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야, 나 너무 덥고 그래서 더 아무것도 하기 싫어”
“너무 애쓰지 말어.”
“주말이라 밥시간은 자꾸 찾아오잖아.”
“그럼 방 하나 잡아줄게 가서 좀 쉴래?”
열대야가 끊이지 않고 있다. 정말 하루에도 몇 번씩 날씨 미쳤다. 를 외치고 오래전부터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즐기던 내가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벌컥벌컥 마셔대면서 이 더위를 식히려고 애쓴다.
이 더위는 나에게만 주워진 것도 아닌데 더워질수록 짜증이 겹치고 밥도 안 하고 날라리 엄마가 되고 있다.
그 모든 탓을 갱년기 인가로 합리화시켜보기도 하지만 누구도 알아주는 이 없는 그놈의 갱년기타령은 아스라이 사라진다.
광복절이 되던 날 지하 주차장에는 주차된 차가 많이 없었다.
지하주차장을 뱅뱅 돌며 하루 만보 걷기를 하던 내가 땀에 절여진 채로, 즐거운 여행을 떠나 빈자리로 텅 빈 주차라인을 바라보며 답답한 나의 마음을 차곡차곡 주차하듯 채워보았다.
‘다들 놀러 갔어. 나만 안 갔어 휴가’
혼잣말을 해 보며 그 뜨거운 지하주차장에서 난 만보 채우기에 급급했다.
광복절이 끝나고 드디어 금요일.
막내까지 모두 개학을 했다.
만세를 불렀다. 엄마가 미치기 직전에 한다는 그 개학. 선생님이 미치기 직전에 한다는 그 방학.
맞아. 난 미치기 직전이었어.
핸드폰에 정신없던 우리 집 중2는 독서록이니, 국어 예습이니, 혼자 본인 입으로 세웠던 계획은 모두 멀리 휴가를 가버렸다. 잘 가 쨔이 찌엔.
휴대폰 그만하라고 싸우는 것도 나이가 먹은 엄마가 지는 법.
엄마가 이긴 들 그 쓸쓸히 외로운 표정으로 휴대폰을 갈망하듯 쳐다보는 눈빛을 이길재량이 없다.
개학날은 단축수업. 아니 왜? 누구 맘대로?
학교 가자마자 오나?
난 모처럼 헬스장에서 시원하고 느긋하게 운동을 하고 있었다.
지하주차장 만보 걷기는 정말 더웠기 때문이다. 근데 학교 끝났다고 전화가 와버리니 난 헬스를 그만두고 집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찾아온 다시 주말. 이어진 방학 느낌은 나만의 생각일까.?
더워서 에어컨 켜고 선풍기 켜도 움직이며 청소하고 음식을 만드느라 덥고 힘든 건 똑같다.
무슨 국 하나 끓이면 몸에 땀이 비 오듯 옷을 적시고, 내가 언제 이렇게 물을 튀기면서 설거지를 했나 하고 보면 모두 내 땀.
누구는 나보다 먼저 일어나 밥을 먹어야 하고,
누구는 다이어트식으로 야채와 단백질을 먹어야 하고,
누구는 아르바이트하는 카페에서 점심을 안 챙겨 줬다고 징징대서 도시락을 싸서 날라야 했다.
나는 뭐야? 아무것도 안 먹고 싶고 그냥 날 내버려 둬.
이런 이기적인 생각을 하다가도 아빠를 닮아 모두 착한 눈빛을 가진 너희들을 보면 꼭 내가 악마 같아.
밥 해주기 싫은 못된 악마.
그러다 일요일 오후 역시 딸아이 아르바이트 하는 카페로 소고기 볶음밥을 챙겨다 주고 돌아오는 길이 무척 더웠다.
집 앞이라 걸어 나갔는데 햇빛은 뜨겁고 나의 땀구멍 하나하나에서 모조리 땀이 나오도록 내려쬐고 있었다.
거기다 밥을 또 안 챙겨준 아르바이트 사장 이야기에 더 화가 나서 몸이 더 뜨거워진 것도 있다.
사장 본인도 밥시간에 밥은 먹을 거면서 우리 딸에게 카페 다 맡겨놓고 밥도 안 챙겨주고 집으로 가버리다니.
씩씩대면서 집으로 돌아왔는데.
난 또 밥을 해야 하는 그런 저녁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자기야, 나 너무 덥고 그래서 더 아무것도 하기 싫어”
“너무 애쓰지 말어”
“주말이라 자꾸 밥시간은 찾아오잖아.”
그렇지 않아도 아침엔 아들과 맥도널드 햄버거 가게에 가서 시원하게 햄버거를 먹였다.
그 앞에 앉아 아메리카노를 마시자니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오후에 밥 차리는 게 또 하기 싫다고 하니 이런 불량와이프도 없을 텐데, 놀라운 이야기를 한다.
“그럼 방 하나 잡아줄게 가서 좀 쉴래?”
