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 인식의 변화를 경험하다
몇 해 전의 일이다. 나는 리뷰 블로그를 운영하며 영화와 도서, 웹소설을 주로 다뤘다. 특정 웹소설을 검색엔진에 검색하면 내 블로그가 최상단에 노출될 정도로 유입이 많았고, 하루에 적게는 몇백 명, 많게는 수천 명이 내 리뷰를 읽었다.
어느 날, 유명한 웹소설이 드라마화된다는 소식이 나왔다. 기쁜 마음으로 그 웹소설을 검색하던 중, 한 뉴스 기사를 발견했다. '드라마화되는 모모 웹소설!'이라는 제목 아래 줄거리 요약이 있었는데, 나는 단번에 알아챘다. 그 내용이 바로 내 블로그 리뷰에서 따온 것임을 말이다.
흔히 사람들은 표절이나 재작성을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만, 원작자는 바로 알아챌 수 있다. 단어를 바꿔도 글의 흐름과 맥락에 '내 느낌'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 기자는 웹소설을 직접 읽지 않고, 검색엔진 최상단에 뜬 내 리뷰를 보고 기사를 작성한 것이었다.
물론 이해되는 부분도 있었다. 몇백 화에 이르는 웹소설을 다 읽고 기사를 쓰기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을 테니까. 매일 기사를 써야 하는 기자가 그 긴 소설을 어떻게 다 읽겠는가.
그래도 최소한 글의 주인인 나에게 허락을 구할 수는 있지 않았을까? 나는 그 기자로부터 어떤 연락도 받은 적이 없다. '뉴스화해도 될까요?'라는 댓글 하나조차 없었다. 나 또한 그 리뷰를 쓰기 위해 몇백 편의 웹소설을 모두 읽었고, 문장을 다듬고 더 쉽고 재미있게 표현하기 위해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었다. 그런데 그 기자는 내 노력을 허락도 없이 가져간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지금 그때를 떠올려보면 '어쩔 수 없지'라고 체념했던 것 같다. 당시만 해도 스스로 저작권에 대한 의식이 높지 않았고, 그 기자의 행위가 '저작권 침해'라는 사실도 명확히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저작권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크게 바뀌었다. 어떤 사건이나 콘텐츠가 SNS를 통해 화제가 되면, 언론사나 기자들이 먼저 그 글이나 영상의 주인에게 '기사화해도 되는지'를 묻는다. 그러면 콘텐츠 주인은 스스로 공유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공유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거절하거나, '제 콘텐츠임을 명시해 주시면 가능합니다'라고 조건을 다는 식으로 말이다.
만약 그 시절, 그 기자가 내게 '이 글을 기사화해도 될까요?'라고 물었다면, 나는 기쁜 마음으로 응했을 것이다. 단 한마디의 허락 요청만으로도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내 콘텐츠가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는 기회가 되었을 테고, 나 역시 기분 좋게 협조했을 것이다.
앞으로 혹시 그런 일이 내게 다시 생긴다면, 나는 기꺼이 허락할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다른 사람의 콘텐츠를 사용할 때는 반드시 먼저 허락을 구할 것이다. 저작권은 복잡한 법적 개념이기 이전에, 서로의 노력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이니까.
허락 한마디가 가져다주는 변화는 생각보다 크다. 그 간단한 예의가 창작자에게는 인정받는 기쁨을, 사용자에게는 마음 편한 활용을 가능하게 한다.
결국 저작권 보호의 시작은 거창한 법적 지식이 아니라, 상대방의 수고를 인정하는 작은 배려에서 출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