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야기를 글로 쓴다는 건
지난주, 브런치 연재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내 브런치는 인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소설이나 웹툰처럼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스타일의 글도 아니다. 그래도 일주일에 한 편, 정해진 요일에 글을 올리겠다는 나와의 약속, 그리고 꾸준히 봐주시는 감사한 소수의 독자 분들과의 약속이었는데... 다른 건 못해도 꾸준히만 지키자 했던 다짐이 물거품이 되었다.
핑계를 대보자면, 점점 나아지고 있는 솔이의 상황이 다시 안 좋아졌기 때문이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래서 '내 감정상태가 극도로 나빠져서'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4학년이 되고 3월 초, 솔이는 학교를 정말 잘 다녔다. 첫째와 셋째가 더 신경 쓰이고, 둘째 솔이는 오히려 너무 잘해서 불안할 정도였다. 나도 모르게 솔이의 ADHD를 과거형으로 여기며 이곳에 글을 쓰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울린 전화벨. 그리고 담임선생님의 목소리.
내 안의 콜포비아가 살아났다. 1학년 때로 돌아간 듯한 솔이의 폭주 앞에서 나는 무너져 내렸다. 그때보다 훨씬 더 처참히.
무엇이 문제였을까?
방학 중의 단약? 너무 놀게 놔뒀나? 다른 아이들에게만 너무 신경 썼나?
나는 나를 또다시 비난하기 시작했다.
얘는 왜 이러는 걸까? 언제까지 이럴까?
앞으로 중고등학교는 어떻게 다니지? 학교를 그만둬야 하나?이민이라도 가야 하나? 사회에 나가서는 어쩌려고 이러지?
솔이와 아이의 ADHD도 원망했다.
모든 것이 무거웠고, 오만가지 생각에 압도되어 바닥에 눌어붙은 기분이었다.
브런치의 알람도 압박으로 느껴졌다.
아이의 이야기를 글로 쓰는 것은 기쁨과 치유의 시간이었는데...
육아라는 세상에서 지칠 대로 지친 나는, 그것이 단순히 결혼 이후의 문제가 아니라 나라는 존재에 대한 신호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리고 시작한 글쓰기.
재작년, '좋은생각 생활문예대상' 공모전에 솔이 이야기를 써서 냈다. 감사하게도 장려상을 받았다.
"그래, 너는 글을 좋아하고, 잘 쓸 수 있는 사람이야."
마치 누군가에게 인정받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기뻤던 건 솔이의 반응이었다.
솔이는 내가 쓴 글을 누구보다 진지하게 읽어주는 첫 번째 독자다.
"엄마 글을 보면 뭔가 감동적이야. 사랑해."
그리고 촉촉해진 눈빛으로 내게 얼굴을 부볐다. 아이는 상금 10%의 자기 지분을 주장하기도 했다.
"내가 있으니까 이런 글도 쓸 수 있고 좋지? 히히."
맑게 웃는 아이를 보며, 난 아이에게 긍정적인 존재감을 느끼게 해 준 멋진 엄마가 된 것 같았다.
글을 쓰며, 감정과 생각을 정리하고 솔이를 더 이해하게 되었다. 심지어 어떤 일이 생기면, 글의 소재가 될 수 있겠다 생각에 '건수 하나 생겼네'하며 혼자 씩 웃기도 했다. 아이와의 시간이 경험치가 되어 쌓이는 느낌에 조금은 견딜만한 것 같았다. 과거의 너는 왜 그리 울었니 하고 스스로를 다독일 수도 있었다.
이것이 내가 글을 쓰는 이유였다.
모든 것은 나아지고 있으며, 이제 나는 썩 괜찮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믿었다. 그만큼 내가 단단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상황이 다시 안 좋아지자 마음은 금세 엉망진창이 되었다.
그때 읽었던 책.
이사비나 선생님의 '우리 아이가 ADHD라고요?' 중의 내용이다.
"우리는 생각합니다. 아이의 ADHD가 사라지지 않고, 지치는 삶이 끝나지 않는 것이라면 차라리 삶이 짧았으면 좋겠다고요. (...) 우리가 바꿀 수 있고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지금 그리고 나입니다. 우리 아이들을 키우며 겪게 되는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지'를 생각하세요.(...) ADHD가 있는 우리 아이들이 조금은 힘겨울지 몰라도 불행하지는 않다는 것을요. 아이의 ADHD에 일상을 다 내어주지 마세요."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지를 생각하며 움직였다. '거북맘 토끼맘' 네이버 카페에 글도 올렸다. 담임 선생님과도 이야기하고, 상담 신청서도 제출했다. 병원에 가서 약물 조정과 관련해 상의해 볼 예정이다.
그리고 드디어 감사 일기 쓰기도 시작했다. 모두 좋다고 하지만 늘 생각만 하고 있던 그것.
그리고 아이를 보고 웃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하루에 적어도 한 순간은 있다. 그런 순간이.
여전히 마음은 불안하고 답답하지만, 그래도 지난주보다는 차츰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더는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았지만, 나는 여전히 무언가를 하고 있다.
방금 전까지도 글을 쓸까 말까, 마음이 무거웠지만, 또 이렇게 주저리 쓰다 보니 여기까지 와있다.
오늘도, 해냈다.
솔이는 멋진 활과 화살을 만들었습니다. 아이의 허락을 받고 사진을 올립니다. 이 정도면 초상권을 지킬 수 있겠다며 괜찮다고 해주네요. ㅎ
한주 연재를 지키지 못한 것 양해말씀 드립니다.
힘드신 모든 분들 함께 힘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