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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모두 다른 속도로 자라. 정말?

질문 앞에 망설임의 순간까지

by 뤼더가든

몇 달 전 미리 계획해 두었던 이번 글의 제목.

우리는 모두 다른 속도로 자란다고 믿었지만, 오늘은 그 아름다운 말에 의문만이 가득하다.

같은 자리를 맴도는 듯한 기분. 아니, 오히려 뒤로 후퇴한 느낌. 솔이도, 나도. 과연 우리는 자라고 있는 걸까? 그냥 멈춰 있는 건 아닐까? 정말 자라긴 하는 걸까?

아마 지난주 공개수업을 다녀오고 나서부터였던 것 같다. 브런치 글을 쉬고 싶었지만 그래도 써냈다며 뿌듯해했고, 내 아이를 자랑하겠다고 글을 썼었다. 그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에, 나는 다시 엉망이 되었다.

4학년이 된 후 처음 맞는 공개수업. 두려워했던 1학년 시절은 이제 먼 과거라 여겨졌고, 걱정 없이 학교를 향했다. 기쁘게 나를 맞아주던 솔이를 떠올리며.

수업 시작 10분 전, 교실 너머로 아이에게 손을 흔들었지만 솔이는 나를 보자마자 불편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 오늘 수업 못 해.”

받아오지 못 한 교과서를 확인하지 못했고, 선생님에게 제대로 말도 못 한 채, 자신에게 없는 책으로 수업에 참여해야 한다는 사실에 이미 잔뜩 화가 나 있었다. 책 없이도 충분히 참여할 수 있다는 내 말은, 아이에게 닿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된 담임선생님의 공개수업.

솔이는 자리에서 자꾸 미끄러져 내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하필 자리도 맨 앞 한가운데. 잠시 놀라는 학부모 몇을 제외하곤 아무도 내 아이를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공개수업은 체육 시간으로 이어졌다.

쉬는 시간, 솔이는 안아주려는 나에게서 도망치듯 강당으로 향했다. 선생님의 지시에도 따르지 않고 계속 겉돌다가 결국 구석에 앉아 있었다.

나는 눈물이 났다. 튀는 행동도, 없는 사람 취급받는 것도, 그렇다고 이름이 계속 불리는 것도 모두 싫었다. 나의 표정도 점점 굳어갔다. 강당에서 뛰쳐나간 건 부끄러움 때문이 아니었다.

어찌할 바를 몰랐다. 기름처럼 둥둥 떠 있는 아이와, 그런 아이를 차갑게 바라보는 듯한 공기. 모든 게 너무 무거웠다. 그냥 집으로 돌아가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를 두고 도망치는 것 같은 내 모습도, 결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솔이를 데리고 나오고 싶었다. 이곳에서 탈출시키고 싶었다. 그게 비겁한 방법이고, 장기적으로 좋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다시 강당으로 돌아갔다. 아이의 모습은 여전했다. 그리고 나의 존재 자체가 저 아이에게 부담이 되는 것 같아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수업 후 잠깐 만난 선생님은 “항상 그런 건 아니다”라고 하셨다. 그 말에 안도하면서도, 눈으로 직접 본 장면들이 머릿속에 맴돌며 정신이 멍해졌다.

아이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 솔이는 미안한 건지, 민망한 건지, 알아듣기 어려운 말들을 빠르게 쏟아냈다. 그 말들이 나에게 닿지 않고 튕겨나가고 있다는 걸 이 아이는 알까. 아니, 관심은 있기나 할까.

나조차 이런 부정적이고 절망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게 미안하면서도, 아이가 원망스러웠다. 왜 이렇게 유별난 걸까. 그냥 둥글둥글하게 지낼 수는 없는 걸까.

네이버 카페에 공감을 바라고 올린 글에는, 초4인데 아직도 그러는 건 큰 문제라는 말, 아이를 제대로 잡고 가르쳐야 한다는 말들이 더 많이 달렸다. 나와 비슷한 부모들의 조언조차, 지친 내게는 너무 큰 아픔으로 다가왔다.

나는 내 안이함 때문인지, 감정적인 태도 때문인지, 계속해서 나를 자책하게 됐다. 그리고 자꾸만 아이에게 화가 났다.

연휴가 이어졌다. 게임 외에는 할 것을 찾지 못하고, 조금만 건드려도 쉽게 폭발하는 아이를 보며 나는 여전히 묻는다.

정말, 우리는 괜찮은 걸까. 각자의 속도와 방식으로 자라고 있다고, 지금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언젠가는 오늘을 돌아보며, “그땐 몰랐지만, 우리는 자라고 있었구나”라고 회상할 수 있을까.

나는 지금 무엇을 더 해야 하는 걸까. 이런 글을 쓸 자격이, 나에게 정말 있는 걸까.

잘 모르겠다. 엄마 하기가 참 쉽지 않다.

p.s.

언젠가 이 글을 볼지도 모르는 너에게..

혹시 이 글이 너에게 또 다른 짐이 될까 조심스럽지만 오늘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남겼어.

엄마는 늘 너의 편이 되어주고 싶었어.

때로는 그게 잘 되지 않을 때도 많고, 널 다 이해하지 못할 때도 많아. 늘 옳은 결정을 내리는 것도 아니지만, 이 날도 네 곁에 있고 싶었단 마음만큼은 진심이었어.

젠가는 이렇게 힘든 마음인 날도 있었다고, 우리 함께 웃으며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날이 오겠지?

이 모든 마음이 어쩌면 진짜 사랑의 모습일지도 몰라.

삶이란 게 늘 기분 좋은 날만 있는 건 아니니까.

그렇지?

"그러긴 해" 너의 무심한 듯 의연한 대답을 듣고 싶구나.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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