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거라곤 몸뚱이 하나뿐이었지만 돈 많이 버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저임금 육체노동자였던 내가 돈을 잘 버는 방법은 더 많은 시간 일을 하는 것 밖에 없어 보였다. 그래서 하루에 20시간을 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돈이 아니라 병을 얻었다. 길 가다 갑자기 픽픽 주저앉았고, 비가 오면 손목과 무릎이 너무 아팠다. 거기다 각종 전염성 피부질환을 달고 살았다. 버는 것보다 병원비로 나가는 돈이 더 많았다.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그게 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안 되는 인간, 신이 실수로 만든 인간인 것 같았다. 눈물이 줄줄 흘렀다. 그냥 차에 치여 보험금이라도 받고 싶었다. 도대체 월 1000만 원씩 번다는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한 건지 감조차 잡을 수가 없었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1시간도 안 돼서, 그때 한 달 내내 벌던 돈 보다 많은 돈을 벌고 있고, 그때와 비교해 266배 많은 수입을 벌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학벌도, 인맥도, 잘난 부모도 없었기 때문에, 몸만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에 집중했다. 그리고 내가 해봤을 때 수익률이 괜찮았던 방법들을 공유하려고 한다.
1. 내가 돈을 벌었던 첫 번째 방법
나는 대학생 때 공모전을 열심히 했고, 상을 많이 받았다. 제일 처음 받은 상이 식약처에서 주관하는 마약퇴치 홍보 ucc대회였다. 그 당시 나는 영상 제작 기술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마약류를 퇴치하려고 애쓰는 식약처가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을까? 정도는 생각할 수는 있었고,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과 차별화시킬 수 있을까에 대해 전략은 짤 수 있었다.
생각 끝에, 영상으로 만들 때가 되었다. 그런데 기술이 없다 보니 그냥 스케치북에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렸다. 한 컷 한 컷 다 그렸다. 틀리면 다시 그렸다. 그리고 그걸 하나씩 사진으로 찍어서 이어 붙이고, 자막과 음악을 삽입했다. 그 후, 나름대로 그럴듯한 생각을 해냈다. '어차피 나는 그림을 못 그리고, 지금 스케치북에 그리는 것 말고는 뭐 어쩔 수가 없다. 그럼 그냥 아이가 그리는 느낌으로 그리자. 아이의 눈으로 마약 하지 말라고 얘기하면 메시지가 더 와닿을지 모른다.' 이렇게 나의 부족함을 마치 기획된 것처럼 해서 냈다. 결과는 어땠을까? 무려 정부기관에서 상금을 200만 원이나 받을 수 있었고, 나는 그 돈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날 수 있었다. (그 후 공모전에는 스케치북에 그리기 힘들어서 그림판으로 그려서 냈다.ㅎㅎ)
2. 평소 벌던 돈의 10배를 벌게 해 준, 00
전국 지사를 둔 대형 컴퓨터학원에서 영업을 한 적이 있다. 10명이 입사했는데, 한 달 후 남아있는 사람은 나 한 명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첫 달은 회사도 우리가 못 미덥기 때문에 결제하려고 작정한 사람을 배정해주지 않는다. 이미 남들이 수도 없이 전화해서, 이미 이 학원이라면 질릴 대로 질린 사람들 연락처만 준다. 그런 사람하고 통화하는데 결제 나올 게 있을까, 전화를 친절하게 받아줄까. 아침 9시 30분에 출근해서 밤 11시 20분까지 일을 해도 매출은커녕 고객과 총 통화 시간이 6분밖에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니 젊고 패기 넘치는 사람들이 붙어있기 정말 쉽지 않은 구조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반전이 시작됐다. 수습 때는 그래도 차비 정도는 받았는데, 그 기간이 끝나자 100% 인센티브를 받게 되었다. 컴퓨터도 모르고, 영업도 몰랐기에, 이러다 한 푼도 못 벌면 어쩌나 정말 두려웠다. 하지만 영업고수들의 책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잘할까 연구를 했고, 원장님의 세일즈 강의를 열심히 들었다.