남편의 뜻밖의 이야기.
“밥은 내가 알아서 애들 해 먹일 테니 집걱정 말고 며칠 푹 쉬다와. 바로 예약해 줄게.”
난 지체하지 않았다. 고민도 하지 않았다. 바로 양치도구 싸서 출발해 버렸다.
나에게 주워진 23층의 방 한 칸.
침대에 시원한 바람을 쐬며 누워 패드로 드라마를 몰아봤다.
난 벌떡 일어나 팔을 이리저리 흔들며 땀이 나는지 확인도 했다. 아무리 움직여도 땀이 나지 않을 만큼 시원하다.
우리 집도 에어컨은 나오는데 왜 여기가 더 시원하지?
“자기야, 여기 너무 시원해.”
“응 나 쌀 씻고 있으니깐 쉬고 있어.”
”오빠, 뭐 해? 냉장고 두 번째 칸에 고기 볶아놨잖아. “
“응 알아서 데워 먹이고 있으니 걱정 마”
“오빠, 중2는 학원 갔다 와서 밥 먹었어?”
“응 줬어.”
계속 카톡은 내가 먼저 보내고 있다.
4시간쯤 지난 오후 8시.
“오빠, 나 심심해.”
“시원하게 쉬라니깐.”
“진짜 심심해. 오빠랑 같이 있고 싶다. “
“거기 주차도 한대밖에 못하고 나 애들이랑 같이 있어.”
“알았어 나 혼자 놀게.”
괜히 왔나? 나의 혼자 놀기 마지노선 시간은 4시간이었나. 너무 심심하다.
맥주를 하나 사 왔다.
밖이 너무 더워 벌컥벌컥 마셨다.
술을 못 마시는 내가 한 캔을 혼자 다 마셔서 취해버려 잠깐 잤다.
자고 일어나니 집에 가고 싶다.
더워도 자꾸 할 일이 생겨도 집에 있고 싶다.
근데 남편이 예약해 준 이곳에 낸 돈이 있으니 아까워서라도 못 가.
선반도 열어보고 커튼도 쳐서 밖도 바라보고 냉장고도 열어본다.
집이 제일 좋구나. 호캉스 별거 아니네.
난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가 새벽 6시에 일어나 덜 떠진 눈으로 운전해서 집으로 갔다.
아이들 학교를 보내고 집 청소를 했다.
또다시 땀범벅이 된 채로 말이다.
그리고 어제 혼자 호텔에서 유튜브를 보다가 발견한 도삭면이라는 것을 미리 주문해 뒀던 게 마침 도착했다.
애들 올 시간 맞춰 얼른 끓여놓아야겠다.
하루 만에 그리웠던 나의 주방에 서서 요리를 시작하기로 했다.
도삭면을 이용한 요리
도삭면은
칼(도) 깎을(삭) 면(면)
칼로 깎아낸 면이다.
그걸 또 건조해서 5인분씩 쿠팡에서 팔고 있다.
우선 끓는 물에 건조된 도삭면 1인분을 넣고 삶아준다.
도삭면은 삶은 후 볶거나 국에 넣어 요리하는데,
물에 담가져 삶아지는 시간은 총 5분 이어야 한다.
넘으면 다 부서진다.
우선 1차적으로 삶기만 하는 시간은 4분!
4분 삶은 후 도삭면을 건져낸다.
건져낸 도삭면은 물에 헹구지 않는다.
그리고 다른 냄비에 잘 익은 김치를 썰어 물과 함께 끓인다.
물 500ml
김치 한 그릇
국간장 한 스푼
참치액젓 한 스푼
참기름 한 스푼
청양고추 2개
건져냈던 도삭면을 바로 김칫국에 넣는다.
그리고 추가로 1분 더 끓여주면 완성된다.
그래서 총 5분 끓이기.
칼칼하게 끓여진 도삭면의 맛은 김치수제비 혹은 김치칼국수와 흡사하다. 하지만 도삭면 식감은 그것들과는 다르다.
익숙한 국물베이스에 색다른 식감 때문에 아이들이 엄지 척을 날려준다.
“엄마 이게 뭐예요?”
“도삭면이라고 하는 거야. 그걸 김칫국에 넣고 끓인 거야.”
“정말 맛있어요. 엄마가 해준 게 진짜 짱! “
이맛이지. 덥고 땀이 비 오듯 쏟아져도 내 새끼 입에 들어가는 거 보며 흐뭇하면 되는 거지.
단 하루였지만 호캉스 나름 좋은 점도 있었다.
나만의 시간.
그토록 가지고 싶었던 나만의 시간은 단 4시간이면 충분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가끔은 너무 익숙한 것들이 지겹게 느껴져 소중함을 모를 때가 있다.
나는 호텔에서의 하루덕에 그 소중함을 내 깊은 곳에서 깨워낸 것 같다.
그날 이후로 난 엄마의 역할을 잘 수행하는 사람으로 내 자리를 잘 지키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