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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을 흉보는 아내

「희극의 파편」10. 에드워드 올비 -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中

by 재준

조지


난 허점투성이라네. 자네는 (의자에서 앉은 위치를 바꾸며) 사람들이 역사에서 조금도 배우지 못한다는 점을 믿나? 배울 게 없어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점을? 난 역사학과라네.




아...



조지


난 박사야. 학사... 석사... 박사... 학석박사! 학석박사는 전두엽에 생기는 소모성 질환, 그리고 기적의 약으로 다양하게 묘사되었지. 사실 그것 둘 다야. 난 사실 매우 허점투성이라네. 생물학이라고, 응? (닉은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인 후 쳐다본다.) 어딘가 과학소설은 전혀 소설이 아니라고 하는 걸 읽은 적이 있어... 거 왜 자네 같은 사람들이 유전자를 재배열해서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이 생기도록 하는 거 말이야. 오오, 난 싫어! 그건... 고역이야. 잘봐... 날 보라고! 모든 사람들이 마흔 몇 살에 이미 쉰다섯처럼 보인다면 좋겠어? 자넨 역사에 대한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어. (생략) 그건 매우 불쾌하고... 매우... 실망스러운 일이야. 하지만 역사는 훨씬 더... 실망스럽지. 난 역사학과에 있다네.




네... 얘기했어요.



(생략, 조지의 아무말 대잔치 이후)



조지


(생각하다가) 자네 마누라는 히프가 너무 없어... 그렇지 않아?




예?



조지


난 궁둥짝에 집착하는 인간이 아냐... 난 그 뭐냐, 36,22,78 같은 거 따지는 사람이 아니라고. 절대로... 난 안 그래. 모든 건 비율이지. 난 자네 마누라... 히프가 빈약하다고 말하는 거야.


「희극의 파편」은 단편, 장편 희곡 중 재미있는 한 장면을 선별해 그 감정적 여운과 미학적 장치를 분석하고 현대적 맥락에서 다시 사유해보는 비평적 에세이 시리즈입니다. 말은 거창하지만 그냥 특정 장면이나 대사를 가지고 이리저리 뜯어보면서 독자와 함께 놀아보는 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희극의 파편」열 번째 작품은 에드워드 올비의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입니다.


에드워드 올비(Edward Albee, 1928–2016)는 20세기 미국 현대극을 대표하는 극작가로, 미국 중산층의 위선, 인간관계의 부조리, 존재의 불안과 허위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작품들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좀 작품들이 어지럽습니다... 인물들이 큰 주제 없이 중구난방으로 떠들어댑니다. 그 중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는 퓰리처상 희곡 부문 수상작으로 결정되었으나, 퓰리처 위원회에서 '미국적 삶의 건전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이유로 수상을 취소했다고 합니다.


내용은 정말 간단합니다.


대학 총장의 딸 마사와 그 덕으로 역사학과 교수직을 꿰차고 있는 남편 조지는 젊은 부부 닉(생물학 교수)과 허니를 집으로 초대합니다. 그 네 명은 술에 취해 마음 속에 있던 이야기를 꺼내게 됩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마지막에는 조지와 마사가 공유하고 있는 상상의 아들 이야기가 나옵니다. 밤새 술을 마시다가 해가 떠오르고 조지가 결국 마사에게 '아들의 죽음'을 선언하면서, 두 사람은 환상 없이 서로를 마주하는 순간에 도달합니다. 그러면서 속삭입니다.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who's Afraid of Viirgina Woolf?)는 사실 디즈니 만화 영화 '세 마리 아기 돼지'에 나오는 동요 '누가 두려워하랴, 커다란 나쁜 늑대를?' (who's Afraid of The Big Bad Wolf?) (출처: film017forever 채널)에서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왜 하필 버지니아 울프로 바꿔 불렀냐, 라고 한다면... 영상을 보시면 아기 돼지들이 춤을 추면서 '누가 늑대를 두려워하랴~'노래를 부르다가 막상 정말 늑대가 나타나니 침대 밑으로 잽싸게 숨어버립니다.ㅎㅎ.


조지와 마사의 부부도 비슷합니다. 젊은 교수 부부 앞에서는 유쾌하고 쾌활하고 즐겁게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술에 취할수록 그들은 사실 (실재의 삶에 직면했을 때는) 불안하고 비열해서 그저 환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었음이 드러나게 됩니다.

또 버지니아 울프는 실제 모더니즘의 여성 작가로, 그녀의 문체 특징 중 하나는 '의식의 흐름대로 글 쓰기'입니다. 조지와 마사는 말 그대로 의식의 흐름대로 말을 합니다. 닉처럼 체면을 차리거나 대화를 주고 받으면서 발전되어 가는, 그러니까 우상향 식의 대화 기법을 전혀 따르지 않은 채 본인들 하고 싶은 말만 계속 하는 것이죠. 그래서 언어 유희의 방식으로, 말장난하는 식으로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라고 가사를 변형하면서(Wolf를 Woolf로)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사와 조지에겐 그저 말장난의 일부입니다.



