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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너별 Feb 27. 2021

순천가는 기차 안에서

현재 시각 오전 7시 19분.
조그만 소란도 없는, 고요한 기차 안.
부드럽지만 추진력 있게 나아가는 열차를 느낀다.
나는 어디론가 강하게 향해 있다.

이 열차는 유독 터널을 지나는 구간이 긴 것 같다.
책을 읽으려 하는데 어두워 눈이 더 나빠질 것만 같다.

아, 이 글을 쓰던 와중에 터널에서 벗어났다.
몰랐는데 날이 밝아있었다.
너무도 하늘색이 짙은 하늘.
빠른듯 무난하게 지나가는 창 밖 풍경.

터널 속에서 비치던 내 얼굴보단
맞은편의 떠오르는 해가 유리로 비친다.
구름에 가려져 있다.
아파트, 산에 의해 해와 어우러진 풍경이 이따금씩 숨었다 다시 모습을 비춘다.

나의 시선을 마치 실시간으로 촬영하는  카메라처럼,
고개를 살짝 기대어
책을 바라보고 지나가는 풍경을 옆 배경으로 둔다.

시야에 담기는 모든 물체들이 유기적으로 어우러진다.
평범하지만 은은하게 오래 기억될 순간.

지금 이 순간이 좋다. 이 순간 속의 내 모습이 좋다.
책을 읽는 나의 모습에 뿌듯함을 느낀다기보다, 느껴지는 감각들이 한데 어우러져
난 간직하고 싶은 공기의 내음을 맡는다.

아, 이제 갈아타기 위해 내려야 한다.
연필을 읽던 책 사이에 끼워 넣고
선반에 올려 놓았던 짐을 내리고
왼쪽 어깨에 가방끈을 올려 쥐고
열차에 내려
다음 열차를 어디서 타는지 확인하고 다시 난 기다리며 이 글을 완성하겠지.
오늘을 더 선명히 추억하기 위해.


2021년 2월 27일
순천가는 기차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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