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떡갈나무 Oct 04. 2023

11. 숨 쉬듯 증명해야 하는 고단함

캐나다로 '전학'을 간 지가 10년을 훌쩍 넘었지만, 우리 아이들은 아직도 자신의 '역사'를 증명하는 삶을 살고 있어. 한국어보다 영어가 편하고, 한국 친구들보다 그 나라 친구들이 더 많은데도 여전히 누군가에겐 '이방인'인 삶을, 어쩌면 당연한 듯 받아들이기도, 혹은 애써 외면하기도 하는 것 같아.


가끔은 병적으로 '평등'에 집착하는 것 같지만, 캐나다인들 역시 한두 겹만 벗고 나면 결국 한국과 다를 바 없는 궁금함을 드러내며 에두른 호구조사를 하더라. 어디서 왔는지, 왜 왔는지, 부모님은 무슨 일을 하시는지, 왜 이런 관심이 생긴 건지 등, '너라는 사람을 알고 싶다'는 거창한 포장지도 결국엔 '어느 아파트 몇 동'에 사는지 캐묻는다는 한국의 세태와 별반 다를 게 없어.


서글픈 사실은, 그런 호구조사식 관심을 얻기까지도 꽤 어렵더라는 거야. 그저 평범한 이민자 혹은 유학생으로 보일 때는 그런 궁금함조차 가져주지 않았어. 그러다 보니 누군가 우리를 궁금해하면, 나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면, 우린 그걸 어떤 '기회'로 받아들이며 정말 열심히 우리를 소개하고 증명하게 되더라고. 내가 비록 너희만큼의 고~오급 영어를 구사하지는 못하지만 내 나라에선 이런 무시를 당할 사람이 아니었다, 나의 단어 수준이 너절해도 나의 학식과 지혜는 너에게 뒤지지 않는다, 네가 모른다 해서 나의 모교나 출신이 그저 그런 곳이 아니다... 를 내내 웃는 표정으로 나름 품위 있게 증명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다 보면, 정말 머리가 통째로 어디론가 굴러갈 것만 같았지.


다행인 것은, 캐나다가 이민자의 나라라는 거였어. 출신국이 달라도 우리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가정이 주변이 많다는 건 꽤나 의지가 되는 일이야. 갈수록 중국 친구, 홍콩 친구, 인도 친구가 편해지고, 서로의 가족이 되어주기도 하더라. 이민 1세 부모를 가진 자녀로서의 고충을 나누다가, 부자 유태인 동료의 여우짓을 서로 하소연하다가, 맨땅에 헤딩하는 서러움을 서로 알아주다가, 그렇게 둘도 없는 사이들이 되어갔어. 대학에 가면 교포나 어릴 때 유학온 한국 아이와 유학생으로 온 한국 아이가 서로 섞이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아. 이 문화가 이젠 익숙하고 자연스럽지만 오랫동안 조금씩 쌓인 주눅이 배려와 조심성, 그리고 적당한 거리 두기로 굳어진 우리 아이들이 내 나라에서 내 부모에게 전수받은 익숙한 기준으로 청소년기를 보내면서 당당하고 거칠 것도 쫄릴 것도 어려울 것도 없는 스무 살이 된 한국 유학생들과 섞이기 쉬울 리 없지.


가끔 철이 든 내 아이들이 억지로 웃자란 것은 아닐까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해. 하지만 익숙한 한국에 계속 있었다면 있는 줄도 몰랐을 껍데기를 온전히 자신의 노력과 눈물로 깨고 나왔음에 더 감사하기로 했어. 이유도 모르는 차별을 겪어봤기 때문에 동등함의 중요성을 알고, 다양한 색의 사람들 사이에서 단련되었기 때문에 '다름'의 깊이를 배웠고, 결핍을 받아들이고 건강히 채우려 노력했기 때문에 주변의 부족함을 알고 손내밀 줄 아는 온기도 갖게 되었으니까.


애초에 전쟁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불필요한 출혈도 없었겠지만, 나는 이런 전리품이 때로는 자랑스럽고 감사해. 과정은 외롭고 씁쓸하지만 두고두고 인생에 무기가 될, 아이 스스로의 힘으로 얻은 전리품이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10. (나의 예상과) 달라도 너무 다른 - 학부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