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뤄지진 않을지라도
시작은 보름달이었다. 그리고 소원.
흔하디 흔한 그 조합.
오래 묵은 나에게는 식상하지만 아직 보송한 일곱 살의 막내는 말간 얼굴로 소원을 빌고 싶었나 보다.
그런데 하필 그해 추석은 날이 흐려 보름달을 보지 못하고 넘어가버린 것이다.
"힝, 나 소원 빌었어야 하는데!"
아주 중요한 일정을 놓쳐버린 사람처럼 심각한 표정으로 말한다.
"아, 그러네! 어쩌지... 근데 무슨 소원이었길래 그래?"
공감해 주는 말 끝에 은근슬쩍 본심을 끼워 넣었다. 행여나 비밀이라며 안 가르쳐줄까 봐 최대한 담백하게.
아이는 그런 엄마의 작전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 너무나 순순히 그리고 줄줄 대답한다.
"요정 되게 해달라고 하려 했는데! 그래야 날아다닐 수가 있는데. 닌자도 괜찮고. 그러면 천장에 거꾸로 붙어있을 수도 있거든."
뭔가를 사달라거나 이뤄달라는 정도면 달님의 이름을 빌어 들어줄 수 있으려나 싶었는데 이게 웬걸. 이건 인간 소관이 아니다.
"비행기를 타면 어떨까?"
현실적으로 해줄 수 있는 걸 찾으려는 엄마의 노력. 하지만 아이는 다시 말한다.
"안돼. 내가 날개가 생겨야지."
아이의 확고한 선호에 슬슬 소원 이뤄주기는 포기해야 하려나 싶었는데 아이가 울먹거리며 말한다.
"저번 소원도 안 이뤄졌는데. 너무해."
그렇다면 과연 지난번의 소원은 무엇이었을까?
정답은 바로 우리 집 전체가 달고나로 변하는 거였다.
"아, 그건 좀 곤란하지 않을까? 그래서 아마 달님이 들어주지 않은 거 같은데?"
그러자 아이가 바로 멋쩍게 웃는다.
"하긴 그러겠다. 헤헤."
대화의 주제는 다시 요정으로 돌아왔다. 달님에게 꼭 이번 소원은 빌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 보름달이 언제냐고, 몇 밤을 자야 소원을 빌 수 있냐고 묻는다.
엄마는 머리를 굴린다. 요정날개 코스튬이라도 선물로 줄까, 아니면 비슷하게 날 수 있는 놀이기구라도 태워줄까.
아이도 머리를 굴린다.
달까지 소원편지를 전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집 전체를 달고나로 바꾸는 것 대신 이따만한 달고나를 10개쯤만 달라는 걸로 바꾸겠다고 전하고 싶었으니까.
엄마의 마음이 편안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하던 솔이의 소원이 또다시 떠오른다. 그때 솔이가 몇 살이었더라? 여덟아홉 살?
달고나집과 엄마마음의 편안함이 나이 차보다 너무 큰 것 같아 조금 가슴이 아려온다.
막내는 내년 추석이면 또 어떤 소원을 빌까. 이번의 이 소원을 기억은 할까.
세상의 많은 아이들은 제각각 어떤 소원을 가지고 있을까.
그들이 갖고 있는 작고 귀여운 소원들이 언젠가 어떤 식으로든 이뤄지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다. 아니, 성취 여부를 떠나 모두에게 소중하게 나눠질 수 있기만 해도 괜찮을 것도 같다.
나의 아이들이 나에게 나눠주었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