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극의 파편」은 단편, 장편 희곡 중 재미있는 한 장면을 선별해 그 감정적 여운과 미학적 장치를 분석하고 현대적 맥락에서 다시 사유해보는 비평적 에세이 시리즈입니다. 말은 거창하지만 그냥 특정 장면이나 대사를 가지고 이리저리 뜯어보면서 독자와 함께 놀아보는 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잠시 「희극의 파편」 시리즈를 접어두고 번외 편으로 돌아왔습니다.
희곡의 대사 한 조각, 장면 하나를 붙잡고 들여다보는 「희극의 파편」 시리즈를 연재하며
저는 오래된 감정의 표면을 꾹꾹 눌러보고, 웃기면서도 아픈 무언가를 건져 올리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반복적으로 ‘파편을 감정적으로 응시하고,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패턴의 방식은 어느 순간 정해진 틀처럼 느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형식을 갖추는 건 안정감을 주지만, 동시에 스스로 갇히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중간중간 번외편을 연재하여 그런 불상사를 예방하고자 합니다.
‘희극’이라는 단어는 꼭 희곡이 아니라도 우리 삶 곳곳에 흩어져 있다고 믿습니다.
이 번외편은, 그 흩어진 희극을 줍는 작은 산책입니다. 가볍고, 조금은 무계획적이며, 말보다 여운이 많은 글이 되기를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웃을 준비는 안 하셔도 괜찮습니다.ㅎㅎ 그냥 바라보면 됩니다.
오늘은 일기 같은 에세이 글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 글은 병원, 식당, 출장소, 사진관을 오가는 이틀간의 동선을 따라간 글입니다.
의사는 엘리트였다. 할머니 의사였는데 내 사타구니를 보자고 했다. 나는 바지를 벗고 팬티 밑단 속에 손을 집어넣어야 했다. 엄마는 내 혈압 수치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다시 혈압을 잴 때까지 대기좌석에서 움직이지도 않았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간호사들 얼굴을 유심히 보며 젊은지 늙었는지 확인만 할 뿐이었다.
‘입원 수속’이라고 적힌 방이 있었다. 젊은 부부는 웃으며 자신들의 엄마를 데리고 그곳으로 갔다. 나는 채혈실에서 피를 뺐다. 그곳의 간호사는 내 나이 또래처럼 보였는데 마스크를 쓰고 눈이 작았다. 내 팔꿈치 안쪽을 잡았다. 그녀의 손은 주부습진에 걸린 것처럼 오돌토돌했는데 약지에 낀 얇은 반지 하나가 그녀를 더 불쌍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팔꿈치 안쪽에는 작은 점 하나가 있었다.
20분 뒤 검사 결과가 나왔다. 한 간호사는 내 사타구니 쪽 무언가를 긁었다. 검사 결과 그냥 각질이었다. 팔꿈치가 가려운 것도 그냥 습진이었다. 의사 이력을 보고 다시 진료실에 들어갔다. 할머니는 엘리트였다. 의과대학 교수로 지내다가 명예퇴직을 하고 대학병원에서 소박하게 환자들 진료나 보고 있다, 라고 그녀는 스스로 생각할 것이다. 두달 반 예약을 기다려 진료를 본 것이었다. 할머니는 자신의 커리어를 정리하며, 마음 편하게 이곳으로 이직했을 것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끝없이 환자들이 들어왔을 것이다. 할머니는 건선의 대가이다, 의사 협회가 인정하는. 이 피부는 건선이 아닙니다, 그 피부는 맞습니다, 그건 습진입니다, 굳이 조직 검사를 해야 할까요, 하다가 내 사타구니를 봤을 것이다. 사타구니쪽 허벅지에는 작은 점 하나가 있다. 할머니는 내가 불쌍하다고 생각했으며, 나는 그 할머니가 불쌍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피부과 옆에는 바로 성형외과가 딸려있었고 그곳에는 어설프게 코를 높인 여자가 내 옆에서 앉아 움직이지도 않았다. 나는 아무것도 못한 채 그녀가 젊은지 늙었는지 확인할 뿐이었다. 엄마는 그 여자가 착한 척을 한다며 본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대기좌석에서 움직이지도 않았다. 나는 대기실 의자에 앉다가, 피부 검사실에 누웠다가, 의사 진료실에서 할머니 눈치를 계속 봤다. 계속 넘나들었다.
진료를 끝내고 엄마와 나는 추어탕 집으로 향했다. 3년 전에 가보고 처음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가게명도 정확히 모르고 정확한 위치도 몰라 감으로 이곳저곳을 다니며 새로운 도로를 뚫고 다녔다. 그 식당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그, 3년 전에 그, 식당에 주차를 하면서 그, 앞에 있던 배달 대행 회사 사진을 무심코 찍었던 기억이 났다. 나는 갤러리 사진을 쏜살같이 올려가며 그리고 그, 유리창에 비친 삼계탕집 상호명을 알아내어 네비게이션을 찍어 식당을 찾아냈다. 가게 이름은 추어탕이 아니라 추어정이었다. 그 3년 사이 엄마는 가게를 두 번이나 정리했다.