제가 선별한 장면은 마사가 닉 부부에게 찌질한 남편을 흉보는 장면입니다.


부담없이 가볍게 한번 읽어보시고 가세요^^


마사


왜 저 개자식이 우리 아버질 미워하는지 알려 줄까? 알고 싶어? 좋아... 왜 저 개자식이 우리 아버질 미워하는지 알려 주지.



허니


(관심이 생겨 몸을 휙 돌린다.) 그래, 들어 봅시다!



마사


(허니에게, 엄격하게)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불운을 먹고 살지.



허니


(상처받고) 아니에요!




허니...



마사


됐어! 입 닫아! 둘 다! (사이) 됐어, 이제. 엄마가 일찍 돌아가신 후 난 아빠와 함께 살았어. (사이, 생각하다가) ... 학교 다니느라 집을 떠나 있기도 했지만 주로 아버지와 함께 살았지. 빌어먹을, 울 아버진 훌륭한 분이야! 난 존경해... 완전 존경해. 지금도 그래. 아빠도 날 아끼셨지... 알겠어? 우리는 정말... 잘 통하는... 진짜 잘 통하는 부녀간이야.




네, 네.



마사


아빠가 이 대학을 세우셨지... 바닥에서부터 세우셨단 말이야... 이건 아빠의 인생 전부야. 아빠가 이 대학이야.




으흠.



마사


이 대학이 아빠야. 아빠가 맡았을 때의 자산과 지금 자산이 어떻게 다른지 알아? 언제 한번 찾아보라고.




알아요... 읽었어요.



마사


입 다물고 듣기나 해...(좀 있다가 덧붙인다.) 자기야. 대학이니 뭐니 끝마치고 난 다음 난 여기 돌아와서... 좀 퍼져 있었어. 결혼 같은 건 안 했지. 아아, 비슷하게... 한 적은 있어... (생략) 그 남자는 학교에서 잔디 깎는 사람이었는데 훌떡 벗고 커다란 잔디 깎는 기계를 타고선 풀밭을 깎고 다녔지. 그런데 아버지와 머프 교장이 짜고선 그 결혼 사건에 종지부를 찍었어... 정말로 신속하게... 무효화해 버렸어... 우스운 일이지. 낙장 불입이란 말도 있는데. 하! 어쨌든 난 다시 처녀가 되었고 학교를 마치고... 정원사 총각이 사라져 볼거리가 하나도 없는 그곳을 떠나와서 잠시 퍼져 있었어. 난 안주인 노릇을 하면서 아버지도 돌봤어... 괜찮았어. 상당히 괜찮았어.




네... 네.



(생략)



마사


아, 맞아. 그리고 조지가 나타났지. 그래. 젊고... 지적이고... 촌놈인데다... 귀여운 구석도 있고... 상상이 안 가겠지만... 게다가... 연하... 여섯 살이나... 난 그런 거 신경 안 써. 그렇게 조지가 나타났어. 눈을 반짝이면서 역사학과에 짜잔하고. 멍청한 암탁 같은 내가 어떻게 한 줄 알아? 어쨌게? 홀딱 빠져 버린 거야.



허니


(몽롱하게) 아, 멋지다.



조지


그랬지. 그 꼴을 봤어야 했는데. 밤에 숙소 바깥 풀밭에 앉아 그르렁거리며 잔디를 쥐어뜯는 꼴이라니... 일을 할 수가 없더라고.



마사


(아주 신나게 웃는다.) 완전히 빠졌지... 바로 그거야, 개다가 우리 둘의 결합은... 현실적으로도 괜찮게 보였거든. 아빠가 후일...



조지


잠깐, 마사...



마사


일을 관둘 때...



조지


(냉혹하게) 잠깐, 마사.



마사


...대신 맡아줄 사람이 필요하니까, 내가...



조지


그만둬, 마사!



마사


(성가셔하며) 왜 야단이야?



조지


(지나치게 참을성 있게) 여보, 난 당신이 우리 연애담을 풀어 놓고 있는 건 줄 알았어... 다른 얘기까지 건드리는 줄 몰랐어. 나라면 안 그럴 걸. 다른 얘기까지 건드린다면, 경고하지만 여보, 나 화낼 거야.



마사


(비웃는다.) 아 그러셔? 뭐 한다고?



조지


(아주 조용하게) 경고하는 거라고.



마사


나 경고 먹었어! (사이... 다시 허니와 닉에게) 어쨌든 그래서 난 그 개자식과 결혼을 했고 계획을 다 세워뒀어... 데릴사위였고... 후계자가 될 예정이었어. 언젠가 일을 물려받을 테지... 우선 역사학과를 접수하고 나면 아버지가 은퇴하실 때 대학을 접수하는 거지... 알겠어? 그렇게 될 거였어. (카운터로 몸을 돌리고 있는 조지에게) 자기 화났어? 그런 거야? (다시) 그렇게 될 거였지. 아주 간단명료해. 아빠도 그 생각이 좋다는 눈치였어. (다시 조지에게) 더 열 받고 있는 거야? (다시) 그런데 한 이삼 년 두고 보니 이게 별로 좋은 생각 같지 않았거든... 우리 조지 어린이가 그게 없는 거야. 속에 그게 없더라고!



