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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리지 않는 문?

「희극의 파편」16. 제임스 조이스 - 자매 中

by 재준

- 아니에요, 그 양반(플린 신부)이 딱 부러지게 그랬다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이상한 기색이 있었다 이 말이지요... 그 양반에게는 딱 꼬집어서 말할 수는 없는 괴기한 그 무엇이 있더라, 이겁니다. 내 견해를 말씀드리자면...


코터 노인은 틀림없이 마음속으로 자기의 견해를 정리하는 듯한 모양을 하고, 담배 파이프를 빨기 시작했다. 지겨운 바보 같은 영감태기 같으니라고! 우리가 처음으로 그를 알게 되었을 때 그는 불순 하급 주정이 어떻고 증류기의 나선관이 어떻고를 이야기해주어 상당히 재미있는 노인으로 보였다. 그러나 나는 얼마 가지 않아 그와 그의 끝을 모르는 양조장 이야기에 곧 싫증이 나고 말았다...


(생략)


나는 해가 비치는 쪽을 따라 거리를 걸어 올라가면서 코터 노인이 한 말을 머리에 떠올리며 꿈속에서 뒤에 어떤 일이 벌어졌던가를 기억해내려고 애를 썼다. 축 늘어진 벨벳 커튼이랑 고풍스러운 흔들 램프를 본 것까지는 기억이 났다. 나는 아주 머나먼 곳에, 풍속이 전혀 다른 어떤 나라에, 내 생각으로는... 페르시아 같은 곳에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 꿈의 끝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희극의 파편」은 단편, 장편 희곡 중 재미있는 한 장면을 선별해 그 감정적 여운과 미학적 장치를 분석하고 현대적 맥락에서 다시 사유해보는 비평적 에세이 시리즈입니다. 말은 거창하지만 그냥 특정 장면이나 대사를 가지고 이리저리 뜯어보면서 독자와 함께 놀아보는 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희극의 파편」 열여섯 번째 작품은 제임스 조이스의 '자매'입니다.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 1882–1941)는 아일랜드의 소설가, 시인, 극작가로, 20세기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입니다.

덕분에 각종 문학 비평 이론의 터전이 되기도 했으며 20세기 문단의 거장들 또한 그의 기법을 차용하거나 언급하며 그의 위업을 찬미하곤 했습니다.


이 작품은 희곡이 아닌 단편 소설인데요. 워낙 대화 위주로 소설이 전개되어 「희극의 파편」 작품으로 선정했음을 알립니다. 간단한 내용은 이러합니다.


화자는 플린 신부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됩니다. 화자는 그에게 각종 생활 지식(라틴어를 발음하는 법, 미사의 의미, 사제들의 생활, 불문율 등등)을 배우며 평소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는데요. 그래서 화자는 플린 신부의 빈소에 방문하게 됩니다. 그곳에는 플린 신부의 여동생들(내니, 일라이저)이 염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문상을 끝내고 화자는 안락의자에 앉아 그 자매들의 대화를 조용히 듣습니다. 그 이야기 속에서 플린 신부는 정신이 온전치 못하고 극심한 정신적 이상과 불안 속에 죽어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끝이 납니다.



사실 제임스 조이스는 의식의 흐름, 언어유희, 상징주의, 신화적 구조 등을 결합해 소위 '열린 문학'을 실현하기 위해 애쓴 작가입니다. 이 작품 또한 화자가 뚜렷하게 이렇다, 라고 말하는 부분은 찾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화자는 플린 신부가 죽고 이상한 해방감을 맛보며 모호한 감정에 휩싸이기도 하는데요. 결말도 모르겠고 무얼 이야기하고 싶은지도 모르는 '이 무엇인지 모르겠는' 지점이 역설적이게도 조이스 작품의 매력이자 특징입니다. 실제 그의 작품 '율리시스'를 두고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나는 작품 속에 많은 수수께끼와 퍼즐을 숨겨두었기 때문에 후세의 학자들은 이것을 푸느라 수세기 동안 바쁠 것이다. 이러는 것이 내 작품을 영원케하는 유일한 길이다.



제가 선별한 장면은 내니와 일라이저 자매들이 그의 오라버니(플린 신부)의 생전 모습을 회상하며 말하는 부분입니다. 부담없이 가볍게 한번 읽어보시고 가세요^^


-오, 불쌍한 제임스 오라버님! 그녀가 말했다. 우리는 비록 가난하긴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한 걸 하느님도 알고 계실 거예요. 오라버님이 살아 계시는 동안 무엇 하나 아쉬움을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우리의 마음가짐이었으니까요.

소파 베개에 머리를 기대고 있던 내니는 막 잠이 들려는 것 같아 보였다.


-내니가 가엾어요. 일라이저가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주 녹초가 되는군요. 모든 일을 우리가 다 했으니까요. 내니하고 나하고 말이에요. 염을 할 아낙네를 불러오는 일에서부터 염할 준비를 하고 입관 준비에다 성당에서 드릴 미사 채비에 이르기까지 말입니다.


(생략)


-그런데 그분은 이제 영원한 보상의 나라로 가셨으니 여사님과 여사님 자매가 그분에게 쏟으신 모든 정성을 결코 잊지 않으시리라 굳게 믿어요.


-아, 가엾은 제임스 오라버님! 일라이저가 말했다. 오라버님은 우리에게 큰 짐이 되지는 않았어요. 살아 계실 때도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집 안에서 그분의 인기척이라곤 좀체 느낄 수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바로 이 순간에야 그분이 머나먼 나라로 영영 떠나셨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세상일이란 죄다 끝난 뒤라야 그리워지는 법이죠. 아주머니(화자의 보호자)가 말했다.


