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소설 (13)
내 앞에서 턱을 괴고 창가를 바라보는 그녀를 글로 묘사한다면 얼마나 많은 언어가 필요할까? 우선 사랑스럽고 그윽한 그녀의 커다란 눈을 묘사할 것이다. 그 눈 안에 선명하게 보이는 그녀의 갈색 눈동자를 묘사할 것이다. 그 눈동자 앞으로 선명하게 코팅되어 맑게 느껴지는 렌즈를 묘사할 것이다. 그 눈을 깜빡거릴 때 파르르 엷게 떨리는 길고 선명한 속눈썹을 묘사할 것이다. 그 눈 위로 깔끔하게 다듬은듯하고 부담스럽게 그린 흔적이 없는듯한 눈썹을 묘사할 것이다. 눈 아래 주변으로 거의 보일락 말락하는 눈가의 옅은 주름을 묘사할 것이다. 감았다 뜰 때마다 보이는 예쁜 쌍꺼풀을 묘사할 것이다. 그녀의 눈의 윗 곡선과 아랫 곡선이 만나는 지점에 생기는 난초 끝과 같은 단아한 맵시를 묘사할 것이다. 눈의 안쪽에 안구와 다른 선홍색으로 보이는 홍학을 닮은 눈물 언덕을 묘사할 것이다. 그녀와 조금 가까이 나란히 길을 걷다가 문득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려, 들여다볼 때 드러나는 그 커다랗고 선명한 눈동자 바깥으로 보이는 희미한 별자리 같은 작은 실핏줄을 묘사할 것이다. 눈동자 바깥의 고대 적부터 내려온 문양 같은, 그물망의 홍채를 묘사할 것이다. 그 안의 우주 공간을 닮은 둥근 검은색을 묘사할 것이다. 다시 눈동자 밖으로 보이는 새초롬하게 다시 올라오는 깎은 귀여운 눈썹 일부를 한올 한올 묘사할 것이다. 그 묘사가 다 끝나고 나서는 그녀를 구성하는 각각의 눈의 부위들이 무엇을 닮았는지, 나에게 그 자체만으로도 어떤 영감을 가져다주는지를 묘사할 것이다. 커다란 눈을 들어 나를 바라볼 때, 나는 돌이 되어 버리고 오로지 그 눈이 심장에 맺히는 기분을 이야기할 것이다. 맑은 눈을 바라보기만 해도 영혼이 맑아지는 기분이 드는 것을 이야기할 것이다. 기다란 저 속눈썹 위로 가볍게 입맞춤하고 싶은 기분을 이야기할 것이다. 저 끝이 한 점으로 수렴하는 매혹적인 눈썹을 손끝으로 만져 느껴질 감미로운 촉감을 이야기할 것이다. 옅게 보이는 눈가의 주름이 그녀를 얼마나 더 매혹적으로 만드는지를 이야기할 것이다. 눈을 감았다가 뜰 때 곡선을 이루고 껍질에 쌓인 완두콩마냥 볼록 튀어나온 눈두덩이와 그 주변으로 그린 검은 쉐도우와 그리고 눈썹과 흰자위가 순간순간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얼마나 내게 흥미진진함을 주는지를 이야기할 것이다. 그녀의 실핏줄이 어떤 별자리와 닮았는지를 이야기할 것이다. 갈색의 홍채와 그 안의 흑점을 보며 온몸이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기분을 이야기할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간신히 그 홍채 밖으로 나오게 되면 다시금 선명하게 보이는 그녀의 눈썹이 얼마나 날 황홀하게 만드는지를 이야기할 것이다.
그 눈만 그러한가? 그 눈과 다른 부위들이 함께 움직이면서 만들어내는 반응들은 또 어떠한가? 그 눈에서 흘러나오는 보석 같은 눈물을 볼 때는 또 어떠한가? 그 아름다운 눈에서 흘러나오는,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아리게 만드는 그 눈물은 또 어떠한가? 어떤 묘사로도 이루 말할 수 없는 그녀의 눈물을 보면 나는 미치고야 만다. 그 눈물이 눈물 언덕을 넘어, 또르르 아래로 흘러내려 내 마음의 언덕에 다다라 하나의 상으로 맺히고 말 때, 나는 터질 것 같은 마음을 억누르려고 온갖 노력을 다한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터질 것 같은 이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고 내 앞에 있는 그녀를 그녀의 허락 없이 무작정 안고 싶어 할 것이다.
나는 이렇게 글로써 마음에 담아둔, 지금은 보이지 않는 그녀를 끊임없이 묘사할 것이며 우연히 그녀와 조금이라도 닮은 것이라도 볼 때면 그 뒷장으로 이어 계속 더해갈 것이다. 아주 두꺼운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지기까지 그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는 이렇게 하나하나 바라보고서 적은 두꺼운 공책을 위대한 예술가에게 건네고 한 장의 그림을 표현하라고 주문할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예술가는 아마도 피카소같이 겹겹이 쌓인 것 같은 작품을 만들지 않을까? 내가 힐끔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의 점을 뛰어넘어 어느 시기의 그녀의 어떤 모습마저 살필 수 있도록. 그렇게 하면 어떤 시기에 힐끔 볼 때에는 그녀의 웃고 있을 때 보았던 눈동자를 떠올리고 다른 시기에 힐끔 볼 때에는 그녀가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시기를 떠올리겠지. 그 안에서 그녀는 영원으로 존재할 것이다.
