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유정 作 ‘7년의 밤’과 추 창민 감독의 영화 ‘7년의 밤’
*학부 <문학과 영상>이라는 수업으로 원작과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를 비교 분석한 비평 과제입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7년의 밤’ 개봉 당시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다는 점과 소설 속 세령호와 세령 마을을 사실적으로 구현했다는 점, 장 동건의 M자 탈모와 악역 도전으로 화제가 되었다. 또한 영화가 책의 방대한 서사와 치밀한 인물들의 내면심리를 어떻게 표현해 냈을 지에 대한 기대가 높았지만, 소위 ‘믿고 거르는’ 장 동건의 출연에 대한 걱정도 높았다. ‘7년의 밤’이 개봉한 후 책을 먼저 읽은 독자들은 실망을 했고, 장 동건의 작품 선택을 역시나 신뢰하지 못하게 되었다. 또한 원작을 바탕으로 작품을 리메이크할 때 작가와 감독은 위험을 감수해야한다. 왜냐하면 작품 대부분이 원작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평이 차지하기 때문이고 제작진은 방향성을 틀어 원작의 틀만 빌려와 원작과 다르게 각색하여 독자적인 작품을 만들기 때문이다. 영화 ‘7년의 밤’은 전자에 속하며, ‘망작’이라는 수식어가 붙게 된 이유를 분석하려고 한다.
소설 속 인물들과 달리 영화 속 인물들이 갖고 있는 힘이 약하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뜬금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고, 인물의 행동에 대한 정당성에 의구심을 갖는다. 가장 눈에 보이는 여성 캐릭터, 은주와 하영이다. 소설에서는 은주가 ‘내 집 마련’에 왜 집착하게 되었는지, 왜 억척스럽게 살게 되었는지, 현수에 대한 마음까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어떠한 이유도 없이 ‘내 집’에 미친, ‘내 집’ 때문에 가장의 무게가 무거워진 인물로 그려지며, 현수에게 따귀를 맞은 후 영화 중반부까지 등장하지 않는다. 오영제가 복수극을 꾸밀 때, 은주는 갑자기 나타나 현수에게 괜찮냐는 말과 집에 형사가 왔었다는 얘기를 전해주고는 생존여부의 확인도 없이 영화 속에서 그대로 사라진다. 하영은 소설 속에서 오영제를 몰락하게 만들 수 있는 키(key)를 쥐고 있으며, 서원은 그 키를 이용한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딸의 죽음 소식을 듣고 ‘자살’로 마무리 한다.
소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영화에서 ‘무녀’가 등장한다. 무녀는 세령 마을에 감도는 음산하고 불안한 분위기를 암시하고 불길한 일이 곧 일어날 것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거기서 무녀의 역할은 끝이다. 세령의 시신을 호수에서 찾아 건질 때 무녀는 서원의 눈을 감겨주고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이 때 무녀의 대사는 소설 속의 승환의 대사인데, 차라리 무녀의 등장보단 기존의 인물에게 힘을 실어주는 게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즉, 이 영화 속 여성 캐릭터들은 하나 같이 힘이 없으며, 능력이 있어도 영화 전반에 걸쳐 어떠한 영향력을 끼치지 못한다.
남성캐릭터도 마찬가지다. 특히 영화를 이끌어 가는 오영제와 최현수가 가진 캐릭터는 심각하다. 소설 속의 오영제는 딸과 아내를 독립적인 인격체로 인정하기보다 자신의 소유물로 인식하고, 자신의 세계가 부서졌으니 (세령의 죽음) 상대방의 세계도 똑같이 부서뜨려야 직성이 풀리는 인물이다. 세령의 죽음에도 겉으로 보기에 침착한 오영제가 영화 속에서는 세령의 시신을 확인하고 나서는 무당의 방울을 뺏는 것은 물론이고 굿판을 엉망으로 만들며 눈물을 흘린다. 또한 영화 후반부 차 안에서 오영제는 서원에게 하영과 세령의 이야기를 하며 조금만 기다리면 자신을 사랑했을 것이라는 말을 남기는데, 마치 오영제가 사랑을 받기 위한 인물로 그려지고 오영제는 눈시울을 붉힌다. 마지막으로 7년을 기다려 제대로 된 복수를 하지 못한 채, 현수의 자살 소식을 듣고는 오영제도 ‘자살’을 한다. 자살을 함으로써 오영제의 실질적 복수대상의 방향성도 동시에 잃게 된다. 영화에서 사이코패스적인 오영제의 모습은 부릅뜬 눈과 세령이 도망간 대로 자신도 세령이 되어 보는 것, 최 현수를 덫에 걸리게 해 잔인하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일 뿐, 가정폭력의 가해자인 오영제가 애정결핍에 걸린 가장으로 미화된다. 설령 소설 속에서 오영제가 ‘오배우’라는 별명 때문에 영화 속에서의 눈물 연기가 ‘꾸밈’이라할 지라도 오영제가 자살을 할 인물인가 의구심이 든다.
