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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도 너무 가깝다

TK의 장녀는 중학생때부터 물리적 독립을 꿈꿨다.

by 우연우

산골짜기 깡촌 출신 나로서는 대구도 무척 큰 대도시로 느껴졌다.

그렇지 않은가.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찍고, 하는 노래도 있었으니까.


그런데 방학 때 대구에 있던 친척집에 머무르면서 느낀 것은, 대구도 너무 가깝다는 것이었다.

집에서 가깝다.

이래서는 제대로된 독립이 되지 않는다.

나는 중학생때부터 독립을 꿈꿨다. 완전하고, 무결한 독립을 말이다.


친척집에서는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을 쳐다보면, 아래로 8차선이 빼곡하게 차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해는 떠오르고 있었고, 나는 그 광경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마치 무한한 권능이라도 가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걸로도 뭔가 부족했다.


내 부모님은 여기까지도 올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때도 종종 부모님은 차를 몰거나 버스를 타고, 혹은 기차를 타고 대구에 볼 일을 보러 가곤 했으니까.

이 촌골짜기 구석에서 대구까지 나와도 진정한 독립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서울로 가야지.


서울로 가서, 집에 절대로 오지 말아야겠다고 말이다.

나는 그래서 고등학교 시절 "인서울"을 꿈꿨다.

그런데 여러가지 장벽이 있었는데. 첫째는 수능점수였고, 둘째는 가정형편이었다.

뭐 51대, 49 정도의 밸런스라고 하자. 아니면 49대 51이라든가.


솔직히 인서울하자면 할 수 있었다. 왜냐면 같은 반의 다른 친구는 나랑 비슷한 성적이었는데, 끝내 인서울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나는 초장에 좌절됐다.


딸내미가 어딜.

라는 말로 말이다.


그리하여 나는 집 근처의 대학교를 가게 되었다. 여전히 부모님의 손 아래, 숨 막힘을 느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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