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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은 콩밭에 Jan 29. 2024

(독서)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

작가정신

문학이 한없이 하찮게 여겨지는 자의식에 시달릴 때 어떻게 자기암시로 돌파했는지, 한 작가가 감당할 수 있는 세계가 얼마나 되는지.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는 게 불가능함을 그러니 그렇게 절망한 일은 아니라는 것을, 그럼에도 내가 겪고 있는 일들을 경험한 누군가가 있으며 작가 또한 이해하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문자와 실재 간에 커다란 간극이 존재하며 몇 줄로 요약되는 삶과 죽음 사이에 소중한 희로애락이 내포돼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카프카는 오전 8시부터 오후 2시까지 근무하고 3시까지 점심을 먹었으며 그 이후부터 7시반까지 수면, 그러고는 한시간 산책을 한 후 10시반부터 책상에 앉아 작업을 시작한다. 2시, 3시까지, 잘되면 6시까지. <프란츠 카프카, 꿈, 149쪽>


문학은 포기라는 사실을, 모든 것을 시도하고 모든 것에 실패했을 때에야 비로소 문학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내 능력 너머에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 밖에서 문학이 온다는 사실을 말이다. 


분열이 임계점에 다다랐을 때, 그것을 끄집어낼 표현의 도구가 간절해졌고 아무런 경제적 자본을 필요로 하지 않는 예술이 문학이엇다.


소설가란 스스로 자신을 실험용 쥐로 만들어서 써먹으려는 존재다. 소설가란 언제든 수많은 실험용 쥐로 분열할 수 있는 존재다. 


오에 겐자부로, 오르한 파묵, 폴 오스터


자기 안의 생래적인 에너지나 기질로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 소통하고자 하는 욕망이 강하고, 그것을 주체할 수 없어 끊임없이 써야만 한다면, 그래서 그 지속적이고도 응집된 결과물이 한 편의 글로 세상에 던져지게 된다면 , 그 글은 읽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가 보석보다 아름답다는 것을, 칼보다 강하며 죽음보다 영원하다는 것을. 


하나였던 그가 그들 셋으로 분화, = 소설가는 주인공으로 분화한다. 


흩어진 모든 게 무한히 확장되고 증식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문장으로 남았다가 나중에는 그조차 해체되고 분해되더니 마침내는 문장마저 벗어나는 거였다. 


소설은 나를 변화시킵니다. 소설은 나를 삶의 방향으로 끌어당깁니다. 소설을 쓰고 읽으면서 나는 다른 삶을 꿈꿀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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