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생신이라 식구들이 다 모였는데,
아빠가 호두과자 한 상자를 상 위에 슬며시 놓아두고 자리에 앉으신다.
딸이 보더니 으레 자기 것인 줄 알고
"어? 할아버지, 나 호두과자 별로 안 좋아하는데?~"
하며 뚜껑을 열어 보지도 않는다.
아빠는 입꼬리가 머쓱하게 웃으시며,
"응, 그거 네 거 아니고 엄마 거야"
손녀라면 껌벅 죽는 할아버지가
웬일로 자기를 위한 선물이 아닌,
엄마를 위한 걸 사 오셨을까 싶어
낯설고 당황한 눈빛이 역력했다.
할아버지가 이 세상 아래 자기만 예뻐하시는 줄로
단단히 착각하고 살았던 딸인데..
자기 것이 아니라
엄마 거라는 말에 눈빛이 흔들린다.
내가 어릴 적에 아빠는
일 년에 서너 번 있는 출장에 다녀오시는 길에 꼭 호두과자를 사 오셨다.
처음에는 호두과자를 썩 좋아하지 않았는데
아빠가 우리 식구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사 오신다는 것이 흔치 않은 일이었기에,
그리고 따로 간식이라고 할 만한 특별한 것이 없던 시절이었기에,
그저 신기하고 귀한 호두과자였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간식이 되어 가끔 일부러
가게에 찾아가기도 하는 호두과자가 되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이제는 그 시절 그때의 나보다도 훨씬 더 큰 아들이 있는 출가한 나에게
아직도 사랑을 실어 나르는 아빠를..
철없는 어린 딸로 돌아가 와락 안아드리고 싶다.
우리 딸은, 자리에 앉자마자
"할아버지, 그럼 엄마가 더 이뻐, 내가 더 이뻐?"를 끝끝내 묻고
들은 대답에 기분이 풀어졌는지
그제야 호두과자를 열어본다.
앞으로 한 20년 간 아빠에게 저 호두과자를 받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