는 개의치 않고 매일 저녁마다 라볶이를 먹었다. 그렇게 내 학창시절은 늘 라볶이가 함께했다.


그 이후로 아마 족히 20년은 더 된 것 같다. 세월이 많이 흘렀음에도 나는 여전히 라볶이를 찾는 편이다. 최근에는 중국당면이 들어간 로제 떡볶이라던가 쫄면이 들어간 짜장 떡볶이에 마음을 빼앗기긴 했지만(?) 결국에는 오리지널 라볶이를 다시 찾게 다.


그런데 요즘은 뭐랄까, 라볶이를 먹게되는 날에는 문득 학창시절 김밥천국을 함께 드나들던 그 친구들이 생각난다. 솔직히 그냥 나 빼고 자기들끼리 충분히 맛있는 거 먹으러 갈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래도 내가 친구라고 챙겨주고,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뭐가 있을지 같이 메뉴판을 보며 함께 고민해주던 고마운 친구들. 어쩌면 친구들의 배려 가득한 우정이 없었다면 아마 나는 라볶이를 만나지도 못했을 거다. 그리고 저녁마다 쫄쫄 굶으며 힘든 학창시절을 보냈겠지.


남이 베푼 은혜에 대한 고마움을 뼈에 새겨 잊지 않는다는 각골난망(刻骨難忘)이란 말이 있다. 뭔가 좀 오글거리긴 하지만 이번 글을 빌려 그 친구들에게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 학창시절 내가 라볶이를 만날 수 있게 도움을  소중한 친구들아 사랑한다!  너희들의 고마운 우정을 라볶이에 새겨(?) 잊지 않을게!!


그럼 언제 어디서 라볶이를 먹을 때마다 너희들을 추억하면서 바로 이 각골난망 라볶이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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