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정말 너에게 들려주는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담이니, 옆집 언니네 경우를 일반화하지는 말고 들어주면 좋겠어. 학부모마다 다른 거야 어쩌면 너무 당연한 거겠지만, 내 눈에는 집단의 특성처럼 보여서 나름 신기했던 에피소드들을 풀어볼게.
어느 날 둘째 아이가 뚱한 표정으로 집에 오기 시작했어. 며칠 그러는 모양새가 영 삐딱해서 식탁에 앉혀놓고 살살 달래 가며 물었지. 그랬더니 하는 말이, "엄마는 이벤트를 너무 안 해줘!"라는 거야. 자초지종 들어보니, 친구들은 작은 퀴즈만 봐도 엄마들이 마구 칭찬을 해준다는 거야. 하교 후 그 당시 제일 친한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전날 75점 받은 퀴즈 점수를 축하한다며 여기저기 풍선을 달아놓고 저녁에 기념 외식을 하러 가기로 했다고 하더라나. 그날 그 어린애를 앉혀두고 나의 소위 '교육철학'을 이해시키느라 진땀을 뺐지만, 저학년일수록 이게 참 어려운 일이야. 대부분의 친구들에게 익숙한 문화를 내 아이만 거스르게 하는 거잖아. 어떤 종교나 신념이 아닌, 학업에 관한 시각, 가치관과 상식에 대한 나의 기준이 내 아이가 속한 세상과 다를 때부터 진짜 소리 없는 전쟁이 시작되는 거였어. 한인 학생이 많은 학교를 간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닌 것이, 언젠가는 깨져야 할 기준이기 때문이야.
큰 애가 아직 왕따를 당하기 전, 그룹의 한 친구 생일 파티에 초대를 받았어. 그 아이 집에서 자고 오는 파티였지. 내가 잘 모르는 가정의 집에 내 아이를 덜렁 자고 오게 해도 되나... 초대장을 받은 날부터 난 정말 고민이 많았어. 그런데 9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모이는 파티 규모에 그냥 허락하고 말았지. 부모들이 멀쩡해 보이는 집안 애들한테 뭐 위험한 일이 생기게 하겠나... 그런 얕은 생각도 있었고.
밤 12가 거의 다 된 시간에 아이에게 전화가 왔어. 자기를 얼른 데리러 와야 한다는 거야. 대신 조건이 있으니 절대 야단을 치지 말라면서. 몸을 덜덜 떨며 그 친구네 데리러 갔더니, 세상에, 이제 9학년밖에 안 된 아이들만 두고 그 집 부모들은 데이트를 나갔었더라. 애들끼리 놀다가 삼삼오오 찢어져서 몇몇은 방에서 화장을 하며 놀고, 몇몇은 영화를 봤는데, 한 아이가 그 집 부모의 술을 몰래 꺼내 마시고 친구 두 명도 꼬드겨서 마시게 했대. 그런데 그중 한 아이가 유전적으로 병이 있어서 평생 약을 먹는 중이었고, 그 약을 먹은 상태에서 도수가 높은 위스키를 마신 바람에 발작을 일으키게 된 거야. 놀란 아이들은 자기들도 겁이 나니 일단 911에 전화를 해서 응급차가 왔고, 미성년자들이 술을 마시다 생긴 사고라 경찰들이 집에 오고, 유치한 화장 놀이를 하던 우리 애는 우스꽝스러운 화장을 한 다른 친구들과 함께 경찰의 '심문'을 받은 거였어.
어찌어찌 경고 선에서 마무리가 되고 경찰들이 모두 돌아간 후가 내 눈엔 가관이었어. 모두가 무슨 드라마라도 찍는 듯이, 네가 아무 일 없어서 너무나 행복하다, 재빠르게 911에 연락한 너희들이 자랑스럽다, 이런 재미난(?) 에피소드가 있는 너희의 십 대가 부럽다... 이런 코미디를 하며 갸륵한 표정으로 애들을 안고 뽀뽀를 하더라. 다음부턴 "맥주"를 마시라고도하고. vape라고 하는 일종의 물담배가 유행하기 시작했을 때, 아직 초등학생인 둘째 반 남자애가 주말에 아빠와 함께 딸기맛 물담배를 사 왔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그랬지만, 여기 학부모들은 단체로 말기 쿨병에 걸린 게 아닌가 싶었어. 나는 오직 너의 건강과 안전에만 관심이 있다, 사고를 쳤어도 교훈만 얻었다면 뭐든 상관없다, 온전한 인격체인 너의 인권과 프라이버시를 100% 존중한다... 뭐 이런 거창한 괴변을 핑계 삼아 자신들의 인생을 즐기고 의무와 책임에서도 벗어나겠다는 건가...
