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는 것도 많은 내 자식
어느덧 브런치북의 끝이 보인다. 14개의 글을 쓰는 동안 솔이의 우당탕탕 스토리가 주를 이뤘으니, 오늘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나의 일등 독자에게도 체면이라는 것이 있으니 말이다.
이번 글에서는 솔이와 관련된 몇 가지 따뜻한 에피소드를 나누려고 한다.
1. 상대를 기분 좋게 만드는 능력
"저희 맘마도 좀 갖다 주세요~"
양갈래 머리를 한 솔이의 목소리가 식당에 울렸다. 포크를 요청하는 나를 빤히 보던 직후였다. 사뭇 어른 흉내를 내는, 그러나 어쩔 수 없는 3살 꼬마의 단어 선택에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영문을 모르는 솔이의 두 눈은 동그래졌다.
이 장면은 내가 작년 좋은 생각 생활문예대상에 제출했던 '어느 별에서 왔니?'의 앞부분이기도 하다.
양갈래 머리를 하고 요염한 표정으로 '맘마'를 주문하던 솔이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온다.
비슷한 시기의 다른 식당에서의 일화도 있다. 손님이 뜸한 시간, 여유가 생긴 주인아주머니가 말을 걸어주자 쪼르르 달려가 이야기를 나누더니 밥을 먹고 있던 우리 엄마를 가리키며 세상 자랑스럽게 말했다.
"저게 바로바로 내 할머니야!"
솔이의 할머니 사랑은 여전하여, 지금도 할머니와 할아버지뿐만 아니라 집안에 찾아오는 손님을 가장 반갑게 맞고, 무언가 선물을 받으면 좋다는 마음을 아낌없이 표현하여, 준 사람에게 '줄 맛 나게' 하는 기쁨을 선사한다.
2. 책 읽기 실력
솔이는 책 읽는 걸 잘한다. ㄱㄴㄷ 조차 가르쳐본 적도 없고 책을 많이 읽어주지도 못했는데, 7살 무렵 스스로 한글을 떼고 읽고 쓰기를 시작했다. 지금도 읽는 책의 수준은 초등 4학년이라기보다 청소년 수준에 가까울 정도다. (비록 게임에 밀려 좀 멀어지는 듯하여 아쉽지만)
내가 어설프게 쓴 동화도 솔이는 순식간에 끝까지 읽어치워 주었다. 게다가 간간이 웃음을 선사하며 내가 엄청난 대작가가 된 것 같은 착각을 잠시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물론 공모전의 심사자나 다수의 독자에게 선택받지는 못할지라도 어쨌든 한 명의 독자에게는 성공했으니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혹시 아는가? 해리포터처럼 유명해질지... 도? (글 쓰는 사람은 다 한 번씩 해보는 상상. 꼭 그걸 바라고 쓰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혹시...)
3. 반짝이는 표현력
솔이는 책을 많이 읽어서인지 말로 표현하는 방식도 나를 깜짝 놀라게 할 때가 많았다.
어느 날은 갑자기 나를 보며 진지한 표정으로 "엄마를 우주만큼 사랑해!"라고 하길래 하늘만큼 땅만큼 많이 사랑한다는 뜻이려니 했다. 그랬더니 "왜냐하면! 우주는 넓고 팽창하니까!" 라며 우주보다 스펙터클한 사랑고백을 날리는가 하면,
"엄마는 유리소리효꽃이 피는 예쁜 정원이야!"라고 말하며 우리 가족의 이름을 넣어 은유법을 활용한 문장을 구사하기도 했다. 육아에 찌들어 있던 나를 순식간에 우아하고 싱그러운 정원으로 만들어주었다.
4. 기억력과 분별력 그리고 흉내내기
내가 듣기에는 죄다 '우르르', '꿱', '크앙' 하는 소리일 뿐인데, 솔이는 울음소리만을 듣고 포켓몬스터의 이름을 정확히 맞추는 신공을 선보였다. 드래곤빌리지의 수많은 드래곤들과 최근에는 쿠키런킹덤의 많은 캐릭터들의 이름은 어찌나 많은지. 그래도 아이는 그걸 다 분류해 내고, 성우들의 목소리까지 비슷하게 잘 따라 한다.
