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조절은 쉽지 않지만
솔이의 이야기에서 빠질 수 없는 이야기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물욕' 혹은 '소유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집안 가득 쌓여있는 인형과 장난감, 만들기 도구들. 어디에 놀러 가면 절대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기념품숍, 문구점. 그리고 쿠팡 쇼핑할 때 솔이의 진지한 그 눈빛은 흡사 어느 장인의 그것과 비슷하다.
무언가를 사준다고 하면 한참을 고민하던 첫째와 달리 가게에 들어서는 순간 화끈하게 마음에 드는 물건을 집어 들고 계산대로 향했던 솔이.
빨리 고르라는 성화에 마지못해 고르고 나오는 첫째에 비하면 이 아이의 빠른 선택이 어찌나 시원시원하던지. 원하는 것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표현하는 것도 나쁘게만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러고 나면 항상 언니의 물건이나 음식을 더 탐내기 일쑤였다. 자신의 구매와 선택에는 항상 불만족하며 결국 언니한테 바꿔달라 통사정을 하거나 본인의 '운빨'을 탓하며 화를 내고 비통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 그 꼴을 보는 것도 쉽지만은 않았다.
물건을 사준 뒤 솔이가 행복해하는 모습은 정말 사랑스러웠다. 문제는 그게 너무 짧았다는 거다. 찰나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찾아오는 다음 물건을 향한 욕구. 사달라는 대로 다 사줄 수도 없을뿐더러 그렇게 한다고 얘를 만족시킬 수도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자라면서 이 성향은 점점 더 커지는 것 같았고 어느 선까지 허용해주어야 하는지가 헷갈리기 시작했다.
용돈 교육을 하면 좋다고 해서 시도해 봤지만 그것도 녹록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무언가를 할 때마다 얼마씩 보상하는 식으로 해보았지만 실패했다. 일주일에 얼마씩을 줬더니 하루 만에 몽땅 뽑기에 쓰고는 마음에 드는 게 안 나왔다고 씩씩거리며 돌아왔다. 하루에 얼마씩을 줬더니 이제는 뭘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역시나 불평불만이었다. 며칠을 모으면 원하는 걸 할 수 있다고 아무리 가르쳐도 소용이 없었다.
"나는 왜 맨날 사고 싶은 걸 마음대로 못 사?"
솔이는 본인이 물건 하나를 살 때마다 통제받아야 하는 것에 부당함을 느꼈다. (원하는 건 되도록이면 사주려 했지만 그 원하는 게 너무 많았... 억울함은 살짝 접어두고)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 그나마 정착한 방식은 매달 1일에 한 달 용돈을 주는 방식이다. 역시나 솔이는 빠른 시간 안에 돈을 탕진했다. 그렇게 하면 어떻게 할래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라도 관여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슬쩍 말해주었다.
"솔아, 오늘은 3일이고, 아직 다음 달 용돈까지는 27일이 남았어."
"그래서 사면 안돼?"
"그건 네 선택이지. 엄마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뿐이야."
"그래! 그럼 살래!"
그랬더니 처음에는 하루 만에 또 몽땅 돈을 다 써버리고 나머지 날들을 끙끙거렸다.
다음 달 용돈에서 먼저 쓰면 안 되냐며 장화 신은 고양이 눈을 하고 졸라도 절대로 할부나 선불은 안 되는 걸로 얘기했다. 뭔가 사고 싶다 하면
"그래, 네 맘대로 사. 네 돈 안에서."
라고 쿨하게 말할 수 있는 엄마가 되었다. 다행히 솔이는 이 시스템에는 어느 정도 수긍했다.
예전에 비하면 무언가를 사고 싶어 하는 집착(?)도 조금 줄어들었고, 이 용돈 시스템에도 어느 정도 적응해가고 있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형급 사고가 터졌다.
솔이가 매일 같이 졸라대던 '현질' 그게 결국 문제를 일으켰다. 온라인 게임 사이트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결제가 반복되었고 그 금액이 백 만원 대를 넘어가는 사건이 발생하고 만 것이다. 게임에서 특정 캐릭터가 뽑고 싶었던 솔이가 아이템을 구매했고 나는 뒤늦게 그 사실을 알았다. 처음에는 잘못 본 줄 알았다. 비슷한 금액대가 여러 번 결재되어있었고 하나 둘 더해보다 총액을 보고는 너무 놀라서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백칠십팔만 원????"
