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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은 콩밭에 Sep 24. 2023

(독서)조선과 일본에 살다_김시종

황국식민 교육을 철저하게 받고 자란 소년기. 조선어를 쓰면 고막이 터지도록 뺨을 맞는 소학교를 다녔던 유년기 시절까지. 메카시즘 광풍과 좌익 색출에 대한 기록이 담긴 4~5장은 빼고 다 읽었다. 금이야 옥이야 키운 외아들, 모범적 황국식민이었던 문학 소년이 해방을 맞고, 사회주의에 눈을 뜨고, 혼비백산할 신탁통치 시기를 거쳐 일본으로 망명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시인이 말하는 '보복'이라는 키워드에 대해서 생각한다. 보복의 대상은 시인처럼 언어일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겐 어떤 대상/집단을 넘어서서 혹은 찢겨졌던 삶의 기억, 경험, 아픔, 과거이지 않을까 싶다. 나도 '무언가에 복수하고 싶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적이 있었으니까. 그건 무언갈 지향하고 청사진을 삼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에너지다. 앙심과 되갚음, 보복의 에너지란 게. 그만큼 인간은 대게 고통이 가득한 삶을 살아서, 혹은 고통에 너무 취약한 생명체여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도. 


이 문장을 기억하고 싶다. 


시를 끝까지 살아내는 자신이기만을 오직 바라고, 관념이 아니라 실천으로 시를 살아낼 것을 생각했습니다. 


책을 끝까지 살아내는 자신이기만을 오직 바라고, 관념이 아니라 실천으로 책을 살아낼 것을 생각했습니다. 


**

언어는 의식의 밑천입니다. 내 의식의 밑바탕을 만들어낸 언어가 내게는 식민지를 강제했던 종주국의 언어였습니다. 그럼에도 내게 식민지는 가혹한 물리적 압박과 수탈이 아닌 너무도 다정한 일본의 노래, 소학교 창가와 둉오, 서정가라 불리는 그리운 노래로 다가왔습니다. (중략) 식민지 통치의 교만함이 조금도 없는 그 노래와 시가들이 아름다운 심정의 진폭이 되어서 내 마음에 스며들고 서정의 규범처럼 내 생애에 들어앉았습니다. 6~7쪽. 


범하는 측의 교만함을 풍기지 않는 그 '노래'가 식민지 통치하의 조선에서 식민지 통치를 완전하게 해나갔으며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읊는 계절감 충만한 정형운율의 시가 더할나위 없는 시가 되어 자연스럽게 생리에 자리 잡았습니다. 


일본어로 시를 쓰는 내게 해방이란 다감한 소년기를 뒤털으가며 길러낸 저 일본어의 정감, 운율을 내가 끊어내는 것입니다. 나는 자신이 짜올리는 어색한 일본어를 가지고서 나를 길러낸 일본어에 보복할 작정입니다. 


이것은 마지막, 마지막 부탁이다. 설령 죽더라도 내 눈이 닿는 곳에는 죽지 마라. 어머니도 같은 생각이다. 223쪽. 


나를 묶고 있는 운명의 끝은 당연히 내가 자라난 고유의 문화권인 조선으로부터 늘어져있습니다. 그런데 지식을 한창 늘려야 할 나이였던 내게 묶인 일본이라는 나라 역시 또하나의 기점이 되어 나의 사념 안으로 운명의 끈을 늘어뜨리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나는 양쪽 끈에 얽혀 자신의 존재 공간을 포개고 있는 자입니다. 일본에서 정주한다는 것의 의미와 재일조선인으로서의 존재 가능성을 파고들도록 이끈 '재일을 산다'는 명제는, 이리하여 나에게 들어앉았습니다. 234쪽.


표연히, 표변, 가시 돋친 밤송이 껍질 같은 기억이라 닿기만 해도 상처가 나서, 분해서 눈알이 튀어나올 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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