기왕 피카소가 되기로 마음먹었으니, 나는 한 점의 그림을 더 요구할 것이다. 그렇게 모든 것을 담은 그림에서 이제는 강렬한 것들만을 남기로 하나하나 빼라고 말할 것이다. 그녀임을 내가 알아챌 때까지, 계속 빼내고 빼낸 것들은 내 마음 깊은 곳에 담아둘 것이다. 그렇게 모든 부분을 표현하고 또 모든 부분을 생략한 그림을 보면서 나는 그녀에 관하여 전부를 기억할 수 있는 한 남자가 되겠다. 그 둘은 실제의 그녀의 모습과 전혀 다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상관하지 않겠다. 그 그림의 실체는 내 마음에 있을 테니까. 저 거대한 그림의 한 단면을 볼 때 내 마음에서는 실체화된 그녀의 세부적인 이미지가 내 마음의 영역에 넓게 펼쳐질 것이다.
약속을 잡고 그다음 주에 다시 그녀를 만났다. 밥을 먹고 그 주변을 걷다가 문득 그녀의 맑은 눈동자를 들어 나를 바라보던 게 떠올랐다. 두근대는 심장을 부여잡고 그녀만을 바라보고 싶은 두 눈을 간신히 다른 곳으로 돌려가며 황홀함에 이성이 빼앗기지 않도록 노력했다. 우리는 나뭇잎이 거의 다 떨어진 늦가을의 황량한 길 위를 함께 걸었다. 그녀 자신의 마음은 황량함을 담고 있을지 몰라도, 그녀의 겉모습은 가을의 황량함과는 어울리지 않는 듯했다. 그녀는 나와 보조를 맞춰 주고 있었고 나 역시 그녀의 보조를 맞춰 천천히 걸었다. 그녀의 콧날을 보면서, 그녀의 눈동자를 보면서 나는 문득 가슴 시림을 느꼈다. 그녀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느꼈고 뒤이어 고마움을 느꼈으며 동시에 허전함도 느껴져 왔다. '너무 깊어지지 말자, 너무 깊어지지 말자.' 속으로 되뇌었지만, 마음이 허락하는 방향은 계속 그녀를 향해 있었다. 이성을 되찾으면 나는 안될 거라는 이미 패배감 짙은 감정이 밀려왔다. 그 패배감의 근거는 나의 삶이었다.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문득 중학생 시절에 보았던 신경림의 시 한 구절이 떠올랐다.
대현은 때때로 여자를 만나지 않는 나에게 누구라도 일단 만나보라고 조언을 했지만, 쉽지 않았다. '나는 혹시 가난을 이상화하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생각을 해본 적도 있다. 가난이라는 핑계를 두고서 사랑의 실패를 비롯한 모든 실패를 합리화하려는 것일까? 아니면 이러한 가난이라는 결핍감이 만성화되어 탈출구를 잃어버린 것인가? 그러면서도 그녀와 나와의 이 거리가 계속 유지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황량한 가을과 겨울이 지나고 나면 멀어지게 될 것이 뻔한데도 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된다.'라는 말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아무것도 못하고 있었다. 그저 할 수 있는 말은 그녀에게 "춥죠? 따뜻하게 입고 다녀요.", "밥 먹었어요? 밥 먹어요.", "힘들죠? 고생 많았어요.", "저 달이 참 예쁘네요." 이러한 말들이 전부였다. 그 말조차도 마음속에 절절히 넘치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꾹꾹 눌러담아 말해야만 했다. 아니면 그 말속에 있을 사랑과 관련된 그 어떤 말이라도 터져버릴 것이 분명했고 그 말에 그녀는 민감하게 반응하여 봄이 오기도 전에 떠나갈지도 모를 일이었다. 메마른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갈색의 잎사귀가 대롱대롱 바람에 흔들리다가 아래로 떨어지고야 말았다. 그 짧은 순간이 오랫동안 마음에 맺혔다.
나는 그녀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이고 있을까? 그녀에게 나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를 생각하기 어려웠다. 이미 나의 자존감을 바닥을 치고 있었고 이러한 상황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준들 그것은 나 자신을 부정하는 느낌이 들었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좋아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나로서도 어려운 일일 것 같았다.
"몇 번을 그냥 흘려버리다 보면 당연히 이번에도 그렇게 될 거라고 믿어버리게 돼. 이따금 이러한 감정이 사그라지고 다른 때처럼 조용히 흘러가게 될 것임을 기대하기까지 한다니까. 마음은 그토록 소용돌이치는데, 상대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하거든. 나를 들여다보면 우스꽝스럽고 초라해서 누구에게 나를 보여주기가 겁이 날 정도야. 몇 번이고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다고 스스로 말하지만, 잘 안되네."
대현이 그간 있었던 자신의 연애사를 늘어놓고서 나 역시 대현에게 넌지시 이렇게 말을 건넸다. 그에게 부러운 점이 있다면 그는 실패하더라도 꾸준히 도전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도전하기도 전에 상대의 얼굴에서 일순간 권태로움이라도 찾게 되면, '이제는 내가 필요하지 않는구나!'라고 정리할 생각부터 했다. 이것이 마음의 상처를 피하는 방법이고 마음을 다시 고요하게 만들고 자신의 삶에 집중하게 하는 방법이었다. 용기를 내어 그녀를 보고 밥을 먹고 함께 길을 걸었지만, 그 속에서도 나는 이미 어떻게 하면 먼저 적당한 거리를 둘 수 있을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멀어지기에 어느 정도 성공을 하면 그다음에는 그런 나 자신을 경멸했다.