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아이
코로나에 걸렸다.
4년 전 코로나로 우리나라가 난리 났을 때.
그래도 걸렸다 하면 아파트 방송으로 구청장님이 오셔서 이 아파트에 코로나환자가 발생했다고 방송이 나오던 시기는 지난 후 걸려서 소리소문 없이 조용히 걸렸다.
코로나 걸려서 구급대원이 와서 온 집안을 소독하고 코로나 환자는 끌려가듯 구급차에 실려가던 시기도 지났을때다.
혹시라도 어른들이 걸려서 다 끌려가면 막내아들 홀로 남았을 때를 대비해서 6학년 아들에게 밥 하는 법을 가르쳤다.
다른 건 다 알아서 하는 아이니깐, 밥만 있으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은 코로나대책이라는 핑계로 6학년 아들에게 종종 밥을 시켰다.
“요한아, 밥 좀 해볼래?”
“내가요?”
“그럼, 잘하잖아. 그리고 연습을 더 해봐야 해.”
쌀통에서 쌀을 그릇으로 덜고, 3번 씻고, 물을 맞추고, 밥통 겉면의 물기를 닦고 전기밥솥에 넣어 취사를 누른다. 취사가 끝나면 밥을 뒤 적여 거 준다.
단순하지만 물 맞추기, 물기 닦기. 등 어려운 부분이 다소 있지만 가르쳐준 대로 잘했다.
우리는 마스크 끼기, 잘 숨어 다니기, 사람 많은 곳 안 가기를 지키며 코로나에 안 걸리고 잘 버텼다.
하지만 우리 집에 코로나가 온 건.
남편 회사직원이 그토록 기침을 해대도 병원이나 코로나 검사를 하지 않고 3일을 버티다가 참다못한 직원 하나가 검사 좀 해보고 오라고 권유하고 나서야 코로나라는 걸 알게 됐고, 바로 다음 날 우리 남편이 걸렸다.
그리고 아들은 안방에 격리된 아빠를 위해 문 앞에 앉아 모두의 마블을 했다.
누구를 위한 게임인지는 모르겠지만 갇혀있는 아빠도, 코로나에 걸린 아빠걱정 가득한 아들도 만족하는 게임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남편이 걸리고 3일 후 내가 걸렸다.
나는 하루 종일 6학년 아들과 딱 달라붙어있었다.
6학년이어도 내 무릎에 앉아 책을 읽고 내가 소파에 누워 있어도 달려와 같이 눕자고 해서 그 좁은 소파에 같이 누워 낮잠도 잤다.
지금 생각해 보니 참 좋았다. 따뜻한 아이였다. 완벽히 과거형이다.
그리고 내가 걸린 걸 알고 나도 격리 중인 남편이 있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들어가기 전, 하루 종일 붙어있던 내 분신 같던 아들에게 말했다.
“요한아, 엄마 코로나야. 거실에도 있지 말고 너 방으로 가 있어. 그리고 조금이라도 몸이상하면 엄마한테 말해.”
“엄마. 엄마~~~”
엉엉 울며 엄마가 어디 끌려가는 것도 아닌데 엄마를 부른다.
눈물이 나올 듯 글썽였지만 난 바로 안방으로 가는 거라.. 눈물을 삼킬 수 있었다.
나는 남편이 있는 안방으로 들어가 자유를 외쳤다.
“오빠, 나 정말 힘들었는데 잘됐다.”
”뭐가 힘들어? “
“밥 차리기 너무 힘들지 당연히.”
“그랬어? 고생 많았어.”
우리는 둘이 넷플릭스를 봤다가 앓아누웠다가를 반복하며 시간을 보낸 것과 다르게..
방문 밖에서 아들은 여전히 엉엉 운다.
“엄마 괜찮아?”
“요한아, 너 아빠가 코로나 걸렸을 땐 안 울었잖아.”
문밖에서 울며 엄마를 찾는 아들에게 아빠는 시기질투를 한다.
-“엄마, 조금만 이상하면 바로 말해 119 전화걸 테니깐.”
-“엄마, 피아노 쳐줄까요?”
-“엄마, 이 인형 문 앞에 둘 테니깐 나라고 생각하고 같이 자요.”
문 밖에서 아들은 걱정 가득한 멘트를 계속한다.
영상 통화를 걸어 피아노도 쳐주고, 밥 먹는 예쁜 모습도 보여준다.
게임할 수 있는 폰도 손에 쥐여주고 안방에 들어갔는데도 게임은커녕 엄마만 걱정하던…
4년 전의 그 아들은.
완전히 다른 아이로 변신했다.
4년 후 현재.
“요한아, 너 엄마 코로나 걸린 거 알아?”
“그래요? “
“3일 전에 걸렸어!”
“…(게임소리)”
“쟤 엄마 코로나 걸렸다고 울고불고했던 요한이 맞아?”
“그럴 때잖아 당신이 이해해.”
남편이 나를 달래준다.
“요한아, 밥 좀 해줘”
“나가 놀게 돈이나 줘요”
아오.. 그놈의 돈이나 달라는 소리를 대체 몇 번을 하는지..
아껴 쓰라고 준 용돈은 하루 만에 다 써버리고,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다시 친구 만나러 나가기 바쁘다.
일찍이라도 들어온다면 따뜻한 밥을 내어주겠다.
하지만 12시는 기본이다.
그럼 덮밥처럼 통에 담아 놓은 밥과 제육볶음을 레인지에 돌리지도 않고 그냥 먹는다.
그렇게 깔끔 떨며 하루에 두세 번 하던 샤워는 아침에 학교 가기 전에만 한다.
그렇게 입던 옷을 옷걸이에 걸어 장롱에 잘 정리하던 아이가 책상의자에 가득 던져놓았다.
그렇게 책과 피아노를 좋아하던 아이가 핸드폰만 해댄다.
챗지피티. 우리 아들이 사춘기인데 말도 안 듣고 나가 놀기만 하고 왜 그런 거야?
[지금 그 시기엔 사회성에 집중할 시기라 그래요
대안. 대화를 많이 나눠본다. 이해해 주며 이야기한다.]
누가 모르나? 집에 빨리 들어와야 얘기를 하지.
아침에 아빠 차 타고 등교하던 아이가 더 자고 싶다고 난리를 피우다 아빠는 출근해 버리고, 내 차례가 되어버렸다.
나는 일어나지 않아도 될 시간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아들을 학교까지 데려다줬다.
운전을 하며 아들에게 빵을 아침을 대신해 줬다.
“집에 오면 또 친구 만나러 갈 거야?”
“애들이 시험공부한대요. 당분간 못 나가요.”
“친구들도 시험공부하는데 너도 해야지. 학원도 안 다니는데. “
“내가 올백 맞았을 때 놀라지나마.”
허풍인지 허세인지 모를 저 말에 난 또 깜빡 속아 넘어간 멍청이처럼 아들이 올백받아오는 상상을 하며 히죽거린다.
“오늘도 학교 잘 다녀와. 이따 맛있는 거 해놓을 테니 따뜻할 때 먹어.”
“일찍 갈게. 조심히 집에 가 “
아직 그 어릴 때 따뜻했던 아이 마음은 그대로 남아 있다 느껴지는 이유는,
차에 내려 가방을 메고 가던 아이가 두세 번은 뒤돌아서 손을 흔들어준다.
나는 출발도 못하고 아이가 또 뒤돌아 볼까.. 기다리며 기대하며 쳐다볼 뿐이다.
완벽한 짝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