낮잠을 자던 남편이 번개라도 맞은 듯 방에서 튀어나왔다.
"엄마, 나 어떡해?"
너무 화가 났지만 잔뜩 긴장한 채 울먹거리는 솔이를 보니 무작정 혼만 낼 수도 없었다. 이미 벌어진 일, 일단 해결부터 하고 보자.
솔이에게 방법이 있는지 보고 다시 얘기해자고 말하고, 너무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라고 해주었다. 남편과 함께 열심히 알아보고 시도한 결과 다행히 전액을 환불받았다. 물론 계정을 삭제한다는 조건 하였지만, 솔이의 계정은 생성 자체도 얼마 되지 않은 것이었다. 레벨이 쌓이거나 공을 많이 들인 상태도 아니었다.
최악의 경우 하나도 돌려받지 못하더라도 더 큰돈이 나가지 않고 계좌가 차단되어서 다행이다, 이 정도 돈으로 우리 가정 경제가 휘청거릴 정도는 아니다, 괜찮다, 솔이와 남편에게는 아주 의연하게 말했지만 다음날 눈을 뜨자마자 가슴이 쿵쾅거렸던 걸 생각하면 나의 이중성에 웃음이 나온다.
솔이(그리고 우리)는 이번 사건을 겪으며 여러 가지를 깨달았다. 다소 놀람과 당황, 행정적인 절차 등으로 시간을 소비하긴 했지만 충분히 값진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현질'을 엄청나게 한다고 꼭 맘에 드는 상태로 게임이 진행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차분히 생각하고 대처하면 방법을 찾을 수도 있다는 점
무엇보다, 당분간은 현질은 안 되는 걸로 규칙(벌칙?)이 제정되었으니 소귀의 성과라고도 볼 수 있으려나?
솔이와 함께 아트박스, 다이소가 이어진 거리를 지날 때의 일이다.
"아.. 저거도 사고 싶다."
아쉬워하는 솔이의 심리가 난 정말 궁금했다. 사들이는 것, 물건을 축적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 건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그래서 그게 이 아이에게 무엇인지 이해해보고 싶었다. 조금은 어려울 수도 있는 질문을 솔이에게 던졌다.
"솔아, 산다는 건 뭘까? 사는 거 말이야. 그게 왜 좋을까?"
"가지니까 좋지."
"갖는 그 순간은 좋은데 막상 금방 시들해지잖아?"
"그러긴 해. 안 살게."
솔이는 엄마의 의도를 알겠다는 듯 금방 풀이 죽어 대답했다. 나는 손사래를 쳤다.
"아니, 엄마는 사지 말라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라, 진짜 사람이 물건을 갖는 게 왜 좋은 걸까 궁금해서 그래. 그냥 예뻐서라면 가게에 있는 거나 사진으로 봐도 충분할 텐데. 우리는 왜 그렇게 뭔가를 사서 갖고 싶어 할까?"
속으로는 '너도 갖고 싶어 하잖아'라고 생각하면서, 그래서 도대체 인간이란 존재는 무엇인가 라는 쓸데없이 심오한 질문을 하면서, 아마도 아이는 '그냥 갖고 싶은 거지 뭐'라는 식의 대답을 하겠지 생각하는데,
아이의 담백한 대답이 들려왔다.
"생각해 보니 그렇네?"
자기 조절이라는 건 사실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아니다. 솔이에게는 조금 더 어려울 뿐이다. 중요한 건 당장 조절을 완벽하게 해내는 것보다 나의 부족한 부분을 알고, 때로는 다르게 생각해 보며 조금씩 변화를 시도해 보는 게 아닐까 싶다.
우리 아이들도 할 수 있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오늘의 커버 이미지는 포켓몬 오거폰 캐릭터가 쓰는 우물의 가면을 쓴 솔이입니다.ㅎ
오늘 글의 초안을 쓰고 있는데 옆에서 지켜보며 빨리 완성하라고 재촉하네요.ㅋㅋ 참 고마운 독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