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순금 Mar 09. 2024

What do you want?

 어느 날 아침이었다. 오픈 준비를 다 마쳤지만 예약도 워크인 손님도 없었다. 한두 시간 뒤에나 예약손님이 있어서 모처럼 다들 여유를 부렸다. 손님이 없을 때 동료들끼리 서로서로 손이나 발을 꾸며주곤 하는데 연습 겸 무료관리인 셈이다. 네일숍에서 일을 시작하고 나서 왜인지 모르겠지만 짧게 깎아 보기 단정한 손톱을 좋아하게 된 나는 동료들이 꾸며준다고 해도 공손하게 거절하곤 했다. 동료들이 짝을 지어 테이블에 앉아 서로의 손톱을 꾸며주는 사이 백발의 할머니 한분이 지팡이를 짚고 들어오셨다. 평소에는 영어가 서툰 내가 리셉션이나 입구에서 손님을 맞는 일은 거의 없고 오너나 동료들이 응대를 한 후 손님이 어떤 서비스를 원한다고 나에게 설명을 해주는 식이었다. 근데 이 날은 손이 비어있는 내가 자연스럽게 응대를 하게 되었다.

 보통은 인사를 건네면 손님들이 먼저 어떤 서비스를 원하는지 말을 하는데 할머니는 평소 네일숍을 이용하시는 분이

아닌 듯 어색하게 문 앞에 서계셨고 영어가 서툰 나 대신에 도움을 줄 다른 누군가가 나오기를 원하시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와줄 다른 누군가가 없는 상황이었고 나는 이 할머니가 원하는 서비스를 꼭 받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에 한 번 더 친절하게 말씀드렸다.

 “What do you want?”




 오 마이가쉬. 내가 방금 뭐라고 한 거야. 이건 마치 외국 영화에서 말 안 듣는 사춘기 아들한테 질려버린 엄마가 두 손을 머리에 얹으면서 탄식하듯이 내뱉는 대사 아닌가. 뭔가 잘못됐다는 걸 직감했지만 나의 제스처와 뉘앙스는 완벽하게 친절했기에 할머니의 반응을 기다려보았다. 하지만 헤어숍에 있던 남편 오너의 반응이 더 빨랐다. 그가 걸어 나와 상황을 정리해 주었는데 할머니는 그저 발톱을 깎고 싶으셔서 오신 거였고 나는 할머니를 모시고 페디큐어 스테이션으로 가서 발톱을 아주 정성스럽게 깎아드렸다. 내가 말실수를 해서 할머니 기분이 상하신건 아닌지 눈치 보느라 등에서 식은땀까지 흘리면서.

 손톱이나 발톱을 깎기만 하는 서비스는 과정이 간단해서 내가 비교적 좋아하는 일이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손톱 발톱을 스스로 깎지 못해서 네일숍에 온다. 대부분이 노인분들인데 발톱이 두꺼워지기도 하고 허리를 굽히기가 힘들어서 관리가 안되시는 분들이다. 가끔 무좀 때문에 혈관이 자라난 발톱을 깎다가 피가 나는 상상도 하기 싫은 상황들도 있지만 그래도 말끔하게 관리해드리고 나면 내가 다 개운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보람이 있다.

 이 할머니도 발톱이 많이 두꺼워지기도 했고 둥글게 휘어있어서 할머니 혼자 손톱깎기로 해결하기가 어려우셨을 것이다. 발톱이 자라나면서 끝은 폭이 좁아져 발톱 양쪽 모서리가 거의 맞닿을 정도로 휘어있었고, 나도 니퍼로 조금씩 잘라가며 깎을 수밖에 없었다. 발톱 밑으로 자라나 온 살들도 문제였다. 발톱을 다 자르고 나니 발톱보다 살이 더 많이 튀어나와 있었다.

 



 처음 마사지 체어에 앉을 때만 해도 불신에 가득 찬 표정으로 굳어있던 할머니가 서비스가 끝나갈 무렵에 잠깐 올려다보니 눈웃음을 지으시면서 온화하게 앉아계셨다. 진땀 흘리면서 요리조리 발톱을 깎는 내 모습에 그나마 마음이 좀 열리셨던 걸까. 막 자른 발톱은 날카로워서 버퍼로 부드럽게 문지른 뒤 큐티클에 오일을 발라주면 서비스는 끝이다. 관리하는 내내 할머니께 아까의 상황을 어떻게 말씀드려야 하나 고민하다가 오일을 바르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도해 보았다. 영어가 서툴러서 죄송하고 내 표현이 무례했다면 용서해 달라고. 이 말을 또 서툰 영어로 버벅거리면서.


 “No, It’s not your fault. Thank you sweetie.”


  부축을 받으면서 일어나신 할머니가 한결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가셨다. 나에게 팁 10불을 남기고.




  일이 잘 해결돼서 다행이다 한숨 돌리고 있는데 역시나 남편 오너가 헤어숍으로 부른다. 나도 안다. 내 표현이 잘못됐다는 것을. 영어가 서툰 것을 나도 알지만 지적받고 나면 서럽다. 그래도 손님이 오면 ‘What are you getting done?’이라고 한다는 것을 배우고 네일숍으로 돌아왔다. 아니 나 이제 다시는 손님맞이 안 할 거야. 마음이 소극적으로 돌아섰다. 이때는 몰랐지. 조금 있으면 리셉션에서 전화까지 받게 되는 나를.

매거진의 이전글 발이라는 것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