추어탕 집 직원은 아줌마였다. 모르고 예약석에 앉자 언짢은 표정으로 다른 곳을 안내했다. 옆자리 아저씨 둘은 그곳에서 어린이를 위한 수제 돈까스를 먹고 있었다. 비가 갑자기 내렸고 어떤 할머니는 혼자 그곳에서 기본 추어탕을 시켜 먹었고, 어떤 할머니들은 다른 할머니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미꾸라지 튀김은 오징어 튀김을 먹을 때처럼 미꾸라지만 쏙 빠져나왔고, 식사를 다하고 선결제를 하고 나가는 우리들을 직원 아줌마는 멋쩍은 채 모른 척했으므로 나는 일부러 고개를 푹 숙이며 그곳을 쏙 빠져나왔다. 아줌마가 일을 하기 싫나봐, 나는 엄마에게 그런 말들을 계속 해댔다. 생각해보니 추어탕은 끝물에도 끝까지 뜨거웠다. 그, 비결은 뭘까. 믹서기에 미꾸라지가 들어가는 상상을 했다, 넘치도록 미꾸라지가 들어간다, 입원 수속에 들어간다, 국물이 걸쭉해진다, 그러나 아줌마는 일을 하기 싫다, 손님들이 환자처럼 계속 들어온다, 그 자리는 예약석이라니까, 아니 이곳에 앉으세요, 뭘 드시겠어요, 하다가 아줌마는 늙어버렸다. 아줌마는 카운터에 앉아 움직이기 싫다, 나는 아무것도 못한 채 정말 늙었는지 젊었는지 그, 아줌마 얼굴을 확인하며 그, 눈치를 계속 봤다. 그러나 나는 국물을 계속 먹으면서 엄마에게 그냥 미꾸라지는 조금이고 물에다가 다데기를 푼 거라고 계속 말을 해댔다. 엄마는 나에게 많이 변했다고 했다. 그 3년 사이 나는.
다음날, 나는 출장소를 찾았다. 첫 해외여행을 위한 여권 발급을 위해서였다. 사진을 찍어야 했으나 문득 눈썹을 가리지 않은 증명사진 하나를 지갑 속에서 찾아냈다. 그러나 얼굴 길이가 여권 사진 규격에 맞지 않는 사실을 신청서 내기 전에 알게 되었다. 나는 출장소 주변 사진관 10곳 이상을 전화하며 스캐너가 있는지 물었다. 내 증명사진을 스캐너로 본따 여권사진에 맞게 변형해서 인화시켜달라고 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그 어느 곳도 스캐너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출장소 여직원은 내 나이 또래처럼 보였는데 마스크를 쓰지 않았고 눈이 컸다. 그녀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신분증을 내는 것도, 내가 싸인을 하는 것도, 발급된 여권을 등기로 받기 위해 5,500원을 결제를 할 때도, 지역화폐 결제가 되는지 물어볼 때도, 다 내가 알아서 해야만 했다. 사람들은 미꾸라지처럼 계속 들어왔다. 번호표는 계속 뽑히고 있었고 뽑히기가 무섭게 즉시 그 번호가 호명됐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끝없이 사람들이 밀려들어왔을 것이다. 번호표 앞에 서 있는 안내직원은 아줌마였고 그 아줌마는 왠지 나를 불쌍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아마 열심히 신청서를 작성하다가, 이사한지 3개월밖에 되지 않아 주소를 배달의 민족 어플로 확인하고 있던 나를 보면서, 그 쓰고 있는 팔꿈치의 만성습진 상처를 보면서, 일하기 싫은 표정으로 앉아 있는 여직원을 보면서, 자신이 그 여자에 비해 늙었지만, 정말 얼굴이 그렇게 늙었는지 젊었는지 스스로 되물어보면서 거울 속 자기 얼굴을 보다가 내 여권 사진을 무심코 봤을 것이다. 문득 답답해서 그곳에서 빠져나오고 싶었을 것이다...
...나는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오래전 그 증명사진을 찍었던 사진관에 전화했다. 딱 6개월 전 갔던 곳이었다. 다행히 1년 정도는 사진을 저장해놓고 있는다고 했고 나는 메일로 손쉽게 사진 파일을 받았다. 파일을 가지고 있으면 사진관에서 스캐너 없이도 여권 사진 규격에 맞게 변형할 수 있었다. 그제야 모든 숙제를 다 끝낸 느낌이었다.
사진관 옆에는 손님이 아무도 없는 칼국수 집이 있었다. 그곳 주방에서 멍하니 서서 대기중이던 젊은 직원을 봤다. 저 사람은 일을 하고 싶나봐, 손님을 계속 받고 싶나봐, 친절하게 대하고 싶나봐. 나는 3년전 주차장에서 무심코 찍은 사진과 6개월 전 찍었던 증명사진과 병원에 오는 데에 두 달 반이 걸렸다는 사실과 20분 걸린 검사 결과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멋쩍게 웃었던 젊은 부부와 주사를 맞을 때 나와 똑같이 팔뚝을 드러낸 간호사와 무기력한 출장소 여직원과 코를 높인 새초롬한 환자를 생각했다. 길을 헤매던 엄마와 혼밥하는 추어탕 할머니를 떠올렸다. 갑자기 전화가 와서 그곳에 스캐너가 있냐는 질문을 받았던 사진관 직원들을 상상했다. 그리고 번호표 뽑듯 환자를 자신의 방으로 들이며 열중하고 있던 엘리트 의사 앞에 갑자기 나타나 사타구니를 보여주던 한 남성을 상상했다. 그,것은 꽤 어색하면서도 슬픈 장면이었다. 마치 추어탕 아저씨들이 수제 돈까스를 먹고 당당히 그,곳을 나설 때처럼 그,것은 전혀 규격에 맞지 않는 우스꽝스러운 무언가의 그,림처럼만 느껴졌다. 마치 규격에 맞지 않던 내 증명사진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