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오늘 쉴 수 없어

by 순금

수요일은 나의 휴무날이었다. 일요일을 제외하고 나머지 6일은 샵 문을 여는데 테크니션마다 돌아가면서 평일 중 하루를 쉰다. 여느 때처럼 남편을 학교 보내고 다시 침대 이불속에 파묻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는데 보스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헤이, 무슨 일이야?”

보스는 쉬는데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꺼냈다.

“수, 미안한데 너 오늘 못 쉬어. 지금 태우러 가는 중이니까 준비하고 나와줄래? 오늘 너 예약 손님이 있는데 깜빡했어.”

얘기를 들은 나는 깜짝 놀랐다. 누가 나를 지명해서 예약을 한건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별다른 스케줄이 없던 터라 출근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부랴부랴 준비를 하면서도 걱정이 앞섰다. 나로 예약을 했다는 것은 나한테 어떤 특별한 기대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라서 부담으로 다가왔다. 도대체 어떤 손님이 나로 예약을 했을까. 차를 타고 가면서 보스에게 물어봤지만 쉐리라는 이름만 들어서는 알 수가 없었다.

손님은 오전 10시, 오픈 시간 첫 타임에 정확히 들어왔다. 백발에 선글라스를 낀 멋진 중년의 부인. 누구였지. 기억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그녀는 디핑파우더 프렌치옴브레를 주문했다.




보스는 나보다 일곱 살이나 어렸는데, 결혼을 일찍 해서 유치원 입학을 앞둔 딸도 야무지게 키우고 사업도 멋지게 꾸려가는 소위 말하는 슈퍼맘이었다. 정기적으로 토론토에 가서 재료들을 사 오고 신제품 도입에도 적극적이어서 시골 마을에 있는 네일숍이었지만 디핑파우더라는 시술이 메인이었다. 한국에서 네일 시술을 많이 받아봤지만 가루에 손톱을 담가서 색깔을 입히는 시술이 처음에는 생소했다. 이 시술은 드릴을 사용해야 해서 나는 막연하게 못하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보스가 나를 부르더니 본인 손톱에 파우더로 시술을 해보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차근차근 인조손톱으로 연장하는 것부터 파우더로 색을 입히고 드릴로 모양을 다듬고 마무리하는 것까지 배울 수 있었던 나는 늘 그랬듯 다음날부터 바로 실전에 투입되었다.



네일 드릴에는 상황에 따라 여러 종류의 비트를 끼워서 사용하는데 파우더를 시술할 때는 크게 두 번 사용한다. 첫 번째는 손님의 손톱에 기존에 시술받았던 네일이 남아 있는 경우 그 손톱을 제거하기 위해 아세톤에 적신 솜을 올려두는데 그전에 드릴로 살짝 스크래치를 만들어서 아세톤이 빨리 작용하도록 할 때이다. 두 번째는 파우더가 손톱 위에서 굳은 뒤 자연스러운 모양으로 갈아낼 때이다. 이때 드릴이 손톱 위에서 너무 오래 머물게 되면 손톱이 열을 받아서 뜨거워지는데 이것은 큐티클을 자르려다가 손님 피부를 찌르는 것만큼 피하고 싶은 순간이다. 나는 두 가지 상황을 절대 마주하기 싫어서 큐티클 니퍼를 사용할 때도, 드릴을 사용할 때도 극도로 조심했는데 다행히 손에서 피가 나거나 손톱이 뜨거워져서 깜짝 놀란 손님이 손을 뒤로 빼는 불상사는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백발의 중년 손님이 나로 예약한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손님을 자리에 앉히고 관리를 시작했는데 전부터 친하게 지내던 손님이 아닌지라 약간의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내가 먼저 대화를 시도했다.

“이곳에서 일한 뒤로 예약손님은 처음이에요.”

“오, 정말? 내가 만나본 테크니션 중에 네가 제일 젠틀해서 예약했어.”

후. 이 말을 듣고 나니 더 긴장이 돼서 더 조심스럽게, 드릴 세기도 더 낮춰서 최대한 불편하시지 않게 시술을 마쳤다. 나에게 팁 20불을 남기고 갔던 쉐리 아주머니. 그 이후로 그녀는 2주에 한 번씩 와서 항상 프렌치옴브레(프렌치네일을 그러데이션으로 나타내는 시술)를 받고 가셨다. 덕분에 나의 디핑파우더 실력이 많이 늘어났다. 실력이 좋은 테크니션을 선호하는 것이 보통이겠지만 손님을 소중하고 조심스럽게 대해주는 것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준 고마운 손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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