동성애 문제에 대해서도 그랬어. 정말 그렇게 태어나서 자기도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경우도 물론 있겠지만, 어린 나이엔 일종의 호기심인 경우들도 있거든. (큰 아이 그룹에서 두 명이 레즈비언이라 밝히고 몇 년을 사귀다가 지금은 다시 이성을 사귀고 있더라고.) 취향과 선택의 문제라며 바이(이성과 동성 모두를 사랑하는)가 된 아이들도 있고. 아직 어리고 충분한 자기 판단력이 영글지 않았을 때 어떤 가치관을 주입하는 건 어쩌면 일종의 학대가 아닐까 생각하며 동성애 수업 설문지에 반대 의사를 밝힌 나와는 달리, 그들의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찬성 의사를 밝힌 학부모가 더 많아서 결국 학교 성교육 시간에 동성애 내용을 담았어. 그것도 초등학교에서. (참고로 8학년때로 기억하는데, 실물을 닮은 모형에 콘돔을 입히는(?) 실습도 있어.)
교사-학생-학부모 면담에 가면, 16세부터는 '성인' 취급을 하기 때문에 학부모에게 아이의 성적을 알려주지 않아. 난 농담을 하시는 줄 알았어. 아이가 공개해도 괜찮다고 말하니까 오히려 교사가 "정말? 너 진심이지?"라고 되묻더라. 성적을 알려주고, 학교 생활 이야기도 나누고, 그러면서 서로 어려운 점, 노력할 부분을 이야기할 줄 알았는데, 선생님은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아이만 보며 이야기했어. 나는 약간 '기사 아줌마'가 된 분위기였달까.
겉으로는 그렇게 아이의 권리와 자유를 중시하고 독립성을 우선시한다면서, 하교 시간에 걷거나 버스를 타고 오게 하는 학부모는 거의 없었어. 아이를 데리러 교문 밖까지 늘어선 학부모들의 차량 행렬은 '대치동 10시 도로 상황'과 별반 다를 게 없었지. 뉴욕으로 가는 학교 트립이 있었는데, 세상에나 한 엄마가 나서서 스쿨버스를 나눠 타고 오는 아이들보다 먼저 도착하도록 비행기 티켓을 함께 끊고, 숙소도 같이 잡자고 연락을 돌리더라고. 엥? 캐나다에서? 하는 나와 달리, 거의 모든 엄마들이 그 '공동구매'에 동참했어. 아빠들도 함께. 나중에 알고 보니, 캐나다 학부모들은 저런 식으로 학부모들끼리 인맥 관리를 하더라. 큰 아이가 나중에 로스쿨에 가서 해줬던 이야기인데, 입학 후에 학부모들끼리 서로 연락을 하고, 파티를 하고, 법조인 인맥을 공유하면서 아이들 인턴이나 취업에 도움을 주고받더라고. 캐나다는 정말 알면 알수록 인맥 사회였어. 공평하고 투명한 사회? 적어도 내가 아는 캐나다는 소개와 인맥으로 얽힌 곳이야. 인맥이 없으면 첫 번째 문을 열기도 어려운 곳.
가끔씩 아이들만 유학을 보낸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나는 그래서 자못 걱정이 돼. 우리 학교에도 유학생으로 혼자 온 학생들이 여럿 있었고, 학교에 거의 가지 않는 부모들도 물론 있었어. 하지만 저런 분위기를 알면 알수록, 캐나다 역시 아이 혼자 고군분투하기엔 출발선부터 불공평한 곳이란 생각이 들었어. 아이를 독립적으로 키운다고 말하지만, 뒤에선 티 나지 않게 길을 닦아주는 캐나다부모들을 보면서 말이야. 의사인 아빠가 자기 아이를 동료 병원에서 일을 하게 해 주고, 실력이나 학점이 부족한 아이에게 (부모의 인맥으로) 인턴 자리를 줘도 이상할 것이 없는 곳이었어. 분명한 그사세가 있는 곳, 끼리끼리 문화가 당연한 곳, 유학 간 아이보다 부모가 배우고 깨쳐야 할 것이 더 많은 곳. 내게 캐나다는 그런 곳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