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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은 콩밭에 Sep 23. 2023

어눌함의 출처

은유로서의 취재

<말의 어눌함, 팩트를 잘 모름에 대해>

     

장기 프로젝트 취재를 하면서, 눈에 띄게 자각하는게 취재 중인 프로젝트를 말로 설명을 잘 못한다는 것이다. 기본적인 육하원칙, 숫자, 데이터, 쟁점, 포인트를 모른다. 그래서 저널리즘 모임에서나 교수님한테, 의원회관에 가서 설명을 할 때도 말문이 턱 막혔다. 듣는 사람도 갸우뚱. 나도 갸우뚱.

      

왜 그런지 곰곰이 생각을 해봤더니, 진짜 몰라서다. 사안의 변죽만 알고 있고 정작 사안의 핵심을 꿰뚫지 못한달까. 치열하게 이 취재꺼리의 환부 지점. 긴요한 사실들의 씨줄 날줄을 명료하게 파악하지 않고 있다. 흐릿하게 희미하게 그 주변부만 훑고 있다는 느낌. 왜 그런지 생각해보니까. 결핍을 탓하게 된다. 치열하게 기자생활을 안해서. 팩트파인딩 교육을 못받아서?      


말의 어눌함은 곧 인식과 사고의 구멍 같다. 취재 중인 내용을 설명하면 ‘나이브하다’ ‘조금 더 알아봐야겠다’ ‘잘 모르지?’ 같은 뉘앙스의 피드백을 늘 받는 원인도 거기에 있었다. 급소를 파헤치는 보도를 하는데 숙련돼 있지 않아서 그런 것 같기도. 그렇게 치면 난 10년 동안 뭘 한거지. 또 이렇게 귀결.     


근본적으로 실증주의적으로 사고하는 게 안돼 있다는 느낌도 받는다. INFJ는 이성과 감성의 조화가 잘돼있다

(MBTI 비판해놓고)고들 하는데, 감정, 정념 같은 것에 꽤 취약하다. 논리와 사고, 분석과 사회학적 사색, 입증가능성, 자료/문건에 나온 활자를 놓고 치밀하고 정교하게 파고드는 걸 해본 적이 많지 않다.      


인문적이라는 것/페미닌 하다는 것/감수성이 예민하다는 것에 강박적으로 저항하던 때가 있었다. ‘인문대를 나온 여성’으로서 예측가능하고 진부한 속성들을 고스란히 가진 평면적인 사람이 되는게 너무 싫었다. 그에 대한 반동으로 기자를 하고 싶어했던 것도 맞다. 그런데 10년을 해도 여전히 그 속성을 버리지 못한건가. 그건 못바꾸는건가. 아무튼 이번 기획취재를 계기로 꼬장꼬장한 실증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해봤다. 10년 했는데 한번은 그래봐야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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