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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너별 Feb 07. 2021

별(別), 편지#23. '춤' 보다는 '훗'

미시적 시선의 아름다움


오늘은 조금 더 가볍고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줄게.


우리네 언어,


한글은 참


다른 언어와는 달리 예쁜 언어인 것 같다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해.


물론 다른 언어들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조지훈의 승무라는 시 알고 있니?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이 아름다운 구절을


네가 좋아하는 다른 나라 언어로 번역해 볼래?


아마 완벽하게는 힘들 거야.


이토록 예쁘게 포장된 한 문장을


어떠한 언어로


어찌 잔뿌리와 잔가지 마저 살아있는 상태로 번역할 수 있을까.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하잖아.



하지만 우리네 글은,


멀리서 보다는 가까이서 보는 게 훨씬 더 아름답고 재밌지.


정말이야.


내가 예를 들어줄게.


일단 생각나는 단어들을 먼저 살펴볼까?


'멍하다'는 말을 떠올려 보면,


난 왠지 두 눈을 초점 없이 뜨고, 입을 살짝 벌리고 있는 어떤 표정이 상상되는 건 왜일까?


'ㅁ'은 꼭 눈 같고, 'ㅇ'은 꼭 벌리고 있는 입 같아. 멍하니, 멍하다.



'울렁거리다'는


마치 'ㄹ' 두 개가 파도의 물결과 같고


넘실대는 우리 위장 속 액체가 흘러넘치는 것 같은 느낌이야.


방금 쓴 '흘러넘치다'도 마찬가지야.



'싱그럽다'


마치 'ㅅ'모양의 나무의 머리, 또는 예쁜 색깔의 지붕과,


그 옆에 나무줄기들이 즐비한 숲의 한 그림 같은 느낌이 들어.


'깜찍하다'의 쌍기역과 쌍지읒은


마치 귀여운 무언가를 바라보며, 몸서리치게 강렬히 입꼬리를 올리며,


잇몸까지 훤히 보이는 웃음이나 표정을 짓는 듯한 된소리의 형상.



조금 억지스러워 보일 수는 있어도


우리가 자주 쓰는 단어들,


가만히 다시 생각해 보면


생경하고 낯설게 느껴지고,


아주 살짝의 상상력만 부여하면,


시원하고 푸르른 신선함을 안겨 주니까,


시간이 나면 꼭 해 보았으면 좋겠어.





조금 더 깊이 살펴볼까?


글씨 그 자체가 아닌


모양에 집중해 보자.


지금 읽고 있는 이것이


글자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이 보면 어떨까?


아마 길쭉한 얼룩무늬 벨트처럼 반듯하고 빼곡히 차 있는


휘날리는 선들의 조합,


그림의 일부분이 아닐까?




그런 관점에서,


'춤'이라는 단어에 대해 알고 있을꺼야.


우리가 음악에 맞춰 휘휘 젓는 몸사위.


배우기도 하고 그 자체로 또는 다른 것들과 어우러져 예술이 되기도 하지.


그런데 언젠가 한 친구가 그러더라고,


'춤'보다는 '훗'이 훨씬 더 춤추는 것 같다고.


그 이유를 물어보니,


'훗'이 마치 양 팔과 두 다리를 벌리고 서 있는 사람의 모습 같다는 거야!


그런 다음 또 다른 친구는,


'굿'이란 단어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는데,


그건 마치 이집트 벽화에 있는 사람의 모습 같다는 거지.



정말 그렇네.


발레를 추는 듯한

 '훗'


이집트 벽화를 보는 듯한

 '굿'


몇 천 번 몇 만 번도 더 보았을 글자이지만,


오늘 이렇게 보니 


앞으로는 또 다르게 내 머릿속에 기억될 것 같네.






우리가 쓰는 단어들 뿐만이 아니야.


살면서 만나는 사람들.


마주하게 되는 외부 세계의 구성들.


들려오는 저마다의 이야기들.



하나하나,


집중하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힘든 삶이라는 거 알고 있어.


하지만,


조금이라도 성의를 보이고 싶다면,


새로움을 발견하고 싶다면,


대단한 것을 시작하려 할 필요 없어.


그저 지나치지 말고,


잠시만, 아주 잠시만 멈추거나 돌아 서서,


자세히 들여다봐봐.




그것들은


너에게 오랜만에 보는 그이에게 짓는 표정과,


차디찬 겨울날에 상상하는 여름의 날씨처럼,


분명 네가 알지 못한 즐거움과 새로움으로,


다가와 두드려 줄 꺼야.


내가 장담할게.




너에게 찾아온


회색 빛의


지루함과 남루함,


타성,


매너리즘.


그것들을 해결할 방법을,


너무 멀리서 찾지 마.



네 곁에 바로 옆에서


기다리고 있을 꺼야.


계속 신호를 보내고 있었을지도 몰라.


넌 그저 걷던 걸음을 멈추고


기꺼이,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바라보면 돼.




알았지?


꼭 실천해보고 후기를 들려줘.


오늘은,


미시적인 시선의 아름다움에 관하여 이야기해 보았네.



하다 보니 조금 길어진 것 같다!


역시 너를 생각하며 글을 보내는 게 신나서일까?


이만 줄일게!






봄을 기다리는


시간에서


네가 언제든 찾아올


공간에서


발끝을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을,


나를 다시 만날 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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