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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장인 김세평 Jun 09. 2024

거두절미 프롤로그

거두절미(去頭截尾) - 어떤 일의 요점만 간단히 말하다

<야채를 못 먹어요> #00 거두절미 프롤로그



“웁, 우웁! 우… 우웩!”


남편 건강을 생각해서 와이프가 손수 데쳐준 브로콜리라고 하니 용기를 내서 하나 먹어봤는데 역시나 몸에서 역한 반응이 나타나 나는 화장실로 뛰어가 바로 구토를 시전하였다. 이제 곧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인데도 아직도 야채를 먹질 못하다니…….


나는 와이프에게 모처럼 데쳐준 브로콜리인데 뱉어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다가도 아까 먹었던 브로콜리가 여전히 역했던지 다시 화장실에 뛰어가 변기에 대고 구토를 했다. 에고고. 당분간 야채를 먹어볼 시도는 일절 하지 말아야겠다.


내가 야채를 먹을 때면 나타나는 증상은 대략 이렇다. 일단 야채를 씹자마자 몸이 깜짝하고 놀란다. 그러고선 마치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것 마냥 몸이 굳어버리는데, 그 상태에서 씹고 있던 야채가 목구멍으로 넘어가기라도 하면 몸 안에서 지진이 난 것처럼 부르르 몸 떤다. 그리고는 바로 속 안에 있던 것들을 다 게워내듯 구토를 한다.


이렇게 몸이 야채를 거부해 먹질 못하다보니 그간 인생살이 불편했던 게 한두 개가 아니다. 아니, 불편하다 못해 불행하기까지 했다. 야채를 못 먹는다고 하니 어릴 때는 편식한다고 선생님들한테 두들겨 맞았고, 학창시절에는 친구들로부터 놀림의 대상이었다. 나이 먹어서는 몸에 영양분이 없어 건강이 나빠져 잔병치레로 고생 중이고.


그래, 야채를 못 먹는다고 참 많은 불행들을 겪어왔다. 그래도 그중에서 가장 큰 불행을 꼽자면 내가 야채를 먹질 못한다는 걸 사람들이 믿지 않는 것이. 보기에는 멀쩡하게 보이는 놈이 자꾸 야채를 못 먹는다고 하니까 다들 내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는 거다! 특히 직장동료들은 내가 회식을 도망가려고 잔머리를 쓰는 거라고 나를 거짓말쟁이로만 여고!!


아놔, 진짜 거짓말쟁이로 취급받을 때면 얼마나 억울하던지…! 오죽했으면 에 오이라도 하나 들고 다니면서 내 말을 믿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한 입 베어 물고서 구토라도 해 나의 억울함이라도 풀어볼까 그런 생각도 해보았다.


물론 억울한 일만 있던 건 아니었다. 야채를 못 먹어 나름 재밌는 일들도 있었다. 야채를 좋아하는 여자친구에게 나랑 결혼하면 내가 먹을 야채를 평생 너에게 주겠다고 프러포즈해서 결혼에 골인하기도 했고(응?),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거의 정해져있다 보니 남들에 비해 뭘 먹을지 고민이 적어 인생을 나름 편하게 살고 있다는 그런 재미있는 일들 말이다(하나도 재미없나).


아무튼 이번 기회에 내가 야채를 못 먹는다는 걸 공공연하게 알려서 그간 나의 억울함을 좀 풀어보려고 한다. 그리고 혹시 나와 같이 야채를 먹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공감도 좀 받고 싶고. 또 가능하다면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조금이나마 피식 웃게 되었으면 좋겠고 :)


하하. 어쩌다 말이 좀 길었다. 그럼 거두절미하고, <야채를 못 먹어요> 한번 시작해 보겠다!


(그나저나 글이 좀 재밌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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