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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시환 Jun 21. 2021

강성은, <카프카의 잠>

절망과 희망에 대하여 (1)


그는 야근을 하고 있었다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고    

  

라고 쓰자 그는 잠이 쏟아졌다      


 그가 책상 위에 쌓인 서류 더미를 뒤적이고 있을 때 누군가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똑똑 이 야심한 시각에 사무실을 방문한 사람이 누굴까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걸어가 문을 열어주려 했으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굳게 잠긴 문을 열어 보려 애쓰다 이 문은 밖에서 열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유심히 문을 바라보던 그는 조심스럽게 두드려보았다 똑똑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시 똑똑 

그는 갇힌 것이다 

아무도 없는 밤에 

눈 내리는 사무실에 

어마어마한 눈이 쏟아지고 쌓이고 있는데 

건물이 눈 속에 파묻힐 것 같은데    

  

그는 나가지도 못하고

그를 도와주러 올 이 하나 없는 것이다 

저 눈을 멈추게도 할 수 없는 것이다      


흰 눈은 펑펑 쏟아지고 

누구도 저 희고 무서운 것을 멈추게 할 수는 없어     

 

그가 잠에서 깨어나길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그가 삶을 포기하고 나면 죽음을 기다리고 있으면 

모든 것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가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강성은, <카프카의 잠>      




절망과 희망에 대하여 (1)절망과 희망에 대하여 (1)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직접 문을 열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사진 출처 : Korea 스누피)


절망과 희망에 대하여 (1) 


겨울과 눈은 언제나 올 수 있다. 한 번도 겪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겪은 사람은 없다. 봄학기 중 학교 끝나고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벚꽃이 하나 둘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다음 주엔 벚꽃이 완전히 만개했는데, 만개한 꽃을 보고 갑자기 주저앉아 울고 싶었다. 벚꽃은 자신이 언제 피어날지 알고 있는 게 신기했다. 짧으면 2주, 길면 한 달을 위해 여름, 가을 그리고 추운 겨울을 견뎌 다시 봄. 봄이 왔으니 적당한 타이밍을 알고 피었다가 지는 걸 반복하는구나. 나는 언제쯤 피어날까, 나도 알맞는 타이밍을 알 수 있을까 서러웠다. 그렇게 사소한 것으로도 좌절하거나 슬픈 날이 있다. 그런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바깥은 여름이다. 하지만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침대와 한 몸이 되어 벗어날 수가 없다. 길고 긴 하루가 또 시작이다. 문득 앞에 남아있는 날들이 때론 아득하고 막연하게 길게 느껴져 나는 그 긴 시간을 잘 보낼 자신이 없어진다. 삶에 대한 회의와 절망으로 가득 차기 시작한다. 사람을 만나면 애써 괜찮은 척, 괜찮은 하루를 보내지만, 집에 돌아오면 긴 긴 ‘눈’ 속에 파묻힐 것이다. 누군가 나를 꺼내려 ‘문’을 두드려도 나는 그 문의 손잡이를 찾다가 찾을 수 없어 울고 말 것이다.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사람들에게 다정한 말을 듣고, 내가 만들어놓은 사소한 습관부터 운동까지, 작은 일부터 큰일까지 해내도 결국 슬픔에 잠긴다. 어딘가 구멍이 뚫린 것 같은 허기진 부분을 채워 넣어도 그저 투명하게 통과한다. 나는 질식할 것 같은 슬픔 속에서 지낸다. 언제쯤 슬픔이 멎어 들까, 슬픔이 멈출 수는 있을까, 이전의 나로, 보통의 나로 돌아갈 수 있을까와 같은 고민을, 이번에는 이 시기를 어떻게 혹은 잘 보낼 수 있을지 매일매일 고민한다. 어쩌면 답이 없는 고민에서 어떻게든 매일 버텼다. 나도 여름을 보내고 싶었으므로 버텨야만 했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무도 없는 밤에, 이유도 모르는 채 내 존재를 의심하고 나에 대한 부정과 혐오가 넘쳐흐를 때, 그래서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때 나는 다시 한번 속더라도 희망을 믿어보기로 했다.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는 희망. 바닥에 앉아 하염없이 울기만 한 채 오늘을 보내고 내일부터는 달라질지도 모르는 하루를 찾아보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죽고 싶었고, 죽을 듯 말 듯, 사는 듯 살지 않은 듯한 날을 보내고 난 후, 내가 찾은 답은 애쓰지 말고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것, 이전의 나와 보통의 나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이 시간을 거친 또 다른 새로운 내가 되어 사는 것이다. 무엇보다 나에겐 내일과 매일이 있다. 내가 직접 ‘손잡이’를 찾아야 한다. 그래야 슬픔이라는 ‘잠’과 ‘눈’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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