더불어, 고모가 키우는 하얀 푸들 강아지의 짖는 소리를 어찌나 똑같이 흉내 내는지, 고모가 솔이의 소리를 듣고 강아지의 이름을 부르기도 했다는 에피소드는 덤.
5. 따뜻한 위로
솔이는 때로는 엄마인 나를 더 큰 어른처럼 응원하고 격려하기도 한다.
"엄마, 내가 안아줄까?"
내가 한창 우울의 늪에 빠져 있을 때, 혼자 울고 있는 내 곁에 조용히 와서 휴지를 놓고 가주었다.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하냐며, 조금 있다가 다시 와주겠노라며, 힘들 땐 크게 울어도 된다는 따뜻한 조언까지 해주고는 그보다 더 따스운 손으로 나를 토닥이고는 돌아갔다.
솔이는 마음만큼 살결도 어찌나 보드랍고 고운지, 이 아이를 내가 안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운인지 모르겠다. 곤두선 마음을 사르르 녹게 하는 마법! 그리고 이상하리만큼 아직도 솔이의 목덜미에서는 아가 같은 향이 난다.
6. 보름달 소원
때로는 마음에 찡할 때도 있다. 초등 1학년 입학 후 질풍노도의 시가를 거치던 그즈음이었다. 슈퍼문이 떴던 추석날 밤, 우리는 함께 보름달을 보고 소원을 빌었다. 눈을 잠시 감고 뜬 후 솔이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뭐라고 빌었어? 물어봐도 돼?"
"음.. 엄마는?"
"엄마 소원은 우리 솔이가 힘들지 않고 마음 편해지는 거야."
그러자 잠시 망설이던 솔이는 "나도."라고 대답했다.
'그래.. 너도 네가 편해졌으면 좋겠지..'라고 생각하는데 이어지는 솔이의 말.
"나도, 엄마가 그랬으면 좋겠어."
그 한마디에 눈물이 핑 돌았다.
7. 사랑한다는 뜻
렌즈를 하루 종일 끼고 있어서 눈이 빨개졌던 날, 솔이가 나를 보더니 놀라서 물었다.
"엄마, 눈 저쪽으로 떠봐봐. 거기 왜 그래? 빨개!"
렌즈 때문이다, 괜찮다 솔이에게 설명하고 "엄마 아픈지 신경 써주는 건 역시 솔이뿐이네. 고맙다"했더니
"엄마 사랑해~라는 뜻이야.. 헤헤" 라며 귀엽게 웃던 솔이.
그 순간, 난 생각했다. 이 아이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리고 다짐했다. 솔이의 '사랑해, 사랑받고 싶어'라는 표현을 좀 더 감사하게,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더 많이 표현하는 엄마가 되겠노라고.
솔이는 여전히 내 속을 긁기도 하고(물론 나도 그러겠지), 지금도 솔이만의 특별한 면이 있지만, 나는 여전히 솔이를 사랑한다. 게임보다는 좀 더 책을 읽었으면 하는 바람은 있지만 (지금도 저 옆에서 게임하고 있는 내 자식) 그래도 저 진지한 얼굴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괜히 웃음이 난다.
솔이는 누구보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그걸 고쳐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때론 그런 노력이 지나치게 자신을 탓하거나 자신을 고쳐야 하는 존재로만 받아들일까 봐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조금씩 변화하려는 아이의 시도와 마음 가짐이 나는 그 무엇보다 자랑스럽다.
"엄마는 마음이 따뜻해!"
나에게 항상 해주는 이 아이의 따뜻한 말이 무엇보다 나를 정말 따뜻하게 해 준다.
나는 좋은 엄마, 완벽한 엄마는 아닐지 몰라도, 최소한 아이에게 따뜻한 엄마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어쩌면 때로는 바닥을 치는 낮은 육아효능감이나 통제감에도 완전히 무너져 내리지는 않도록 잡아준 힘이 아니었나 싶다.
솔아, 엄마는 네가 자랑스러워. 너 자체로 충분해.
엄마 딸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사랑해.
오늘의 커버이미지는 이비스페인트로 그린 솔이의 작품입니다. 제목은 따로 없지만 '상어가 바닷속에서 보물상자를 찾을 생각에 겁나게 의기양양하게 행복한 상상을 하며 찾고 있는 그런 느낌?'이라네요. ㅎㅎ
여러분도 겁나게 의기양양하고 행복한 한 주 보내시길 바랍니다. ^^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