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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금 May 13. 2023

발이라는 것에 대하여

 나는 평소 발=더럽다는 생각이 머리에 박혀있는 사람이었다. 어릴 때는 발로 장난치던 친오빠와 의절할 뻔했고(당사자는 기억 못 하겠지만), 남편은 자기 발을 그렇게 생각한다고 섭섭해한다. 발톱 깎을 때 말고는 내 발도 맨손으로는 절대 만지지 않는데 다른 사람 발은 오죽할까.

 그런 내가 하루 평균 일곱 명, 일주일이면 서른다섯 명이 넘는 사람들의 발을 만지면서 일을 하게 되었다. 일한 지 여러 달이 지났으니 내가 발을 관리해 준 손님이 수백 명이 되는 참이었다.

 라임 세 개를 열심히 깎고 난 후 나는 발을 관리하는 페디큐어 스테이션으로 보내졌다. 초보 테크니션은 바로 손을 할 수는 없고 페디큐어로 충분히 연습을 해야 했다. 손님이 오면 페디큐어 스테이션으로 안내하고 전동 마사지체어에 앉힌다. 발톱을 깎고 다듬은 뒤 스파를 하고 말끔하게 씻긴 후 오일이나 로션으로 마사지를 한다. 이때 아침에 만들어 놓은 스팀수건을 다리전체에 올려준다. 마지막이 컬러링 후 건조하는 단계인데 처음에는 이 순서를 외우는 것도 어려웠다. 그리고 단계별로 사용하는 도구와 제품들이 많아서 적응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와중에 손님들과 버벅거리는 영어로 대화까지 해야 하니 남들은 30분이면 끝나는 관리를 나는 한 시간 가까이 걸려 끝냈고 다른 동료들에게 눈치가 보였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일에 익숙해졌고 관리시간도 40분이면 여유 있게 끝내게 되었다. 그런데 도무지 적응이 안 되는 한 가지가 있었으니. 바로 맨손으로 컬러링을 하는 것이었다. 이전 순서까지는 장갑을 끼고 진행하지만 컬러링을 할 때는 장갑을 벗고 맨손으로 해야 했다. 처음엔 다른 동료들도 다들 그렇게 하길래 따라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맨손으로 남의 발을 만지기는 싫어서 장갑을 끼고 컬러링을 시도해 봤다. 하지만 장갑을 끼면 손의 감각이 둔해져서 컬러링을 하기가 어려웠다. 장갑이 손에 꼭 맞는 것도 아니라서 더욱 편하지가 않았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맨손으로 발가락 하나하나씩 잡아가며 컬러링을 했다. 그리고 집에 가서 요리를 할 때면 아무리 손을 씻어도 찝찝한 느낌이 들어 속이 상했다.




 사람 마음은 참 알 수 없는 것이다. 일을 하면 할수록 욕심이 생겼다. 집에서 놀 수만은 없으니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었는데 네일테크니션이라는 직업에 갈수록 재미가 느껴졌다. 손님이 원하는 대로 손톱 발톱을 다듬고 컬러링까지 꼼꼼하고 정성스럽게 하고 나서 손님이 만족해하면 얻어지는 성취감이 꽤 컸다. 동료들과 바로 옆에 앉아서 일을 하고 서로의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으니 약간의 경쟁심도 생기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일을 더 즐겁게 하는 촉진제가 되어주었다.

 시간이 더 흐르고 나는 기꺼이 장갑을 벗고 발을 만지기 시작했는데 더 완벽하게 컬러링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장갑을 벗고 왼손으로 발가락을 꽉 쥔 뒤 브러시를 든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왼손에 붙여 지탱을 잘해주면 흔들림 없이 컬러링을 할 수 있었다. 맨손으로 발을 만져야 하니 전단계에서 발을 더 깨끗하게 관리하게 되었고 더 이상 남의 발에 그렇게까지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솔직하게 말하면 너무 많이 만져서 무뎌졌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하지만 여전히 내가 씻기지 않은 발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그렇게 페디큐어에 나름 능숙 해졌을 때 새로운 동료가 왔고 라임을 깎고는 페디큐어 스테이션으로 보내졌다. 나는 이제 매니큐어를 할 때가 더 많아졌다. 매니큐어는 페디큐어와는 또 다른 세계였다. 산 하나를 넘으니 또 다른 산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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