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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은 콩밭에 Mar 27. 2024

(독서)밝은 밤

최은영

쇼코의 미소처럼 읽다가 여러번 눈물이 후두둑. 특히 서간문을 연상케하는 편지가 인상적. 내가 느꼈던 광복을 지나, 한국전쟁을 거친 할머니들의 삶에 새로운 '우정서사'가 부여되는 느낌. 다만 그렇게까지  신산하게 살았다면 정보다 질투, 시기, 공포 같은 감정에 압도되지 않았을까. 그렇게 가난하게 살면서 사랑한다는게 가능할까 하는 생각도 들게했지만, 어디에 이런 사람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해주는 게 소설가의 힘 아닐까. 


여자들의 우정을 진하게 경험하면서 살았던 적이 별로 없어서, 책을 읽으며 대리만족하는 느낌이 가장 좋았다. 이런 게 문학의 힘인가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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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내가 살면서 가장 사랑한 사람이었어요. 무서워서 떨면서도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 나는 어머니를 닮고 싶었어요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든 빠르게 포기하고 체념하는 게 사는 법이라고 가르쳤다. 삶에 무언가를 기대한다고? 그건 사치이기 전에 위험한 일이었다. 어떻게 내게 이럴수 있어?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거지? 같은 의문의 싹을 다 뽑아버리라는 말이었다. 왜 때리는 거지? 왜 빨리 떠난 거지? 왜 함께할 사람이 없는거지? 그런 질문을 하는 대신에 이렇게 생각하라고 했다. 


오늘 지나가는 길에 맞았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다

내 남편이 죽었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다. 

나는 혼자 슬퍼했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다. 

그런 식으로 일어난 일을 평가하지 말고 저항하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했다. 


앞으로 남은 인생이 헤어짐의 연속이라고 생각하면 벅차. 


영옥이 너는 조선인이 일본임보다 천하다고 생각하니? 진짜 천함은 인간을 그런 식으로 천하다고 말하는 바로 그 입에 있다고 했다. 


마음으로는 그렇게 지척인데 볼수도 만져볼수도 없다는 게, 영영 없어져버렸다는 게 지금도 믿기지 않아.


세상엔 끝나는 것만 있다고 생각했거든. 


자신이 딸이 다른 차원으로 가기를 바랐던 마음이었겠지. 본인이 느꼈던 현실의 중력이 더는 작용하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딸이 더 가벼워지고 더 자유로워지기를 바랐던 새비 아주머니의 마음을 나는 오래 생각했다. 


내가 지금의 나이면서 세살의 나이기도 하고, 열일곱살의 나이기도 하다는 것도, 내게서 버려진 내가 사라지지 않고 내 안에 그대로 남아있었다는 사실도. 그애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관심을 바라면서 누구도 아닌 나에게 위로받기를 원하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경계하지 않을 때, 긴장하지 않을 때, 아무 일도 없으리라고 생각할 때, ,비관적인 생각에서 자유로울 때, 어떤 순간을 즐길 때 다시 어려운 일이 닥치리라는 불안이었다. 당장 무슨 일이 터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전전긍긍할 때는 별다른 일이 없다가도 조금이라도 안심하면 뒤통수를 치는 것이 삶이라고 할머니는 생각했다. 


인간이 측량할 수 없는 무한한 세계까 지구밖에 잇다는 사실은 나의 유한함을 위로했다. 우주에 비하자면 나는 풀입에 맺히는 물방울이나 입도 없이 살다 죽는 작은 벌레와 같았다. 언제나 무겁게만 느껴지던 내 존재가 그런 생각 안에서 가벼워지던 느낌을 나는 기억했다. 무리를 이루는 듯 보이는 밤하늘의 별들도 철저히 혼자이며, 하나로 응축되어 있던 물질들이 팽창하는 우주 속에서 빠른 속도로 서로에게서 멀어져가고 있다는 사실은 내가 어린 시절부터 줄곧 느껴왓떤 슬픔을 설명해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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