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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너별 Feb 10. 2021

겉바속촉으로 살고 싶다

어느 날 치킨을 먹으며 한 생각

치킨.



닭을 의미하는 영단어기도 하지만,


보통은 닭튀김을 지칭하는 말로 통용된다.




세상 어느 나라에서나 치킨을 먹는 듯하다.


돼지, 소, 오리 등 다른 동물들은, 종교/문화/사회/전통 등의 이유로 먹지 않는 경우를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유독 닭 안 먹는다는 나라는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일반화하는 것에 매우 조심스러운 나지만, 치킨은 대한민국이 사랑하는 음식이라고 감히 말을 떼어 본다. 


치킨을 빼 놓고는 형용하기 힘든 나라.


심지어는 치킨을 신격화시키는 나라.



어느 외국인의 댓글 중에, 한국에서의 치킨처럼 사랑받는 음식이 자국에서는 피자라고 했던 것 같다.


피느님이라는 단어를 떠올려 본다. 생경하고 어색하다.


취향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 이러한 단어를 쓰며 공감대를 형성하기를 바라는 건, 불확실한 도전인 셈이다.



어쨌든 나도 다른 이들이 외치는 치느님이라는 단어에 영향을 받아, 


굳이 먹을 것으로 고집부리고 싶지 않다는 신조로
다른 배달 음식보다 유독 치킨을 많이 시키게 되는 것 같다.


물론 온 가족이 다 같이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음식이 치킨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얼마 전에 어김없이 치킨을 시키게 되었다.



치킨을 시키게 되는 시점은 보통 금요일에서 일요일 저녁이다.


많고 많은 치킨 브랜드 중에


오늘 저녁으로 시키게 될 치킨을 고르는 이유는 다양하다.



가까이 있어서, 


그저 인기가 많아 궁금해서,


튀긴 것 말고 구운 걸 먹고 싶어서,


다른 사람의 추천을 받고,


가격이 싸서,


우리 가족이 다 같이 먹는 데에 가장 적당한 양인


한 마리 반을 메뉴에 취급하고 있어서,


아니면 그저 새로워 보여 맛이 궁금해서.




이유야 어찌 되었건,시켜 놓았던 치킨이 도착하였다.

바빴는지,비대면 배달이라 그랬는지, 엘리베이터를 다시 기다리는 것이 싫으셨는지

빠르게 대답하고 나갔는데도 문 앞에 치킨 박스만이 놓여 있었다.



흘러나오는 고소한 향기.



신발을 튀겨도 맛있다는데, 

닭갈비, 닭볶음탕, 찜닭 등으로 해 먹어도 맛있는 그 닭고기를 튀긴 것이기에

필시 먹어도 질리지 않는 맛 이리라.



후라이드를 한 입 베어 문다.

그것은 닭다리가 아닌 가슴살이다.

나는 닭다리를 잘 먹지 않는다,

닭다리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퍽퍽살을 그렇게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닭다리 양보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떠도는 우스갯소리에 관계없이,


내가 닭다리를 선호하는 것보다 상대방이 닭다리를 더 선호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서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양보하는 것이다.



치킨 하나 먹는 데 뭐 이렇게까지 생각하냐고 묻겠냐마는, 



그렇게 일상에서 부유하는 생각들을 어딘가에라도 표출하고자 하는 욕망이


이렇게 글로서 발현되는 것일 거다.



한 입 베어 문다.


살코기와 튀김옷이 적절히 배합되도록.




바삭하다.



살코기는 촉촉하다.




겉바속촉. 




언젠가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후라이드 치킨을 가장 잘 표현한 4글자가 아닐까 싶다.


단어 자체가 재밌기도 하고, 그 뜻을 모르는 사람이 봐도 어떤 말들을 줄였는지 유추가 가능할 만큼


한 글자 한 글자가 단어들의 핵심적인 음절이 아닐 수 없다.



아까 썼던 튀김옷이라는 표현을 되새겨 본다.



겉을 둘러싸고 있는 것을 표현하려다 보니 옷이라고 이야기하고 통용되기 시작했겠지.



우리가 입는 옷.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겉'.



안에 들어있는 '속'.



그것들이 각각 바삭하고 촉촉하다면 어떨까.



치킨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질리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바삭한 사람'이라는 이상한 조합에 대해 고찰해 본다.



매력 있고, 무언가 시원시원하고, 상대방에게 기분 좋은 자극을 전달해 줄 수 있을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럼 '촉촉한 사람'은?



우선 눈가가 촉촉하다는 이미지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감성적이고, 눈물이 많지만 오열하는 느낌은 아니다. 자주 흘리지는 않고, 섬세하고 상대방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 부드러움으로 다가갈 수 있는 사람.



바삭하고 촉촉하고, 다 좋다. 그것만의 매력이 있다.



다만 그런 생각은 든다.



겉부터 촉촉한 사람은, 


자칫하면 약하고 만만해 보일 수 있다.  


두부마냥 찌르면 푹 파일 것 같기도 하고,


또 상대방이 부담스럽고 어찌할 바를 몰라할 수도 있다.


그런 모습을 굳이 낯선 이들에게 드러내면서 살 필요는 없다.   



속까지 바삭한 사람은,


자칫하면 내실이 다져지지 않아 보일 수도 있다.


튀김이라는 것은 알맹이가 필요하니까.


단백질이 없어 영양가가 없어 보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일관성은 필요하다.


하지만 반전이 없다면 재미없다. 


갭 모에라는 말도 괜히 나온 것이 아니겠지.



그런 의미에서,



겉은 바삭한 옷을 입으려 했고,


속을 촉촉하게 유지시켜 온



내가 왠지 이해되는 하루이다.



치킨이 이렇게 나에게 깨달음도 준다.

아, 한입 더.




물론 정성이 담긴 닭백숙도 좋고,



2마리 만원 하는 전기구이 통닭도 좋다.




하지만 사람들은 치킨을 바라본다.



보다 많은 이들에게 관심을 받으려면(관심을 받으려고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생략하겠다) ,



나만의 세계가


우리의 세계가 되려면,


  


촉촉한 속을 잃지 않되,


바삭해 보여야 한다.


왜냐면 난 지금 겉부터 촉촉하니까.




그래야 사람들에게 나의 존재를 어필할 수 있다.





겉바속촉의 삶,



내가 새로이 나아갈 삶의 모토가 될지도 모르겠다.




너무도 매력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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