- 하긴 그래요. 일라이저가 말했다. 이제는 오라버님께 더 이상 쇠고기 수프를 갖다드릴 필요가 없어졌어요, 부인께서 그분에게 코담배를 보 내실 필요가 없어졌듯이 말이에요. 아, 불쌍한 제임스 오라버님!



그녀는 지난날의 회상에 잠긴 것처럼 잠시 말을 멈췄다가 약빠르게 말을 계속했다.


- 그런데 말이에요. 나는 근자에 오라버님에게 무언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눈치챘지요. 쇠고기 수프를 갖다드리러 갈 때마다 오라버님은 성무일도서가 마룻바닥에 떨어진 줄도 모르고, 입을 허 벌린 채 안락의자에 등을 기대고 번듯이 드러누워 계시지 않겠어요.


(생략)


- 오라버님은 언제나 지나치게 꼼꼼하셨어요. 그녀가 말했다. 사제란 직책이 오라버님에게는 너무 과중했나 봐요. 그리하여 오라버님의 인생은 망가져버렸다고나 할까요. (생략) 오라버님이 그 성작을 깨뜨렸지요... 그게 비운의 발단이 되었답니다. 물론 주위에서는 아무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들 했지요, 그 안에 든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하면서 말이에요. (* 만일 성작 속에 이미 그리스도의 살로 변화된 성체가 들어 있다면 이를 흘리는 것은 일종의 신성모독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 하지만 그래도 오라버님은... 주위에선 다들 복사(시중드는 사람)의 잘못일 뿐이라고 했지요. 하지만 가엾은 제임스 오라버님은 너무나 소심하셔서, 하느님 그분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생략)


-그 일로 오라버님은 정신에 큰 타격을 받았답니다, 그녀가 말했다. 그런 일이 있은 후로 오라버님은 혼자서만 의기소침하게 지내기 시작했어요. 누구에게도 말을 건네지도 않고, 혼자서만 배회하면서 말이에요. 그러던 어느 날 밤 방문을 같이 가자고 사람들이 찾았으나 어디에서고 오라버님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 건물 꼭대기 지하실 바닥도 샅샅이 뒤져봤지만 어디에서고 오라버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었답니다. 그래서 그때 마침 교구 사무장이 성당 안을 뒤져보자는 제안을 했지요. 그래서 사람들이 열쇠를 가져와 성당 문을 열고, 사무장과 오루크 신부님과 또 거기 있던 다른 신부님이 등불을 가져와 오라버님을 찾기 시작했지요....그런데 오라버님께서는 두 눈을 부릅 뜨고 혼자서 조용하게 웃는 듯한 모습을 하고 컴컴한 자기 고해소에 혼자 꼿꼿하게 앉아 있더라지 뭡니까?


그녀는 무언가에 귀를 기울이듯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 나도 덩달아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집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다만 우리가 얼마 전에 보았던 대로 나이 많은 신부가 가슴에는 텅 빈 성작을 안고 죽어서 엄숙하고도 험상궂은 표정을 하고 관 속에 말없이 누워 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일라이저가 다시 말을 시작했다.


- 두 눈을 부릅뜨고 혼자서 나직하게 웃는 듯한 모습을 하고... 그래서 그때 물론 그런 모습을 발견한 사람들마다 오라버님에게 무언가 잘못된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하게 되었지요...



어떤가요? 이렇게 소설은 끝이 납니다. 조이스가 무슨 퍼즐을 숨겨놨는지 가늠이 가시나요? 정답은 없습니다ㅎㅎ.



「희극의 파편」은 독자가 가볍게 마주할 수 있도록, 그저 장면을 꺼내어 놓기만 합니다. (조이스도 같은 생각이었나 봅니다.)


적용 질문입니다.


1. 내가 살면서 가족이나 지인에게 숨기는 것은 무엇이며, 그것은 꽤 누구를 불편하게 만드나요?


2. 조이스는 왜 끝내 설명하지 않으려 할까요? 나는 어떤 종류의 진실이나 해명을 거부해본 적 있나요?


3. 누군가에게 재밌는 영상이나 글을 링크로 공유해본 적이 있나요? 그때 다시 그것을 봤을 때 재미가 스스로 확 식은 적이 있나요?


4. 내가 어떤 것을 설명하고 싶을 때, 그것을 설명하려는 순간, 그것은 이미 다른 것으로 바뀌고 있다고 느낀 적이 있나요?


5. 트라우마는 온전히 언어로 설명될 수 있나요?


「희극의 파편」은 ‘이상하게 오래 남는 순간들’을 의도적으로 골라내고, 붙잡고, 말로 돌려줍니다.



나는 복도를 걷는 발자국소리를 듣고 있는데, 나는 보이고 있다. 그래서 나는 부끄러워지고 있다.



-장폴 사르트르-


오늘의 이론입니다.



푼크툼적으로 봤을 때, 저는 이 사진을 보고 우리 백구를 떠올렸습니다.^^



롤랑 바르트의 '푼크툼'


갑작스럽게 나를 찌르고 들어오는 감정적 순간.


사진을 읽기의 대상으로 보지 않겠다는 선언. 사진에 대한 분석과 비평을 시도하지 않겠다는 것.

모든 환원적 체계에 대한 결사적 저항,


오직 자신을 위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는 몇몇 사진에 대해 본인이 주관적으로 느낀 것들만 이야기하는 것.


누군가에게 들켜버리는 순간, 계산되지 못하고 논리로 풀 수 없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당하는 선(禪)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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