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에 남아있는 자연스러움을 털끝만큼도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나도 잠에 들고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집에 있을 때, 침대에 누워 서서히 잠이 나에게 찾아올 때, 널브러져 있는 정리되지 않은 물건들. 줄을 풀어놓지 않고 카포를 끼워 놓은 기타, 취침모드로 전환하지 않은 핸드폰, 양치 안한 입, 버리지 않은 요구르트 병, 싱크대로 반납하지 않은 과일 접시. 그리고 마지막으로 꺼지지 않고 재생되고 있는 음악. 그 어느것도 마땅히 행해져야 옳다고 믿던 그런 정돈된 행위들이지만, 뭔가 시류를 거역하고 강물을 거스르는 듯한 느낌을 순간 받았다. 평소같으면 신경쓰여서 잠들지도 못했을 텐데, 그날따라 아무 것도 복귀시키지 않고 꽤나 노곤한 낮잠을 잤다.
"해야 한다" 는 생각을 덜어내는 연습을 하고 있다. 잠들기 전에 휴대폰은 방해금지모드로 바꿔야 해. 화장실은 한번 갔다와야 해. 나아가, 나는 성취해야 해. 그러려면 오늘 꼭 이렇게 해야만 해. 그런 생각들이 나를 부지런하게 만들고 그렇게 살아왔으나 내려놓아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그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할 수록, 그렇지 않은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어느 정도 떨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냥 쉽게 말해 덜 예민한 사람이 되고 싶은거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신경 세포도 무뎌지는 듯하면서, 웬만큼 컨트롤이 가능하다고 믿어지니 예민함도 자연스레 덜어지나 보다. 그리고 예민한 나도 좋았지만 퍽이나 둔해진 나도 좋다. 극단에 치우친 성향보다는 적당한 게 더 낫지 하며 점점 더 무난한 사람으로 변신하나 보다.
가끔씩 내가 "최소한 이정도는 해야 하지 않나" 하며 사람 사이의 도리에 대한 생각을 시험에 들게 하는 사람이 나타나기도 한다. 여러 번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는 생각이 들 떄 하고 싶은 말을 한다. 이런 말을 하기 전에 장고를 하는 경우는 오히려 예전보다 많이 줄어든 것 같다. 스스로의 생각에 대한 확신이 예전보다 쎄진 건가? 아니면 그냥 별 생각이 없어진 건가. 하고 싶은 말을 해버리면 그 사람과의 관계가 무너지고 거친 언행이 오고갈 까봐 두려웠던 것도 컸나보다. 이제는 별로 두렵지도 않은가보다. 너무 쿨한거 아니냐. 아니 이건 그냥 내가 지금 글쓰면서 생각하는 거라서 쿨할 수 있는 거다. 막상 닥치는 거랑, 그냥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 돌리는 거랑 다르니까.
어쨌든 내가 깊게 사유하는 이유였고, 한때는 극복하고 싶은 단점이었고, 나라는 사람의 기질적인 특성을 설명할때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형용사 "예민함". 나이가 들고 시간이 지나니 자연스레 덜어지는구나.
하지만 다 떠나서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그 강력한 기운만은 덜어내지지 않았으면 한다. 그거 하나만큼은 죽기 직전까지 보존되었으하면 하는 문화재와 같은 능력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