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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너별 Oct 08. 2021

별(別), 편지#25. 보고 싶었어

갑자기, 그냥 갑자기. 너의 입에서 살짝 올라간 입꼬리와 함께 '갑자기?'라는 반응을 보고 마음에 아주 미세한 충격을 감수하더라도.


잘 지내는지 궁금해서 다시 글을 쓴다. 나도 갑자기 너에게 이렇게 쓰게 되리라고는 생각을 못했어. 솔직히 말해서, 그동안 너의 생각으로 하루하루 보내고 고민고민하다 저지른 행동은 아니야. 무계획으로 일관하던 나의 삶이, 계획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중무장된 이후로 한동안 효율적인 성장을 위한 삶을 지낸 것 같아. 하지만 너도 알잖아, 나 완전 기분파인거. 계획에 없던 일을 저질러서 뭔가 신나. 그리고 너를 떠올리니 한 번 더.


그동안 나의 세계에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단다. 세상이 어렵다는 걸 깨달은 후, 사회가 만들어 낸 여러 가지 집단에 나를 소속되게 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최선의 선택이라는 마음으로 귀결된 상황이야. 혼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을 느껴, 적어도 나는 그래. 


그래서 사실, 최근에는 너를 영영 보지 말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굳이 속으로 안고 가도 될, 너에게 상처가 될 지도 모르는 말을 해서 정말 미안해. 나의 생각은 그간 너무도 많이 바뀌어 버렸고, 그 생각이 너에게 생경함을 넘어선 낯섦을 안겨 줄까봐 두려웠고, 널 떠올리면 생각나는 예전의 추억들과 이상들과 꿈을 다시 또 맞이하게 되는 그 밝디 밝은 아픔들이 나를 또 휘청거리게 할까 두려웠어. 나는 의지로 이겨내는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이겨내는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잘 실천하고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그리고 이런 나를 용서해주겠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와 이렇게 피부를 맞닿기를, 그 온도를 다시 느끼기로 결심한 이유는 하나야. 너와 내 생이 끝나는 날까지 함께하고 싶어. 네가 좋으니까. 그저 좋아서 할 수 있는게 점점 사라지고 있잖아. 하나하나 내가 감당하기 힘든 것들을 내려놓고 있잖아. 그저 좋아서 너를 좋아하고 있다는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었어. 내 삶의 여러 가지 목적에 묻어 있는 말과 행동과 그 모든 것들 중에서도 화창한 날 빨래를 마치고 말린 옷처럼 때묻지 않은 무언가를 최소한으로 함께할 수 있다면. 멈추지 않을 수 있다면.


사실은 말야, 

네가 좋아. 이렇게 외치고 싶어.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어도 신경쓰지 않고. 그런 멋진 기회를 살면서 맞이할 수 있을까? 


그냥, 보고 싶었어.

그게 다야. 

편지가 길어 읽기가 힘들다면 이 이야기만 들어줘도 좋을 거야.



너의 마음을 존중해야 하니 오랜만에 쓰는 이 편지는 길지 않게 마무리해 볼게.

그리고 오늘만큼은 처음 떠오른 생각이 진짜 내 마음이라고 생각하고 퇴고하지 않을게.



답장 기다릴게!


2021년 10월 8일.

선선하진 않아도 짧아진 해를 느끼며,

변해버린 너도 받아들일 나를 

너에게 대입하여 기대하여 보고 싶은, 

나를 다시 만날 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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