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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너별 Aug 16. 2021

푸른 향기의 사나이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운동화 끈을 질끈 묶어 내고

집 앞 마당에서

뜀박질을 하고 있을 적에


고개를 문득 든 하늘에 매료되어,

눈을 감고

과거에 대한 기억들과

미래에 대한 생각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맺혀진 것들에 집중하다 

돌연 눈을 뜨니

나에게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붉은 해는 하얀 달이 되고,

풀들은 파란색으로 바뀌고,

하늘은 분홍빛으로 물들고,

사람들은 온데간데없었다.



갑작스러운 낯섦에도

나는 다시 뜀박질을 시작했지만


반짝이는 생경함은

스스로의 걸음걸이를 늦추고 있었다


그러다 별안간

멀리서 비슷한 속도로 다가오던

한 푸른 내음의 사나이를 만났다.


지나치려다 그 사나이는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러고는

묻지도 않은

행복에 관한 본인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너무도 들떠있었기 때문에

막아설 수가 없었다


그러고는 갑자기 그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차가운 달빛에 반사된

차오른 눈물의 애틋한 자욱


하지만 그는 민망해 하지 않았다

부끄러워 하지 않았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었다

그러고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지 않는 자신이 좋다고 이야기했다


그 순간 사나이의 눈은

눈물이 말라져도 여전히 빛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을 느꼈다



그 사나이는 

나를 세워 놓기 미안했는지

뒤편을 이리저리 둘러 보더니

그루터기 위에 쌓여 있는 흙과 낙엽을 슬슬 치워 내고

앉아서 이야기하자고 했다


이윽고,

그 사나이는 

어느 여름 밤에 불어온 바람에

기분이 좋아서

불어온 냄새를 따라 가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는

갑작스레 결심이 섰는지

진짜 바람을 타고 돌아가려 했는지


짧지만 성의있는 인사와 

설렘 묻은 너른 뜀박질과 함께


멀리 점으로 사라져가 버렸다.


그 사나이는 

또 어딘가 누구를 만나

상대가 누군지 신경쓰지 않고

망설임 없이

빛나는 눈망울로

행복에 관한 이야기를 마치고

별안간 바람 냄새를 따라가고자 하겠지.




푸르른 향기의 사나이,

나는 

찰나의 순간을 함께한 그 인연이

왠지 그리워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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