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 땀으로 흥건한 언더셔츠를 갈아입어야만 했던 학창 시절, 나는 프로야구 선수를 꿈꿨던 야구선수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3교시 수업이 끝난 쉬는 시간에 담임 선생님은 남자아이들만 한 자리에 불러 모았다. 그리고 어떤 종이 한 장을 나눠주셨다. 빨리 운동장에 나가고 싶은 마음에 대충 종이를 휙휙 둘러보는 순간 ‘야구부원 모집’이라는 결코 지나칠 수 없는 진한 폰트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친구들은 야구에 관심이 없었다. 그저 빨리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달랐다. 뭔가 이글이글 타오르는,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을 간직한 채 선생님이 주신 가정통신문을 가방에 고이고이 접어 넣었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학교에서 집 까지 뛰면 5분도 되지 않는 거리를 3분에 돌파하는 괴력을 보이며 집으로 도착했다.
가방에 고이고이 접어놓은 통신문을 어머니에게 보여드리며,
“어머니 나 야구선수하고 싶어요.”
라고 말했더니,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물어보자고 권유하셨다. 일단 어머니는 내가 야구를 하는 게 괜찮으신 것 같았다. 당시 아버지는 자영업(양복점)을 하셨다. 어머니와 같이 운영하셨는데 당시 부모님은 맞벌이 전선에 뛰어드셨다. 아버지께서 일을 마치시고 들어오는 문소리를 듣고 나는 또 발동이 걸렸다.
“아버지 저 야구선수하고 싶어요.”
아버지는 운동선수의 삶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지 아셨는지 처음에는 반대를 하셨다. 하지만 외동아들의 거침없는 생떼가 아버지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아버지께서는 어머니에게 우리가 맞벌이를 하기 때문에 야구를 시키면 우리가 퇴근할 때쯤 학교에서 돌아오니까 시키자고 하셨다. 철저히 두 분의 편안한 양육을 위해 나는 그렇게 초등학교 3학년 때 야구선수의 꿈을 품게 되었다.
부모님의 찬성 때문에 그런지 다음 날 통신문에 야구선수를 희망한다는 사인을 받고 학교로 가져가는 등교의 발걸음은 내가 이 지구의 주인공이 된 느낌이었다. 학교 가는 길 내내 나는 뉴스에서 종종 보았던 야구선수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사실 야구라는 스포츠를 좋아하지도 않았다. 당시 어떤 프로팀이 있고 어떤 리그가 있는지도 모르는 그저 다른 또래들보다 다른 길을 간다는 이상한 자부심이 당시에도 있었다. 그때 그 마음이 아직까지 작용하고 있다. 남들이 쉽게 가지 않는 길, 해보지 않는 일을 도전하는 일을 스스로 대단하다고 여긴다.
아무튼 학교에서 나는 친구들을 만나 야구부 신청했냐고 물어보며 다녔다. 기분이 이상하다. 분명 남자애들은 기본적으로 운동을 좋아하고 운동선수의 대한 로망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예상과는 다른 결과를 만났다. 먼저 우리 반에서는 나만 지원을 했다. 설마 하며 다른 반 남자애들도 분명 지원한 친구가 있겠지 했으나 역시 세상의 주인공이 운명이었던가? 3학년 전교생 중에 오직 나만 야구부를 지원한 것이다. 나는 부모님에게 이 사실을 알렸더니 부모님은 꽤나 당황해하셨지만 아들이 흥분해하며 특별하게 여기고 있으니 부모님도 이게 운명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렇게 나는 그 어떤 경쟁률도 없이 테스트도 없이 나만 지원했다는 당찬 용기로 서흥 초등학교 3학년 대표로 야구부에 들어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