매일 실수하고, 교육받고, 배운 거 적용하기를 한 달간 하고 월급날이 되었다. 내 통장에 찍힌 급여가 무려 300만 원이었다. 그동안은 하루 종일 일해도 30만 원 벌었는데, 300만 원이라니! 그 숫자를 몇 번이나 다시 세어보았다. 그때 강남에서 일했는데, 내가 그 동네에서 제일 부자가 된 것 같았다. 아무것도 없는 나도 돈을 벌 수 있다니! 이렇게나 좋은 일을 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하고 좋았었다.
3. 월 수입 3500만 원을 가져다준 고수입 끝판왕
지방대 출신에 할 줄 아는 것도 별로 없는 나는 일찌감치 사업을 시작했다. 화상영어 사업이었다. 외국에 있는 선생님과 한국의 학생을 연결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일을 진행할수록 이상한 학생들을 보게 되었다. 어학연수를 다녀왔음에도 실력이 중하위권인 학생들이 있던 것이었다. 처음엔 그 사람이 게을러서 그랬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4년간 그런 사람들이 계속해서 오는 걸 보자, 이건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살펴보니 이 사람들은 업계가 만들어놓은 판에 맞춰 시키는 대로 열심히만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반면 나는 어학연수에는 할 말이 좀 있다. 내가 나온 대학교에서는 1년간 외국 보내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 제도를 활용해 3학년 때 처음 중국을 가게 되었는데, 나는 학교를 1개월만 다니고 나가지 않았다. 왜냐면 어설픈 중국어를 하는 외국인들끼리 모여서 중국어를 해봤자 별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침 환율도 엄청나게 올라서 내가 살 방법은 빨리 중국어를 잘해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하루종일 현지인들과만 시간을 보냈다. 수다 떨고, 봉사활동 가고, 장사도 하면서 중국인처럼 살았다. 그러자 몇 개월 밖에 안 되는 짧은 어학연수를 한 내가, 전국의 실력자들이 모인 중국어대회에서 대상을 받을 수 있었고, 세계 대회에 한국 대표 선수로 참가하는 등 성공적인 어학연수를 할 수 있었다. (그건 워홀을 떠난 호주에서도 마찬가지였고, 그땐 더 신기술이 더 많이 늘어서 훨씬 더 빠른 시간에 영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현지인 학생보다 많은 돈을 받으며 대학교에 취업도 할 수 있었다-보통 한국인들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초밥집에서 일한다.)
하나씩 따져보니 그들에게는 내가 필요해 보였다. 그리고 시장을 살펴보니, 어학연수는 거의가 유학원 위주여서, 어느 나라 보. 내. 준. 다는 게 전부였다. 어디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빨리 잘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누구도 하지 않고 있었다. 수요는 있는데, 아직 시장은 비어있었던 것이다. 기회였다. 그래서 나는 생각을 정리하자마자 바로 "빠르게 어학연수 잘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강의를 했고, 하루에 문의가 몇 십통이 올 정도로 엄청나게 잘 되었다. 이걸로 나는 그 첫 월급의 100배가 넘는 3500만 원을 벌 수 있었다. (오해는 마시기 바란다. 어학연수를 다녀왔기 때문에 돈을 번 게 아니라, 니즈가 있는 분야에 나의 경험을 나누는 강의를 했기에 돈을 번 것이다. 누구나 경험, 노하우 특별한 이야기 하나쯤은 있고, 그걸 필요로 하는 사람은 분명 있다. 그 지점에서 돈이 나온다.)
가진 게 몸 밖에 없어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아이 학원비를 못 내서 속상하다는 엄마, 지방대라서 기회가 없다는 사람, 쓰리잡을 뛰는데 점점 더 힘들어진다는 사람... 너무나 공감이 가고,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그분들이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금만 다른 시선으로 보면, 몸 밖에 없는 사람도 돈을 벌기에 좋은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냥 유튜버들이 흔히 하는 말 같지만, 정말이다. 그리 오래전 아니고, 내가 돈이 없어 차에 치이고 싶었던 2015년만 봐도, 간단한 기술이나 노동력으로도 돈을 벌 수 있는 재능 마켓이라는 개념도 없었고, 온라인 강의를 하려고 하면 엄청나게 비싼 돈 주고 사이트를 샀어야 했다. 근데 지금은 강의 플랫폼에 휴대폰으로 찍은 영상을 올리면 마케팅 알아서 다 해준다. 또 코로나로 재택근무, 비대면 미팅이 일상화되어서 사무실 없어도 사업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니 이 좋은 시대, 같이 누리고 행복하게 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