오영제보다 더 이해할 수 없었던 인물은 바로 최현수이다. 마치 소설에서 최현수에게서 중요한 부분 (차 안의 웃는 해골, 음주운전을 한 후 세령을 죽이고 호수에 시체를 유기한 것, 살아있는 우물과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 신발과 제초기, 부성애)만 영화 속에서 표면적으로 가져온 듯하다. 수수밭과 우물 속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를 영화 전체 시간의 절반이상을 차지하는데, 과연 그만큼 차지하면서 관객들에게 ‘최현수의 우발적 사고’와 ‘서원에 대한 사랑’을 설득시킬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최현수는 음주운전을 했고 세령을 죽인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면회 온 서원에게 현수가 모든 것을 고백하고 자살을 택하는 것이 세령의 죽음에 대한 속죄라고 하기에는 부족하고 현수 자신의 죄책감을 덜어 내려고 선택한 것 같다. 영화 말미에 서원은 “아빠가 미안하다고 했어요. 세령이, 모두에게도.”라고 말하는 것으로 현수 자신의 죗값이 다 치러진 것으로 보인다. 과연 자살이 현수에게 최선의 방법이었을까? 또한 오영제가 최현수에게 세령을 왜 죽였냐고 묻자 최현수는 “안개가 짙었고, 술 한 잔 했고, (.....) 전화 벨소리를 끄려고 했던 거였어.”라고 말하며 세령의 죽음이 ‘우발적’이었다고 한다. 그 뒤에 세령의 죽음이 아버지의 죽음과 겹치면서 최현수는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되는데, 자신의 ‘실수’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에 대한 자기연민에 빠진 최현수를 보여준다. 그러면서 자신의 아들의 목숨이 위험해 처하자 돌연 ‘능력자’로 변하는데, 아들에 대한 부성애는 ‘굿판 중에 서원의 멱살을 잡은 무당을 때려눕히는 것’, ‘나이키 운동화에 서원의 이름을 적은 것’, ‘난 네 아빠니까’라고 말한 것이 전부다.
서원은 자신의 면회 요청을 계속 거절하는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느껴지는데, 아버지를 만난 후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는 전개가 두서없었다. 아버지의 ‘미안하다’는 말로 세령 수목원에서 서원이 세령과 뛰어노는 상상은 아버지로 인해 망가지고 불행한 삶을 7분 만에 용서한 것 같다. 사람(들)의 목숨 값이 이렇게나 가볍게 용서되는 것인가 생각하게 된다.
호흡이 길고 많은 인물들의 내면을 속속히 서술함으로써 인물들의 행동과 서사의 개연성에 설득력 있는 소설과 달리 영화가 소설 속의 모든 것을 담아내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소설 속 인물들은 세령의 죽음에 휘말리며, 그 죽음을 밝혀내기까지 인물들끼리 사건의 실마리를 풀고 해결하는 반면, 영화 속 인물들은 자신이 지닌 욕망에 비해 설득력이 부족한 행동과 서사, 영화의 중심이 되는 인물들이 ‘자살’을 택함으로써 허무하게 영화의 결말을 맞는 것은 다시 생각해볼 문제이다. 또한 젠더 문제가 불거지며 주체적인 여성캐릭터의 목소리가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2018년 현재, 그런 여성 캐릭터들이 하나도 없다는 것 역시 고민해야할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