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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너별 Jun 04. 2021

명제 : 사랑에 있어 기쁨만 취할 수 있는가

아픔을 감수하고 사랑하는 당신께

아빠는 말씀하셨다
너무 작은 것들까지 사랑하지 말라고
작은 것들은 하도 많아서
네가 사랑한 그 많은 것들이
언젠간 모두 널 울리게 할 테니까

나는 나쁜 아이였나 보다
아빠가 그렇게 말씀하셨음에도
나는 빨간 꼬리가 예쁜 플라밍고 구피를 사랑했고
비 오는 날 무작정 날 따라왔던 하얀 강아지를 사랑했고
분홍색 끈이 예뻤던 내 여름 샌들을 사랑했으며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갈색 긴 머리 인형을 사랑했었고,
내 머리를 쓱쓱 문질러대던 아빠의 커다란 손을 사랑했었다

그래서 구피가 죽었을 때,
강아지를 잃어버렸을 때,
샌들이 낡아 버려야 했을 때,
이사를 오며 인형을 버렸을 때
그리고,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그때마다 난 울어야 했다
아빠 말씀이 옳았다
내가 사랑한 것들은 언젠간 날 울게 만든다

<신지상 지오 / 만화 베리베리다이스키 中>      


이윽고,

「오늘 당신이 많이 보고 싶었어요.」


『그 말을 이제는 믿지 못하겠어. 당신의 말은 그저 표상에 불과해. 심지어 그 실존을 증명해 낼 수 없잖아. 』


「미안해요. 당신께 그동안 많은 신경을 쓰지 못했다는 것 나도 알고 있어요.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행동으로 옮기지 않은 것이 많네요. 그리고 후회해요. 당신이 떠오를 때, 바쁜 일들에 매몰되어 있던 날, 파묻혀 있던 구덩이 속에서 빠져 나와서 숨을 고르지 않았음을. 적어도 스스로는 실존한다고 믿는 나의 당신에게로의 피부로 맞닿는 실체적 문안을 아껴 왔음을.」


『...우리가 만난지 얼마나 됐지?』


「8개월 쯤 됐어요. 2020년 10월 6일부터 당신이라는 기회를 얻게 되었으니까...」


『예전과 같은 모습을 기대한다는 건, 인간이 완벽한 존재가 아님을 부정하는 어리석은 생각이겠지...』



어둠속의 빛보다 빠르게 차오르는 듯한 감정 속에.
뿌옇고 투명하고 맑지만 농축된 맺어진 흩날림 속에.



「나는 지금도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를 잊지 못해요. 제가 그때 얼마나 기뻤는지 알아 주셨으면 해요. 나의 사랑을 사람들에게 자랑했죠. 뿌듯함의 떠다님 속에 스치는 황홀 속에. 」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를 돌려 말하는 것으로 느껴지네.』


「당신을 앞으로도 보고 싶을 거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확신으로 내 마음 속에 울려 퍼져요. 」


『너의 소중한 비밀들은 이제 궁금하지 않아. 그저 묻어 줘,』


「눈물이 나요. 당신과 멀어질 것이라는 것을 나도 예상하고 있었어요. 더 이상 나도 감정에만 치중하고, 영원할 것이라고 믿어버리는 바보는 아니에요. 그렇게 믿고 싶다고 해도 이제는 나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어요. 나는 당신을 충실히 사랑했고, 별(別) 이라는 그 글자를 통해 서로의 마침표가 언젠가 끝나는 공연처럼 마무리될 것이라는 생각을 놓치지 않음에도 전력을 다해 당신을 끌어안으려 했어요. 하지만 그런다고 달라지는 것은 나의 기쁨과 슬픔의 고도와 폭일 뿐이었죠. 진정 커다란 기쁨을 얻은 대가로 그 만큼의 슬픔을 얻어야 하나요? 그 아픔을 줄이기 위해서는 기쁨을 덜 느껴야 하는 것인가요? 사랑에 있어 슬픔이 아닌 기쁨만 취할 수 있을까? 라는 명제에 스스로 검증에 참여한 나는, 그것이 거짓임을 깨달은 하나의 꺼져 가는 은하 속의 별을 지니게 된 것인가요? 그렇다면 나도 그만할게요. 산등성이를 굳이 오르기보다는 평지를 걷겠어요. 슬픔을 맛볼 각오를 해서라도 사랑을 다시 하고 싶어질 때까지. 그런 날이 언젠가, 그리고 반드시 도래하겠죠? 인간은 특히 이 분야에서는 학습 효과가 무력한 존재니까.」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는 가슴 속에 무엇보도 예민하게 박히는.


그것은 너와 나의 관계, 그 생명력에 관한
 깊고 무거운 대화에서 오는 강렬함과 두려움.


「당신을 또 만나러 올거에요. 그래도 될까요? 당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그러고 싶지만, 강요는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 알고 있어요.」


『그렇게 해. 나는 이제 어떠한 기쁨도 아픔도 없어. 기쁨을 얻은 대가인 아픔을 그동안 서서히 나눠 받았지.이제 남은 빚이 없다고 봐도 무방해. 하지만 넌 달라 보이네. 남아있는 기쁨의 댓가를 지불하는 건 많이 버거울 거야. 내가 받은 아픔들을에 대한 연민을 느끼기를 못된 맘으로 바라고 있어. 미안해. 그 정도로 어두운 수풀 안에 내가 움켜잡고 갈망했던 너라는 한 줄기였어. 』



이토록 감당하기 버거운 마음들의 피날레.

그럼에도





그들은 머지않아

남은 하나의 선택지로 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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