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김약선이라는 유능한 인물이 있었다.
여러번 승진을 거듭해서 추밀원부사(군사 및 기밀 업무 총괄, 왕과 밀접히 일함, 오늘날 국방부+국가안보실 기관의 2인자)라는 직급까지 오르게 되었다.
게다가 아내는 당시 무신정권 시기 최고권력자였던 '최우'의 딸이었다. 둘 사이에 낳은 딸 또한 태자비(당시 왕 고종 아들의 아내)가 될 사람이었다. 그의 인생길은 탄탄대로였다. 모든 권력을 손에 쥔 셈이었으니까. 당시 그에게 무서울 것이 있었을까?
날이 갈수록 그의 교만함은 하늘을 찔렀다.
「희극의 파편」은 단편, 장편 희곡 중 재미있는 한 장면을 선별해 그 감정적 여운과 미학적 장치를 분석하고 현대적 맥락에서 다시 사유해보는 비평적 에세이 시리즈입니다. 말은 거창하지만 그냥 특정 장면이나 대사를 가지고 이리저리 뜯어보면서 독자와 함께 놀아보는 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희극의 파편」 스물다섯 번째 작품은 고려사의 '김약선'입니다.
(출처: 고려사 열전 권제14 제신)
막장 부부들의 소행을 한번 보고 가시죠.ㅎㅎ
부담없이 가볍게 한번 읽어보시고 가세요^^
그래서 아내는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무리봐도 그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건... 고상한 집안의 딸인 자기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그는 모든 걸 자신 혼자의 공로처럼 포장하며 다니는 모습이, 점점 더 꼴사납게 느껴졌다.
게다가 그는 망월루라는 널찍한 방을 만들어 그곳에 여러 여성들을 불러들여 음란한 짓을 마다하지 않았다.
세상에 이런 오만한 남편이 이 세상에 어딨어?
그녀는 밤새 상상했다. 여러 계집들은 벌거숭이 꼴로 거문고를 치고 있고...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이리 오너라' 말한다. 계집들이 살포시 남편의 다리를 만진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불을 덮었다. 그냥 잠이나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그녀는 돌쇠를 급하게 불렀다.
마님, 왜 그러십니까?
이리 들어오너라.
새벽중에 무슨 일이 있으신 겁니까? 제가 들어가도 됩니까?
군소리말고 들어오너라.
흥, 나라고 이 꼴을 보고만 있을 순 없지!
마님...?
너도 명색이 사내이니, 구실을 해보거라. 이건 명령이다. 거역하면 목숨을 부지하지 못할 것이니라.
그녀는 질투와 보복심으로 돌쇠와 가까이하기 시작했다.
그러고선 다음날 아침이 되자마자 아버지 '최우'에게 가서 말했다.
아버지, 이런 남편하고 살 바엔 저는 집을 버리고 차라리 비구니가 되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후 아버지 '최우'는 즉시 김약선과 사통한 처녀들과 그들을 맺어준 자들을 섬으로 유배 보내고 망월루를 허물었다.
시간이 지나고.. 분명히 시간이 지났는데, 아내는 뭔가 허전한 것이 남아있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또 밤을 지새웠다. 그러고선 결심했다.
'좀 모자라서 그렇지, 얼굴은 반듯하고 힘이 좋단 말이지.'
저기...
예.
들리느냐?
예, 마님.
돌쇠 이놈아. 뭐하니? 그럼 빨리 이리 오란 말이다.
정말 시간이 지난 후, 김약선이 아내가 남자 종과 간통한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아내는 다른 사건을 가지고 아버지 '최우'에게 또 거짓말을 하며 참소하였다.
그러나 아버지 '최우'는 이제 눈치를 채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무고인 것을 확인하고 남자 종을 죽이고 자기 딸도 멀리 하여 죽을 때까지 보지 않았다고 한다.
끝
어떤가요?
그때나 지금이나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같지 않나요?^^
「희극의 파편」은 독자가 가볍게 마주할 수 있도록, 그저 장면을 꺼내어 놓기만 합니다.
적용 질문입니다.
1. 아내는 정말 남편에게 상처를 주려고 했을까요, 아니면 자기 욕망을 솔직히 따른 것일까요?
2. 아내는 왜 그렇게 기이한 방식으로 불륜을 저질렀을까요? 그러한 성격은 어디에서 기인됐을까요?
3. 그것이 위엄 있는 집안에서 자란 환경과 연관이 될까요? 품위와 절제를 지켜야하는 도덕적 기준에서 벗어나는 쾌락 때문이었을까요?
4. 남편에게 어떤 소외감을 느꼈을까요? 그의 방임은 그녀에게 어떠한, 병적인, 무엇을 일으켰을까요?
「희극의 파편」은 ‘이상하게 오래 남는 순간들’을 의도적으로 골라내고, 붙잡고, 말로 돌려줍니다.
만약 꿈의 기능이 잠을 연장하는 것이라면, 그리하여 어쨌거나 꿈이 그 꿈을 꾸게 만든 현실에 그처럼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면, 잠에서 깨지 않고도 꿈이 그러한 현실에 응답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결국 여기엔 몽유병적 활동이 있는 것입니다.
-자크 라캉
오늘의 작품입니다.
신윤복의 '월야밀회', 19세기 초반, 종이에 채색, 28.2cm×35.6cm, 국보135호, 혜원전신첩, 간송미술관 소장아내의 사적 복수, 그런 꿈을 깨는 것은 역설적으로 실재에 대한 환상을 만들어낸 아버지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