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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감탄

2021. 6. 26. - 2021. 6. 28.

by 바람



새벽에 더위 때문에 뒤척이다 에어컨을 켜놓고 계속 잤나 보다. 헉. 전기세.

처음 살던 곳에서 성수기인 6~9월까지 100유로를 더 내야 한다던 이유가 에어컨 사용량 때문이라고 했던 게 실감 난다.

창문을 열어놔도 후덥지근한 바람만 불어온다.

더 덥다.

억지로라도 밖으로 나오니 오히려 시원한 느낌이다. 구름이 조금 떠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몰타의 거석신전 중 한 곳을 가봐야겠다.

그전에 하루의 시작을 카푸치노, 노트와 만년필, 책과 함께 하고 싶어 나의 퀘렌시아 카페로 왔다.

옆자리의 남자들이 시끄럽게 대화한다.

가끔 이곳 사람들의 말투는 싸우거나 화나있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뜨거운 나라답게 사람들도 열정적인가.

주로 오후에 오다가 토요일이라 오전에 오니 리투아니아 출신 사장이 일하고 있다.

카페 운영에 대해 물어보고 싶다. 나중에 세계여행을 좀 더 하게 되면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여러 나라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책으로 쓰는 것도 재미있겠다.

요즘 같은 날씨에 거리를 걷는 것조차 힘겨워하면서 이런 공상과 야심을 품고 있는 내가 허황되기도 하다.


창밖을 보니 커다란 쓰레기 트럭이 지나간다.

흑인 두 명이 뒤쪽에 매달려 있다가 길거리에 놓여있는(이곳은 쓰레기를 종류별, 요일별로 집 앞에 내놓는다) 쓰레기봉투들을 수거해 차 안으로 던지고 다시 트럭 뒤에 올라탄다.

요즘 몰타에서는 낡은 건물들을 부수고 리모델링(공사현장에는 refurbish라고 쓰여 있다) 하거나 증축하는 현장이 많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나 쓰레기 수거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흑인들이다.

어느 곳이나 힘들고 사람들이 꺼려하는 일들은 가난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인이나 동남아시아인들이 그렇고 호주에 살 때는 아시아인들이 그랬고 이곳은 아프리카 사람들이 그런 분야에서 많이 보인다.

그렇게 열심히 온몸으로 이 더위에 일해도 하루,

한 달, 일 년을 근근이 살아갈 것이다.

부의 축적이 노동만으로 되지 않고 오히려 그 노동을 하느라 다른 방법으로 부를 쌓을 기회와 시간을 가지지 못할 수도 있다.

에구에구. 심각 그만.

이제는 그늘 하나 없는 길에 손 꼭 잡고 걸어가는 젊은 연인이 보인다.




Tarxien Temple을 어제 다녀왔다.

유럽 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거석 신전 중 하나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Temple은 산과 계곡이 먼저 떠오르는데 이곳에는 허허벌판에 커다란 돌들이 아주 많이 서 있다. 돌기둥들, 나선형과 다양한 무늬들이 있는 커다란 돌 받침들 등 거석들이 어떤 질서를 가진 것처럼 놓여 있는 곳이었다.

설명을 보니 이 모습은 거대 신전의 일부이고 이곳이 발굴되기 전에는 농사짓는 땅이었다고 한다.

고고학자 Zammit이 발견했다는데 처음에 어떻게 이런 곳을 찾을 수 있었을까 궁금하다.

사진으로만 보던 신석기의 유물을 직접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대수롭지 않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도 구석기와 신석기 유적지를 다녀봤을 텐데 암사동 움집 등만 기억난다.

많이 다른 분위기의 새로운 Temple을 경험해서 뜨거운 태양아래 땀은 많이 흘렸지만 기분은 신선하다.

회사 다니면서 정말 하고 싶었던 게 있다.

여기저기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조퇴 한 시간 하는 것조차 신경 쓰여서 안 하던 내가 너무 싫었다) 돌아다니는 것과 아무것도 안 하고 도서관에 틀어박혀 책만 읽는 것.

지금은 둘 다 할 수 있다.

그런데 첫 번째는 날이 뜨거워 어딜 나서기가 무섭고 두 번째는 이 먼 나라를 언제 또 온다고 처박혀 책 읽기를 한단 말인가 라는 생각에 집에서 책 읽는 것조차 스스로 방해한다.


며칠 전 본 인지심리학자의 강연 중 김정운 심리학자의 말을 인용한 내용이 떠오른다.

‘타인의 감탄’

그는 인정욕구를 이렇게 표현했다.

맞다. 타인의 감탄을 얻고 싶어 몰타의 사진으로 카톡 프사를 올리고 있었다.

내가 나에게 감탄할 수 있는 걸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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