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알아야 기준도 생기고 의견도 생기는 거지. 누가 물어봐도 시원하게 답을 하지 못할 때마다 나는 어디에 기준을 둬야 하는지 몰라 답답하고 불안했어. 아이들이 조금 더 어릴 때 왔더라면, 아니 한참 후에 왔더라면 어땠을까, 한국에서도 십 대를, 사춘기를 처음 보내면 이렇게 어려웠겠지... 의미 없는 '만약'들을 떠올려도 도움이 안 되는 문제들 앞에서 나는 정말 도움이 하나도 되지 않는 부모였어. 내가 알던 세상이 상식인 줄 알았던 편협함이 모든 일상에서 부서져야 하는 과정이더라.
'다름'을 받아들이고, 나의 시야를 넓히지 않으면 그 대가는 고스란히 아이들의 몫이 되니까. 대문 안과 밖이 너무 다른 삶을 살게, 아직 자아도 서지 않은 아이들에게 이중 잣대를 세워서 날마다 갈아 끼우게 할 수는 없었어. 부모도 함께 바뀌지 않으면, 아이와 단절되는 건 시간문제더라고. 그 다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게.
우선 학업성취도. 캐나다 학교 교육은 학업이 그 무엇보다 우선이지 않더라. 시험 기간 전 주에 오만가지 행사들이 어찌나 많던지, 학교가 학업을 방해하려 작정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지. 우리 아이들 학교에서는 우등상 기준이 85점이었어. 학기가 끝날 즈음, 학부모를 모아놓고 85점이 넘는 아이들을 호명하며 상장을 줬는데, 너무 자랑스럽다, 너무나 뿌듯하다, 정말 대견하다... 진심인 듯 눈물을 글썽이는 엄마들도 있었어. 그 세리머니 때마다 나는 정말 뻘쭘하더라. 90점 이상 받는 게 힘들 정도로 학과 과정이 어렵지도 않은데, 85점에서 안주하려는 아이들에겐 어쩌면 교묘한 기회 뺏기가 될 수도 있을 텐데, 유치원생도 아닌 아이들에게 이런 과잉 칭찬을 왜 하는 걸까 생각하다가... 캐나다는 적당한 평균의 일개미를 만드는 데에 집중한다는 걸 알았지. 어차피 모래만 짜도 석유가 나오는 나라인데, 너무 똑똑한 일개미들이 많으면 피곤해지니 그러는 건가 싶었어. 누구 하나 튀지 않고, 뭔가로 튄다고 막 띄워주거나 특별한 대우를 하지도 않는 분위기. 공부로 먹고살든 플러머로 먹고살든, 삶의 질이 비슷한 나라. 그러니 그 이상을 하고 싶으면 그 방법은 알아서 찾아야 해. 그 너머엔 이러이러한 길들이 있다고 먼저 보여주며 자극하고 격려하는 대신, 여기까지가 우리가 제공하는 기본이고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한데, 더 하고 싶다면, 네가 먼저 문을 두드린다면 기꺼이 도와주마... 뭐 그런 식이었어. 전에 공립에서 정말 잘하는 아이들이 진짜 천재더라는 말은 여기서 나온 거야. 누가 이끌어줘서, 방법과 도움을 전수받으며 따라가는 게 아니라, 길을 뚫어보려는 의지가 있는 아이들, 그냥 두면 국가에 손해겠다 싶은 아이들에게만 그다음 스텝에 허락하거든.
그렇다고 캐나다 교사들이 아이들을 모두 적당히 정해진 것만 가르치고 만다는 건 절대 아니야. 눈에 불을 켜고 도와줄 준비를 하는 분들도 많았지. 사립 고등학교의 예긴 하지만, 어느 날 우리 큰 아이 영어 수업 시간에 갑자기 모두에게 에세이를 쓰라고 했대. 예고가 없었으니 주제도 그날 그 시간에 공개했지. 아이들은 아무 생각 없이 평소 실력으로 에세이를 써서 그 자리에서 제출했어. 나는 그냥 수업 과정의 일부려니 했어. 그런데 그 교사는 거기서 잘 쓴 에세이를 추린 다음 (이메일로 학생의 동의를 구한 후) 에세이 대회에 출품시켰지. 우리 아이는 그렇게 자기도 모르던 에세이 대회에 나가 상을 탔어.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다른 학생들에겐 굳이 알리지 않더라. 다른 아이들은 그런 에세이 대회가 있는 줄 모르고 그 학기를 마쳤어. 불필요한 경쟁이나 스트레스는 애초에 만들지 않는 거지. 고맙더라. 하지만 한편으론 무섭기도 했어. 내 아이가 모르고 지나간 기회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하고.
AP 과목도 그랬어. 우리 아이가 하고 싶은 과목의 AP 과정이 학교에 없었어. 그래서 포기하려고 했는데, 이걸 알게 된 담당 교사가 방과 후에 따로 교실에서 우리 아이만 두고 이 과정을 가르쳐주셨어. 사립학교여서 가능했던 일일 수도 있지만, 어마어마한 학생수의 국립대학을 다녔던 시절을 회상해 보면 이게 이 나라의 기본 상식 같았어. "손 뻗으면 도와준다. 그러나 먼저 끌고 가진 않는다."
그러니 잘 생각해. 주도적인 아이, 도전적인 아이, 성취감을 즐기는 아이라면 (적어도 학업 면에서는) 점수든 태도든 평균 이상을 뚫을 수 있고, 예상을 넘어서는 도움도 받을 수 있어. 하지만 학업보단 다른 분야에 흥미가 있거나, 주변 친구들보다 뭔가 공부를 더 하는 걸 원치 않는 아이라면 캐나다 교육이 오히려 아이에게 '이 정도도 훌륭하다, 이만해도 충분하다'를 뼈에 새겨주는 셈이 되겠더라. 한국에서 학업에 큰 흥미가 없던 우리 둘째가 그랬지. 이 녀석이 어느 날 내게 와서 이러더라고. "엄마, 나는 어른이 되어서 우리 동네 맥도널드에서 아르바이트만 하며 살아도 괜찮을 거 같아". 반대로 한국에서 80점대 점수는 받아본 적이 없는 큰 아이는 답답해하고 불안해했어. 공부에 올인하던 한국 친구들을 수시로 이야기하면서 '캐나다 이러다 진짜 큰일 난다. 이렇게 대충 공부하다 진짜 큰일 나...'라고 했지.
대학에 보내보니 역시나 마찬가지였어. 뭔가 어렵거나 길이 없는 것 같을 때 학과사무실에 문의하면 정말 별의별 서포트가 다 준비되어 있더라고. 먼저 나서서 물어보거나 알아보지 않으면 그런 혜택이 있는 줄 모르고 힘들게 학교를 다니는 억울한 상황이 한둘이 아니겠더라. 심지어 시험 기간이 겹칠 때, 아파서 시험을 제대로 못 볼 것 같을 때, 심지어 과제 제출 기한을 모르고 넘기는 상황 같은 걸 전담해서 도와주는 인력들이 있더라고. 목이 마르다고 적극적으로 어필하는 사람에게는 우물을 팔 지점까지 알려주지만, 혼자 끙끙대면 우물은커녕 삽이 있는 줄도 모르고 떠나는 곳이 캐나다 학교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