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건너별 Feb 21. 2021

어서오세요, 감정손님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을 대하는 태도

어느 날부터 나의 집에 손님이 찾아오게 되었지.

그들이 누군지도 모르고

찾아왔다는 그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그저 문을 열어 놓던 시절이 있었어.

그게 편한 줄 알았지만,

실은 너무도 복잡하고 어려웠지.

방향도 알 수 없이 여기저기서 날아왔기에,

정리가 필요했어.

손님이 가고 나서야

누군가가 귀띔을 줬지.

그 자는 기쁨이고,

그 자는 슬픔이며,

그 자는 분노이며

또 방금 그 자는 절망이야.

나는 참 아쉬워했어.

나의 집 대문을 두드리며 찾아오는 다양한 손님들에게

고작 한 단어는

그들의 생김새, 내음, 촉감, 색감, 온도 등을

표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으니까.

자세히 보면 하나하나 모두 서로 다른 것을.

그래서 나는 조금 더 자세하게 그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어.

텁텁한 기쁨,

꺼끌꺼끌한 슬픔.

노을빛 분노.

타고 난 재의 향이 나는 듯한 뜨거운 절망.

이상하다는 생각도 했지만,

그제서야 나는 만족하며

나에게 찾아오는 손님들과의 시간을

 아프도록 만끽하였지.

나의 집은 모든 손님에게 열려 있었기에

가끔은 나에게 명령하고 조종하기도 하고,

나의 집안 온갖 물건들을 헤집어 놓고

정리하지도 않은 채 나가 버리기도 했지.

그러면 나는

치울 힘도 없이 축 쳐져서

다음에 들어오는 손님을 받아들였지.

내가 원하지 않아도

손님들이 항상 찾아온다는 걸 알게 된 건

꽤 나중의 얘기야.

다양한 손님들을

제각기 다른 언어로 형용하며

그 사람에게 맞춰서 정성을 다해 몰입하던 나는

점점 지쳐 갔지.

그리고 마음을 조금 고쳐 먹고,

다시 단순한 말로 그들을 표현하기 시작했어.

기쁨, 슬픔, 분노, 절망.

기쁨이 이만 가려고 하면 바짓가랑이라도 잡으며 붙들었는데,

이젠 붙잡지 않았어.

슬픔이 찾아와 문을 두드리면 발도 들일 수 없게 돌려보냈는데,

이젠 잠시 머물렀다 가게 해 주었지.

분노가 찾아오면 자주 집에 들였었는데,

이젠 좋은 말로 타일러 돌아가게 했지.

가끔 내가 졸리지도 않고 컨디션이 좋을 때면

손님들의 모습을 자세히 봐주었지.

그리고 얘기해 주었어.

찾아와 줘서 고맙다고.

이따금씩은 예전처럼

내음과 색과 촉감으로

그들을 형용하며 맞춰 주었지.

그들의 중심부터 털끝까지 만져 보던 예전을 추억하며.

이제 다시는 그때로 돌아갈 수 없을 거야.

하루에도 몇 차례를 드나들던 그 선명한 것들.



잠시만,

때마침 또 누군가가 문을 두드린다.

이만 맞이하러 나가 볼게.

 

왠지 이번엔

내가 그토록 보고 싶던 너일까?

벅차 오는 마음인걸.

문을 벌컥 열어 

내가 들일 수 있는 최선의 정성으로

너를 환영하려 해 볼게.

사실은 끝이 없는 하늘에

매듭으로 묶어 매달린 별처럼

애달픈 간절함으로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지금이지만,

보고 싶던 너이든,

그토록 피하고 싶던 너이든,

누구든 환영할 수 있는 그 날까지,

너는 계속 찾아오고,

나는 맞이하고 보내겠지.

 

옷매무새를 다듬고,

머리를 단장하며

마음의 준비를 모두 마친 후,

생각과는 달리,

문을 조심스레 연다.

빛이 새어들어온다.

살짝 열린 틈으로 보이는

그림자에 너의 실루엣이 보이는 것 같다.

너는 바로,





작가의 이전글 겉바속촉으로 살고 싶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