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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시환 Aug 05. 2021

강성은, <밝은 미래>

절망과 희망에 대하여 (2)

자정 너머 눈 쌓인 길을 걸어 집으로 가는 남자 

인적 없는 밤길 

둘에 하나는 고장 난 가로등 

갸우뚱했지만 남자는 

발이 푹푹 빠져 들어가는 눈길을 겨우 헤치고 

어디선가 살아 있는 것이 낑낑거리는 소릴 들었지 

눈 속에 파묻힌 개를 끌어 올려 품에 안고 

작은 개야, 오늘밤은 나와 함께 가자 

다시 컴컴한 어둠 속에서 

길을 찾아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 장면을 보던 나는 알아차렸지 

아, 나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구나 

     

저들은 아주 행복해보였고 

그것은 오래전의 먼 일이었으나    

  

가능하다면 미래이길 

나는 그들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강성은, <밝은 미래>         




(사진 출처 : Korea 스누피) 


절망과 희망에 대하여 (2) 


강성은 시인의 ‘밝은 미래’는 1부와 2부로 나눠 있다. 1부는 자정 넘어 눈 쌓인 길과 인적 없는 밤길이 있는 아직 절망과 희망의 경계에 있는 과거와 현재, 2부는 아직 태어나지 않는 내가 과거와 현재를 바라보는 미래다. 1부를 보면 남자는 자정 너머 눈 쌓인 인적 드문 밤과 길을 걷는다. 앞선 <카프카의 잠>에 이어 나는 슬픔을 헤쳐나가는 손잡이를 찾았으나, 문을 열지는 못했다. <밝은 미래> 속 남자처럼 ‘자정 너머 눈 쌓인 길을 걸어 집으로 가’거나 ‘발이 푹푹 빠져 들어가는 눈길을 겨우 헤치고 나아가’고 있었다. 나는 시간과 슬픔에 휘둘려 살지만 “어떻게든” 오늘치의 삶을 아슬아슬하게 혹은 충분하게 살아내고 있었다. 언젠가는 거대한 눈이 녹기를 기다리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텼다. 


눈 속에 파묻힌 개를 끌어 올려 품에 안고

작은 개야오늘 밤은 나와 함께 가자 


그렇다면 어떻게 슬픔에서 나왔을까? 시 속 남자가 ‘작은 개’를 발견한 것처럼 나도 나의 작은 개를 발견했다. 슬픔을 무작정 걷어 내기보다 슬픔을 함께 안고 가는 것, 기쁨이 지나가면 슬픔이 오고, 반대로 슬픔이 지나가면 기쁨이 오는 감정의 순환을 아는 것이라고 나의 작은 개에게 말했다. 슬픔을 이해하는 순간이 오자 나는 ‘살아가는 기쁨’을 찾았다. 내가 살아가고 싶은 이유, 미래를 기대하는 이유 같은 것들을 하나씩 찾았다. 침대에서 일어나 샤워하기, 밥을 먹고 산책하러 나가기 등 당연하게 일상을 영위하는 것들에 대해 체크 리스트를 세분화해서 하나씩 지워나갔다. 나의 일상이 어떤 것들로 이루어져 있는지 확인하고 좋은 습관들을 찾아 나의 당연한 일상으로 만들었다. 일주일에 세 번 운동 가기, 스트레스 받으면 요리 계획부터 설거지 및 정리하기, 어떤 기분일 때 어떤 드라마나 영화를 보기와 같은 것들을 발견하고 일상을 꾸렸다. 나는 초록빛이 가득한 나무와 여름빛을, 바람이 불 때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를, 오후 3-4시의 햇빛을 좋아한다는 걸 알았다. 그렇게 좋아하는 것을 하나씩 찾으면서 나의 것이 되었다. 


그 장면을 보던 나는 알아버렸지

나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구나 

저들은 아주 행복해 보였고

그것은 오래 전의 먼 일이었으나 

가능하다면 미래이길

나는 그들의 뒷모습이 사라질때까지 지켜보았다. 


시 속의 ‘나’는 미래에 있고, 미래에서 1부를 바라보고 있다. 이 말은 시간이 흘러 성장한 내가 과거를 바라보는 것이다. 여기서 '저들은 아주 행복해보였고'에서 ‘나’는 슬픔을 온전히 이해한 모습이다. 1부에서는 아직 슬픔 속에 있거나 슬픔을 이해하는 과정에 있지만 ‘저들은 아주 행복해 보였고’에서 결국 슬픔과 기쁨을 이해할 것을 암시한다. 또한 ‘오래 전의 먼 일’에서 ‘가능하다면 미래이길’에서 과거에서부터 미래까지,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때까지' 앞으로도 슬픔과 함께하는 삶이 지속하기를 바라고 있다.


여전히, 때로, 종종 나는 슬픔 속에 머물러 있으나 슬픔이 곧 지나간다는 것을 이젠 알고 있고, 슬픔도 채우고 조금씩이라도 기쁨을 채워 넣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렇게 나는 나의 작은 개를 안고 그 개는 과거가 되었다가 현재도 되고, 미래가 될 것이다. 행복할 때도, 슬플 때도 있겠지만 우리는 언제나 함께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나의 작은 개를 유기하고 싶을 때 '나카시마 미카 - 내가 죽으려고 한 것은'이라는 노래를 듣는다. 우연히 노래를 알게 되서 들었던 첫 순간을 잊지 못한다.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이 들어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다만, 분명한 것은 나에게 한때 삶을 포기하고 싶은 이유와 동시에 살고 싶은 이유가 모두 담겨 있는 노래다. 실제로 나카시마 미카가 불치병을 앓고 있어서 노래를 부를 때 쥐어짜내듯이 온힘을 다하여 노래를 부르는 걸 알 수 있는데 그 모습을 보고, 가사를 듣고 많이 울었다. 어쩌면 죽음과 삶은 한끝 차이이지 않을까 싶어서. 이 글을 보는 여러분, 혹은 노래를 듣는 여러분 모두에게 조금은 위안이 되기를. 


 

https://www.youtube.com/watch?v=WzDBbooEh2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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