조지


(여전히 등을 돌리고) 그만해, 마사.



마사


(짓궂게 의기양양하여) 엿이나 먹어! 이봐, 조지는 말이지... 배짱이 없었어... 그다지... 저돌적이지가 않아... 조지는 오히려... (조지의 등에다 대고 말을 내뱉는다.) 얼간이야! 무지... 완전... 왕... 얼간이!



쾅! '얼간이'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조지가 카운터에 병을 부딪쳐 깨뜨린다. 여전히 그는 등을 돌리고 병목 부분만 붙잡고 있다. 모두 얼어붙은 채 침묵이 흐른다. 그리고...



조지


(울부짖다시피) 그만하라고 했어, 마사.



마사


(어떻게 반응할지 생각하다가) 빈 병이었겠지, 조지. 아까운 술을 낭비할 수는 없지... 그 월급에. (조지가 꼼짝 않은 채 깨진 병목을 바닥에 떨어뜨린다.) 부교수 월급에. (닉과 허니에게) 도대체...이사회 만찬이나 기금 모집에나... 쓸모가 없더란 말이지. 인간적인... 매력이 있길 하나. 무슨 말인지 알겠지? 아빠에게는 실망스러운 일이었지. 그렇게 해서 난 여기서 이 얼간이와 껌처럼 붙게 있게 된 거야...



조지


(몸을 돌리며) ... 그만해 둬, 마사...



마사


역사학과의 막장...



조지


... 그만, 마사, 그만...



조지, 마사 동시에 말한다.



마사


(조지의 목소리에 지지 않으려고 언성을 높이며) ...총장 딸과 결혼해 한가락 할 줄 알았는데, 무명씨에다 책벌레... 잡생각만 많고, 아무것도 되는 것도 없고, 배짱은 없어서 누구에게도 자랑거리가 되지 못하고... 됐어, 조지!



조지


(마사의 목소리에 눌려있다가 점점 회복해 마사를 능가한다.)그만하라고 했어. 그만... 그만. (노래한다.) 누가 두려워하랴, 버지니아 울프, 버지니아 울프, 버지니아 울프,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이른 아침에...!


어떤가요? 놀라운 건 이 장면은 1막 마지막 부분이고 3막까지 이런 식으로 쭉 대화가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마사와 조지는 싸울 듯 말 듯 욕을 하면서도 중간에 웃어버리고 웃다가도 목을 졸라가면서 싸움을 해댑니다.


한번쯤 이 작품을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비상식적인 언어유희의 진수를 경험할수 있습니다. 정말 감각적이고 천재적인 작가입니다.


「희극의 파편」은 독자가 가볍게 마주할 수 있도록, 그저 장면을 꺼내어 놓기만 합니다.


적용 질문입니다.


1. 잡담을 좋아하시나요? 누구와 눈치 보지 않고 마음 편하게 잡담을 할 수 있으신가요?


2. 잡담을 하는 심리가 무엇인가요? 내 마음의 진실을 말하지 않기 위해서인가요, 아니면 진실이 흘러나오도록 하기 위해서인가요?


3. 제목처럼 내가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의미 없는 말이 있으신가요? 말하고 싶지 않은 진실은 무엇인가요?


4. '누가 두려워하랴, 커다란 나쁜 늑대를?' (who's Afraid of The Big Bad Wolf?) 영상을 보셨나요? 이 리듬에 맞춰 'who's Afraid of Viirgina Woolf?'로 바꿔서 불러보세요. 어떤 어색함이 있으신가요?^^ (그 어색함이 조지와 마사의 '일부의 무엇'이라고 생각해보세요.)


5. 마사는 배짱 없는 조지를 그래도 사랑할까요? 여전히 사랑한다면 그건 무슨 삶의 심리일까요?


「희극의 파편」은 ‘이상하게 오래 남는 순간들’을 의도적으로 골라내고, 붙잡고, 말로 돌려줍니다.


우리가 듣는 말은, 듣지 못한 것들의 징후다.


-해럴드 핀터-


오늘의 음악입니다.


극 중에서도 이 음악을 틀고 조지는 춤을 춥니다.


베토벤 교향곡 7번 2악장 (을 편곡한 영화 OST)

(출처: i can’t think of a good username채널)

영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해원 中中


(아무도 없는 남한산성 수어장대에서) 책 백 권 읽는 것보다 이런 음악 한번 듣는 게 더 좋은 것 같아요.


-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파편」9. 페터 한트케 - 관객모독 中「희극의 파편」9. 페터 한트케 - 관객모독 中「희극의 파편」9. 페터 한트케 - 관객모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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